야구팬들이 목놓아 부르짖는 것이 있다. 바로 가을야구다. 보통 야구는 3월에 개막식을 하고 9월까지 144경기를 치르는 장기 레이스다. 이 144경기의 정규 시즌 레이스에서 최종 순위 5등까지만 가을야구에 갈 수 있다. 뜨거웠던 여름 열기가 한풀 꺾이고 코 끝에 희미하게나마 한줄기 가느다란 시원함 숨이 섞여 들어오게 되면 나 또한 그때부터 마음이 울렁인다. 가을이 왔구나. 우리 팀은 올해 어디까지 올라갈 수 있을까. 이렇게 가을야구는 모든 야구팬들의 염원이자 자존심이다. 그렇다면 왜 이렇게 가을야구, 가을야구 하는 것일까?
우리 모두 아무 대가 없이 그저 순수하게 누군가를 응원한 적이 있다. 먼저 아주 어릴 때로 돌아가자면 초등학생 시절 운동회를 떠올려 보자. 여기 머리띠도 모자라 손목 아대까지 청색 또는 백색을 장착한 단발머리 꼬맹이가 있다. 하루 온종일 뙤약볕 아래서 모래 바람을 맞았지만 한번 끓어 오른 피는 식을 줄 모른다. 줄다리기, 씨름, 박 터트리기 그리고 운동회의 하이라이트 계주까지. 청팀 이겨라! 백팀 이겨라! 박자에 맞춰 박수를 짝짝 치다 보니 손바닥이 얼얼하다.
나의 응원기는 운동회를 지나 청소년기의 수련회로 이어진다. 수련회 교관들이 맛깔나게 툭툭 던져주는 '1팀 응원소리 100점~'에 뒤집어지는 리액션으로 환호하던 그 시절. 낮 활동 시간에 이리 뛰고 저리 뛰며 얼차려를 받아 기합이 잔뜩 들어간 육체에 팀별 점수는 반짝반짝 도파민이 되어뿌려졌다. 지금 생각해 보면 당시 수련회 교관들은 지금의 나보다 훨씬 어린 대학생들이었다. 하지만 여중생, 여고생이 느낀 교관은 마치 임금님과도 같아서 그들이 친히 하사하는 점수를 가장 많이 얻고 싶었다. 그래서 레크리에이션 시간에도 우리 팀 기죽지 마라며 잔뜩 환호성을 지르고 팀의 점수를 위해 게임에 열심히 참여했다.
목이 쉬어라 손바닥이 터져라 응원하지만 사실 승리하더라도 크게 달라지는 것은 없다. 승리에 큰돈을 배팅한 것도 아니고 하다 못해 햄버거 하나 떨어지는 것도 아니다. 그럼 왜 우리는 이렇게 열렬히 응원하는 걸까. 바로 내가 즐거우니까 하는 것이다. 오늘 하루 잠시 청팀, 백팀이라는 '우리'로 묶인 이 공동체가 함께 잘되었으면 하는, 그렇게 나까지 행복해지는, 그런 순수한 마음이다.
늘 그렇듯 이기기만 했던 것은 아니다. 진심을 담아 응원했지만 줄다리기 시합을 하며 상대 팀에 속절없이 질질 끌려가기도 했고 단 몇 초 차이로 몸으로 말해요 게임에서 지는 바람에 점수를 얻지 못하기도 했다. 그럼 그 패배로 인해 우리가 불행해졌을까. 비록 잠깐 슬퍼했을 수는 있다. 하지만 '우리'의 힘은 강하다. 우리가 속한 우리를 응원했던 마음은 그리 쉽게 깨지지 않는다. 하물며 잠깐 생긴 '우리'도 이렇게 끈끈한데 야구라는 매개체로 3월부터 144경기를 치른 이 마음은 오죽할까. 내가 온 마음으로 응원한 우리 팀, 우리 선수들이 조금이라도 더 놓은 곳까지 올라갔으면 하는 마음인 것이다.
하지만 내게 가을야구는 또 다른 의미가 있기도 하다.
운이 좋게도 내가 17년도부터 좋아한 엘지트윈스는 17, 18년도를 제외하고 지금까지 쭉 가을야구에 진출했고 23년에는 우승까지 차지했다. 우승은 5차전에서 비로소 결정 났는데 그 순간 너무나도 기뻐서 나도 모르게 눈물이 줄줄 흘렀다. 우리 팀이 드디어 우승을 하는 날이 오는구나. 왜냐면 그 우승은 1994년 이후 29년 만의 우승이었기 때문이다. 그동안 얼마나 많은 좌절과 실망이 있었던가. 비단 29년의 세월을 돌이켜보지 않아도 나는 혼자서 한국 시리즈(가을 야구의 1,2위 결정전) 기간 동안 사실 좌절과 실망을 겪은 바 있다.
바로 1차전이었다. 어렵게 구한 한국 시리즈 직관 티켓이었다. 내가 한국 시리즈를 가다니! 설레는 마음에 전날 잠도 제대로 못 자고 출근길에는 미리 유광점퍼와 응원도구를 바리바리 챙겨 직관 준비를 단단히 마쳤다. 평소보다 일찍 퇴근하고 잠실까지 갔다 이 말이다. 1회까지는 분위기가 좋았다. 선취점을 1점 내주긴 했지만 곧바로 2점 따라잡으며 역전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중간중간에도 무려 삼중살 호수비가 나오며 이거 오늘 되는 경기라는 느낌이 팍팍 들었다.
그러나 왜 때문인지 좀처럼 득점으로 이어지지 못했다. 그렇게 한 점, 한 점, 상대 팀에 내어주더니 결국 1회에 득점에 2점을 최종 스코어로 2:3으로 패배하게 되었다. 이게.. 뭐지? 내가 무슨 경기를 본 거지? 이게 한국 시리즈라고? 이게 정규시즌 1위 한 팀의 공격력이라고? 단전에서 분노가 솟아올랐다. 그렇게 집 가는 길 내내 '에휴, 그래 너네가 그럼 그렇지. 이 팀은 안될 팀이다.'라며 온갖 볼멘소리를 쏟아냈다. 통합 우승의 순간을 목전에 두고 실망스러운 경기를 펼친 것이 너무나도 속상했다. 늘 그렇듯 내일부터 절대 야구 안 본다며 씩씩 대다 잠들었다.
하지만 안될 놈은 엘지트윈스가 아니라 바로 나였다. 2차전부터 분위기 반전이 시작되었다. 바로 전 날 야구불매를 다짐해 놓고 어김없이 6시 반에 야구를 틀었다. 아무 기대 없이 보겠다는 마음과 함께. 2차전도 7회까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전 날과 동일하게 1점 차로 뒤지는 경기였다. 하지만 8회 역전 2점 홈런이 나오며 순식간에 상황을 뒤집고 5:4로 이번엔 1점 차로 승리했다. 3차전은 이것보다 더욱 다이내믹하다. 초반에는 기세 좋게 경기의 리드를 이어갔지만 계속 1,2점 차이로 양 팀이 뒤집고 뒤집고를 반복했다. 9회 말 2 아웃 상황. 타석에는 우리 팀의 주장 오지환 선수. 스코어는 5:7. 간절하게 한 건 해주길 두 손 모아 바라고 있었지만 이미 9회 말이고 2 아웃인 상황이라 그냥 마음을 내려놓자고 하려던 즈음, 터지고야 말았다. 환상적인 역전 3점 홈런.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경기에 울컥하고야 말았다. 최종 스코어 8:7의 승리.
1차전부터 3차전까지 늘 최종 스코어는 1점 차였다. 하지만 1차전을 제외하고는 어떻게든 끝까지 따라붙어 기어코 경기를 우리 것으로 만들고야 말았다. 이제 지고 있어도 질 것 같지 않은 느낌까지 들었다. 고작 1번 패배를 맛보고 쉽게 돌아선 내가 부끄러웠다. 이렇게 한국 시리즈는 내게 져도 울고 돌아서며 기어코 다음을 기약하는 끈질긴 마음으로 남았다. 그렇게 투지를 발휘하여 4차전, 5차전도 승리한 끝에 29년 만의 우승 트로피를 거머쥐게 되었다. 아마 29년의 긴 세월도 패배에 쓰라렸을지라도 다음을 기약하는 끈기로 지금껏 버텨왔으리라.
그렇게 내게도 변화가 생겼다. 엘지트윈스가 그러했듯 나도 나를 믿고 끝까지 해내보는 것이다. 나는 원래 회사 업무를 할 때 큰 과제나 회의가 생기면 지레 겁먹고 스트레스부터 받는 스타일이었다. 막상 하면 또 잘 해낼 거면서 그전에 혼자 걱정하고 스스로를 의심하곤 했다. 요즘은 또 습관처럼 이럴 때면 의식적으로 '아니, 너 잘할 수 있어. 또 끝내주게 해낼 거 내가 다 알아.'라며 건강한 자기 확신을 스스로 불어넣는다. 자신에 대한 믿음이 단단히 발 밑에 자리 잡고 있으니 저절로 허리가 곧추 세워진다. 나아가는 과정에서 선취점을 빼앗기고 역전당할지라도 끝끝내 1점 차의 한 끗을 만들어낼 수 있는 사람이 되었다. 1점은 작지만 힘이 세서 녹초가 되어 퇴근해도 러닝화를 신고 달리게 만들고 새벽 5시 40분에 컴컴한 아침 안개를 뚫고 요가원에 가게 만든다.
정말 야구가 뭐길래, 내 인생에 이렇게 큰 영향을 끼칠까. 그깟 공놀이가 뭐길래. 이 글을 쓰는 도중에도 몇 번이나 울컥울컥했는지 모른다.
23년도는 야구팬들 사이에서 '성불의 해'라고 불린다. 우리나라에서는 29년 만에 엘지트윈스가, 옆나라 일본에서는 38년 만에 한신타이거즈가, 태평양 건너 미국에서는 무려 63년 만에 텍사스 레인저스가 우승을 했기 때문이다. 비록 오랜 기간의 침묵이 있었을지라도 팬들의 순수한 응원과 '우리'의 지치지 않는 투지는 결국 해내고야 말았다. 가을 야구가 끝나고 나면 겨울방학처럼 비시즌이 시작된다. 내년 3월까지 또 어떻게 기다린담. 일주일의 6일을 동고동락하던 동반자가 사라진다니 아쉽고 적적한 마음을 숨길 수가 없다. 하지만 내년 3월이 있기에 우린 지치지도 않고 함께 앞으로 나아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