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04. 경상도 아빠가 롯데팬에서 엘지팬이 된 사연
"아빠 이제부터 엘지팬이다."
어느 날, 아빠가 갑작스럽게 선언을 했다. 나야 대학부터 10년 넘게 서울에 살고 있으니 뭐 엘지팬 할 수도 있는 건데 아니 이건 아빠라면 얘기가 다르다. 아빠는 무려 50년이 넘는 세월 동안 경상도에서만 산, 여전히 경상도에 살고 있는, 찐 경상도 토박이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자연스레 DNA에 아로새겨진 스피릿에 따라 야구 또한 롯데 자이언츠를 응원하게 된 사람이었다. 사실 한번 마음을 준 응원 팀을 바꾸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1년 열두 달 중 여덟 달, 일주일 중 여섯 날을 야구와 동고동락하며 쌓은 끈끈한 유대감은 실제로도 마음의 끈끈이주걱이 되고 결국 응원 팀을 떠나지 못하도록 아주 단단히 잡아둔다. 삼진을 먹어도, 병살을 쳐도, 미우나 고우나 우리 팀이다. 근데 롯데팬이던 아빠가 돌연 엘지팬이라니?
그 이유는 바로 나 때문이다.
내가 엘지팬이 되었기 때문이다. 여지껏 누군가의 팬이 되어본 경험은 아이돌 말고는 전무하다. 아이돌 팬의 역사를 돌이켜보자면 초등학생 때는 GOD를 좋아하다가, 중학교 때는 동방신기와 슈퍼주니어, 고등학교 때는 빅뱅을 좋아했다. 늘 남자 아이돌에나 관심 있었지 축구나 야구 같은 스포츠는 올림픽정도의 체급이 되는 세계인의 축제 때에만 잠깐 관심을 가졌다. 하지만 17년도 L사 입사와 함께 돌연 프로야구 광팬의 길로 들어선 것이다. 회사 행사로 임직원들과 다 함께 간 잠실 야구장에서 완전히 야구에 매료되어 버렸다. 야구장에 들어서는 순간 펼쳐지는 푸른 하늘과 잔디의 조합은 별안간 사람을 벅차게 만든다. 심지어 처음 마주했을 때는 아주 노크도 없이 곧장 심장을 두드리는 느낌이 들었다. 쿵쿵쿵! 저 야구라고 하는데요! 들어가겠습니다!
그때는 태어나서 야구라는 걸 각 잡고 처음 보는 지라 룰을 전혀 몰랐다. 옆자리 선배에게 스트라이크가 뭔지, 파울은 무한대로 쳐도 되는 건지, 저 사람은 방망이 한번 안 휘두르고 가만히 있다가 왜 나가는 건지 끊임없이 물어보았다. 지금 생각해 보면 이렇게까지 야구를 모르는 상태였는데 어떻게 팬이 된 건지 의아할 때도 있다. 다행히 선배는 오랜 삼성팬으로 야구에 깊은 조예가 있는 사람이라 내 질문을 귀찮아하지 않고 오히려 신이 나서 이것저것 더 가르쳐 주었다. 그 날 아주 팽팽한 두 팀의 힘겨루기 끝에 터진 끝내기 안타는 내게도 역시 결정타가 되었고 그렇게 본격적으로 야구의 세계로 뚜벅뚜벅 걸어가게 되었다.
매일 퇴근 후 야구를 보는 것은 어느새 일상이 되었다. 꼭 집중해서 보지 않아도 늘 배경음악처럼 깔려있다. 계열사 티켓으로 한 시즌에 10번 이상 직관을 다니며 집에는 유니폼부터 시작해 응원 수건, 머리띠, 유광점퍼까지 각종 응원 용품이 차곡차곡 쌓였다. 부모님이 전화를 걸면 TV로 야구를 보고 있거나 아님 야구장에 가있거나 둘 중 하나였다. 그날도 여느 때와 다름없이 야구를 보고 있던 와중 아빠에게서 전화가 왔다. 지금 야구 보고 있냐며. 그날은 롯데 vs LG 경기도 아니었는데 아빠가 술술 LG 경기에 관해 이야기를 했다. 뭐지? 의아한 마음에 아빠 왜 LG경기 보고 있냐고 되물었다.
그때 딱 아빠가 선언을 한 것이다. 이제 엘지팬을 하겠다고.
그 말에서 20살부터 떨어져 살아온 딸을 향한 진한 그리움과 애정이 콸콸 쏟아져 나왔다. 아빠는 원래 소문난 딸바보라 늘 아침마다 모닝 카톡을 하고 점심시간마다 전화를 한다. 하지만 같이 살지 않다 보니 자연스레 대화 소재는 '밥 먹었나?' 정도이고 특별한 일이 없는 이상 통화가 길 수 없었다. 그러던 와중 새롭게 생긴 딸의 취미가 아빠에겐 얼마나 반가웠을까. 심지어 월요일 빼고는 매일 공유할 수 있는 취미라니. 평생을 롯데팬으로 살아온 아빠도 딸 사랑 앞에서는 어쩔 수 없이 무너질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우리는 야구를 매개체로 엄마도, 동생도 들어올 수 없는 우리만의 세상을 만들었다.
아빠는 내가 직관 가는 날이면 꽤 분주하다. 혹시나 중계 카메라에 잡히지 않을까 평소보다 더 열심히 경기를 보기 때문이다. 매번 내가 가는 좌석은 카메라가 잘 안 비춰주는 곳이라고 암만 말을 해도 소용이 없다. 어쩌면 내가 정말 화면에 잡히고 말고는 그리 중요하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그저 딸이 있는 그곳을 보고 있는 것만으로 같은 순간을 공유하고 있는 것만으로 아빠는 행복하니까 말이다. 우리 애가 저 군중 속에서 열심히 노래하고 손뼉 치며 놀고 있겠구나 하며 괜히 또 카톡 한번 보내는 거다. 잘 보고 있냐고.
늘 TV로만 경기를 보던 아빠가 마침내 직관을 위해 잠실 야구장을 방문했다. 생각보다 큰 규모와 많은 인파에 몹시 놀랐다. 함께 삼겹살 정식을 먹고 응원가를 따라 부르며 대승을 거두고 집으로 왔다. 집에 오는 길에도 여운이 가시지 않는지 하이라이트 영상을 보며 한참동안 오늘 경기 후일담을 나누었다. 그러던 와중 뒤늦게 인스타그램 DM을 확인하게 되었는데 친구 한 명이 경기 중계에서 나를 봤다는 것이 아닌가. 헉! 드디어 나도 중계에 잡힌건가! 그동안 직관을 그렇게 많이 갔지만 한 번도 잡힌 적이 없었는데 말이다. 친구가 메시지를 보낸 시간대를 고려하여 한참 앞으로 갔다 뒤로 갔다 경기 영상을 돌려보았다. 반드시 찾고야 말겠다는 마음으로 30분은 족히 매달렸다. 제발, 제발! 결국 나는 아빠-엄마-나 3명이 나란히 서서 응원 수건을 흔드는 장면을 찾아내는 데 성공했다. 서프라이즈를 위해 기쁜 마음을 애써 눌러가며 정성 들여 이미지 캡처도 하고 동영상까지 만들었다.
"엄마, 아빠, 빨리 카톡 한번 봐봐."
아무것도 모르는 새침데기처럼 무심하게 툭 카톡이나 한번 보라며 미끼를 던졌다. 반응은 엄마부터 왔다.
"와! 이게 뭐고! 우리 나온 거가?"
엄마의 말을 듣더니 아빠도 부랴부랴 휴대폰을 집어 들었다. 경상도에서 상경한 시골쥐 3명이 중계 카메라에 잡혔다며 깔깔대는데 그 광경이 얼마나 재밌고 뿌듯한지 바닥을 데굴데굴 구르며 한참을 웃었다. 그날 밤은 잠들기 직전까지도 아빠는 휴대폰을 놓지 못했다. 우리가 나온 그 장면을 보고 또 보고. 역시 아빠에겐 엘지의 승리도 승리지만 우리가 함께하는 그 추억이 더 값진 것이었다.
오늘도 아빠와 나는 여전히 야구 얘기를 한다. 병살이나 잔루로 답답한 상황일 때도, 역전 홈런의 흥분되는 상황일 때도, 여하튼 여러 의미로 누군가에게 말하지 않고는 참을 수 없는 상황일 때 서로에게 전화를 건다.
"지금 야구 보고 있나? 방금 봤나?!"
"와, 임마 와이리 못하노 오늘?!"
찐한 경상도 사투리로 나누는 서울 야구팀에 관한 대화가 가끔 웃길 때도 있다. 하지만 국경을 초월한 사랑처럼 딸내미를 향한 사랑은 고향도 막을 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