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겁도 없이 시작한 새벽 요가

요가02. 나의 최선을 찾아가는 첫 여정

by 이노랑


인스타그램에 올렸던 새벽 요가 인증

나는 첫 요가를 정말 당차게도 새벽 요가로 시작했다. 당시 원래 살던 곳보다 넓은 집으로 이사를 했기에 이곳에서 새로운 무언가를 시작하고 싶었다. 특히 집과 회사가 가까워져 통근 시간이 1시간 30분에서 30분으로 획기적으로 줄어들었다. 그렇다면 역시 아침 시간이 제격이었다. 처음엔 아침 일찍 일어나 영어 공부를 할까, 글을 쓸까 하다가 동네 산책 길에서 우연히 마주친 요가 학원이 떠올랐다. 출근 전 운동이라니! 그동안 로망으로만 갖고 있었는데 드디어 실천할 수 있는 기회라는 생각이 들었다.


새벽 요가 시간은 매주 화, 목 아침 6시 30분. 집에서 도보로 넉넉 잡아 10분 정도 걸리기 때문에 일어나서 씻고 챙기는 시간을 고려하면 기상 시간 마지노선은 5시 50분이었다. 조금 도전적인 시간이긴 하지만 새로운 집에서 새로운 시작을 꿈꾸는 내게 '새벽 요가'는 단어 그 자체만으로 매력적이었다. 하루 이틀 정도의 고민은 있었지만 마침내 새벽 요가 수업을 시작하게 되었다.


첫 수업 날. 매우 졸렸지만 떨리는 마음으로 새벽 공기를 마시며 요가원으로 향했다. 마땅한 요가복을 사기도 전에 등록 먼저 해버린 탓에 예전에 필라테스 다닐 적 입었던 레깅스를 입고서 나왔다. 다행히 너무 헐렁하지만 않으면 어떤 옷이든 아무렴 상관없었다. 그동안 괜히 이런 거 처음 시작할 때 준비물이 갖춰지지 않았다며 시작을 미뤘던 지난날이 스쳐 지나갔다. 앞으로는 절대 그러지 말자고 다짐했었는데 이번엔 제대로 성공했다.


쭈뼛쭈뼛 요가원 문을 열고 들어가니 10개 이상의 매트가 이미 깔려있었다. 와, 다들 이렇게 부지런하게 살고 있었다고? 놀란 마음을 감춘 채 맨 뒷 줄의 빈 매트로 향했다. 일단 앉긴 앉았는데.. 매트 위에서 이리저리 몸을 풀고 있는 다른 회원님들을 보고 있자니 걱정이 밀려들었다. 난 유연하지도 않고 요가도 처음 하는데 잘 따라가지 못하면 어떡하지, 나만 뻣뻣해서 우스꽝스러우면 어떡하지. 물론 겉으론 티 내지도 않았고 이 걱정도 곧 사라졌다. 이제 와서 뭘 어떡해. 일단 그냥 하면 되는 거지. 이 짧은 순간에 내가 어른이 되었음을 느꼈다. 어른은 이래서 좋다. 작은 두려움정도는 툴툴 털어버릴 수 있는 배짱이 생겼다고 해야 하나.


스스로 다독거리다 보니 선생님이 오셨다. 명상을 시작으로 가벼운 스트레칭을 지나 생소한 이름을 가진 여러 자세들까지 차근차근 나아갔다. 아까의 우려와는 달리 내 몸은 물 흐르듯 접어지고 펼쳐졌다. 자, 왼 무릎을 매트에 대고 오른발은 단단히 고정시킨 후 오른 손바닥을 오른발 옆에 둡니다. 다섯 손가락을 쫙 펼쳐 골고루 에너지를 담은 후 창가 방향을 바라보며 왼팔을 크게 회전시켜 뒤로 넘깁니다. 정말 온몸 구석구석을 단어로 지칭하며 자세를 알려주시는 덕분에 나의 왼손, 오른손, 왼발, 오른발의 상태를 저절로 살피게 되었다. 다른 잡생각이 들 겨를이 없었다. 그 자세로 나아가는 과정 한 단계 한 단계에 집중할 따름이었다. 명상의 본질이란 '현재에 머무는 것'이라고들 하던데. 요가를 하다 보니 현재에 머물 수밖에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게다가 새벽 수업이라 요가 파이어 고인 물 선생님들만 계실 줄 알았는데 꼭 그런 것도 아니었다. 다들 숙련도가 달랐고 나부터도 어떤 자세는 힘들다가도 다른 자세는 곧 잘 되기도 했다. 우리 모두 다른 몸과 다른 상태를 가진 독립 개체들이었다. 그러니 요가원에서는 굳이 나와 남을 비교해 조급할 필요가 없었다. 선생님도 나의 몸에 알맞은 상태를 찾아 무리하지 말고 그곳에 머무르라고 거듭 말씀하셨다. 심지어 나는 오늘 첫 요가 수업 날이 아니던가! 많이 숙이지 못해도 아무렴 어때. 오늘의 나는 이 정도가 최선이다. 이 마음가짐이 요가원 밖까지 확장된다면 지금보다 큰 그릇을 가진 넉넉한 인간으로 성장할 수 있겠구나. 첫 요가 수업 시간에 이렇게 느낀 바가 많다니. 왜 진작 안 했을까. 쇠뿔도 단 김에 뽑으라 했다고 요가복 하나 없이 수업부터 지르고 본 과거의 나에게 무한한 칭찬을 보냈다.


1시간의 수업이 끝나고 회사로 향하는 출근길. 직장생활 7년 만에 드디어 출근 전 운동이라는 버킷리스트를 달성했다. 상쾌함과 뿌듯함이 내딛는 발자국에 가득 흘러넘쳤다. 단전 깊숙이 들어 선 차분하면서도 단단한 에너지. 이 에너지와 함께라면 오늘 하루 어떤 시련이 오더라도 지혜롭게 헤쳐나갈 수 있겠다.라고 생각했지만 여전히 회사는 고통스러운 공간이었다. 역시 하루아침에 달관의 경지에 이르는 것은 무리 었다.


겁도 없이 시작한 새벽요가의 기세도 점점 꺾이기 시작했다. 여름이 가고 가을이 다가오며 밤이 길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여름엔 아침 6시도 꽤 밝았는데 날이 갈수록 지금이 밤인지 아침인지 분간하기가 어려워졌다. 반짝반짝 잘 떠지던 눈은 이제 돌덩이가 올라탄 것처럼 눈꺼풀 하나 들어 올리기도 버거웠다. 그렇게 하루씩 요가 대신 잠을 포기하는 날이 많아졌다. 이렇게 아침을 자괴감으로 시작하다 보니 그날 하루가 만족스러울 리 없었다. 첫 수업에 채워왔던 단단한 에너지는 어디 가고 찝찝한 허탈함이 빈자리를 채웠다.


그래, 인정할 건 인정하자. 다시 한번 깨달았다. 나는 아침형 인간이 아니다. 누군가의 미라클 모닝은 내게 맞지 않는 삶의 형태다. 자고로 요가란 무리하지 않고 자신의 몸에 알맞은 상태에 머무르는 것이라 하지 않았던가. 나의 몸에 맞는 상태.. 그렇게 새벽 요가 대신 저녁 요가를 선택하게 되었다.


점점 어두워진 새벽 아침..
keyword
화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