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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굴러가게 만드는 주말 아침 요가

요가 03. 에너지는 돌고 돌아 요가도 하고 빵도 사고 꽃도 사고

by 이노랑


본격적인 저녁 요가 시작 전 잠시 과도기가 있었다. 바로 첫 요가 에피소드에도 나왔던 주말 아침 요가다. 이 시간은 내가 가장 좋아하는 시간이기도 하다. 새벽 요가도 너무 좋았지만 아침잠과의 혈투에서 처절하게 패배한 이후 다른 대안을 찾아야만 했다. 바로 저녁 요가를 시작할까 생각도 했으나 뭔가 요가는 정오가 되기 전 아침의 맑은 이슬을 품어야만 한다는 나만의 희한한 철학이 있었다. 떠오르는 태양의 기운을 하루 때가 조금이라도 묻기 전에 온전히 담아내고 싶었다. 그렇기에 차마 이 요가 철학을 거스를 수 없었다. (참고로 이때 요가 배운 지 3개월 밖에 되지 않았다. 그러니까 완전 개똥철학이라는 뜻이다.)


마침 다니는 요가원에 주말 아침마다 수업이 있었다. 게다가 원데이 클래스 형태라 그때그때 신청해서 갈 수 있었기 때문에 주말 약속으로 빼먹으면 어떡하나 부담 가질 필요도 없었다. 럭키! 그렇게 나는 다시 한번 설레는 마음으로 토요일 아침 10시 반 수업에 등록했다.

직장인에게 주말은 알람에서 벗어나 생체 리듬에 맞춰 자연스레 잠에서 깰 수 있는 소중한 날이다. 물론 이제 회사 루틴에 익숙해진 탓에 꼭 한 번은 중간에 깨긴 하지만 난 잘 수만 있다면 오후까지도 푹 잘 수 있다. 하지만 오늘은 아침 요가가 있는 날이니 기꺼이 침대를 박차고 나왔다.


아침 요가는 새벽 요가와는 확연히 달랐다. 그동안 요가는 땀이 안 나는 운동이라 생각했었는데 이 날은 수업 듣는 동안 아주 온몸이 땀이었다. 요가원에 늘 수건이 준비되어 있는 것을 보며 왜 수건이 필요한가 했었는데 정말 땀이 줄줄 흘러 닦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동안 들었던 새벽 요가가 느린 템포의 깊은 스트레칭이었다면 아침 요가는 역동적인 에너지가 실린 무용이었다. 새벽 요가가 단전에 에너지를 꽉 채우는 것이었다면 아침 요가는 에너지를 힘차게 순환시켰다. 한번 힘차게 발을 구르고 나면 저절로 바퀴가 시원하게 돌아가는 사이클을 타는 것처럼 땀 흘리며 출발시킨 에너지의 달리기는 수업이 끝나고도 멈출 줄 몰랐다.

그땐 몰랐는데 이 날 들었던 수업이 '태양 경배'라 유독 동작이 힘차고 플로우가 빠른 요가였다. 여하튼 요가를 하면서도 숨이 찰 수 있다는 것을 드디어 깨닫게 되었다. 마지막에 사바아사나 하는 동안에는 깜빡 잠들 뻔했으니 뭐 말 다 했다.


주말마다 우리 집에 오는 남자친구를 데리고서도 몇 번 아침 요가 수업에 갔다. 요가가 유연함이 필요하다 보니 주로 여자들이 많이 했었는데 요즘은 '마음 챙김'에 많이들 관심을 갖다 보니 남자들도 많이 한다. 남성 회원님들이 쭉쭉 몸 푸는 모습은 더 이상 낯선 풍경이 아니다.

남자친구는 굉장히 유연한 편이라 나보다 훨씬 잘 내려가고 잘 펼친다. 하지만 몸 중심에 단단히 힘을 주고 균형을 잡으며 버티는 동작에서는 영 비틀비틀 힘들어한다. 나는 몸을 굽히느라 땀을 뻘뻘, 그는 몸을 버티느라 땀을 줄줄. 수업이 끝나고 서로를 바라보면 한참을 털린 모양새에 헛웃음이 난다. 다만 그는 그렇게 두어 번 더 털리고 나더니 요가에 흥미를 잃어버렸다. 어쩔 수 없다. 사람마다 취향이 같을 수는 없으니까 말이다.

그 후 나만 열심히 요가를 하고 있었는데 요즘 들어 슬금슬금 다시 요가 얘기를 꺼낸다. 역시 요가는 이런 맛이 있다. 분명 수련을 할 때는 햄스트링이고 골반이고 당겨서 이러면 사람 근육 찢어지는 거 아닌가 싶다가도 또 호흡을 고르며 가만히 머물다 보면 어느새 고통 보단 시원함이 더 크게 느껴진다. 그래서 아픈 걸 잊고 다시 시작하게 된다. 적절한 비유가 맞는진 모르겠지만 어렸을 때 이가 흔들거리면 괜히 혀로 밀면서 아픔을 은근히 즐기곤 했었는데.. 약간 그거랑 비슷한 것 같다.


주말 아침, 나도 이젠 요가복을 갖춰 입고 길을 나선다. 요즘 요가복 유행은 헐렁한 하렘팬츠 스타일이다. 꼭 절에서 입는 승복 같이 생겼다. 무협 만화 속 무림 고수들이 입는 바지 같기도 하다. 그래서 입을 때마다 나까지 요가 고수가 된 기분이 든다. 이 옷을 입는 것만으로 요가인이라는 정체성이 생긴다고나 할까. 넉넉한 바지통을 휘날리며 속으로 외쳐본다. 여러분, 저 요가하는 사람입니다.


당연히 세수와 양치질만 하고 맨 얼굴로 나왔는데 거리의 모습도 나와 별반 다르지 않다. 아침 특유의 채도 낮은 몽롱함이 가득한 거리에는 가끔 마주치는 사람들 마저도 막 잠에서 깬 듯한 느낌이다. 조용한 와중에 참새와 까치 소리만 짹짹 들려온다. 하지만 그 소리에 맞춰 정신은 점점 또렷해졌다. 감각이 무디던 발에 점점 리듬이 실리고 얼굴에 닿는 공기, 귀를 스치는 바람, 코로 들어오는 공기까지도 하나하나 의식하게 된다. 명상이 다른 게 있나. 이렇게 나를 인식하고 현재에 존재하는 것이 명상이지. 요가로 가는 순간마저도 요가의 일부로 만드는 것이 역시 요가의 힘이다.


우리 동네 유명 빵집 뺑띠에

주말 아침 요가를 사랑하는 이유 중 또 하나는 바로 빵지순례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 동네에는 빵순이들 사이에서 유명한 빵집이 있는데 딱 요가 수업이 끝나는 시간에 첫 빵이 나온다. 땀에 젖은 얼굴로 빵집으로 달려가 줄을 서고 있자면 시원한 바람에 어느새 땀은 다 날아가고 상쾌함만 남는다. 오늘은 또 무슨 빵을 먹지. 이 집은 외관도 유럽 어느 골목에 있을 법한 작은 베이커리처럼 생겼는데 빵 포장도 손잡이 없는 두꺼운 크래프트 봉투에 담아준다. 그래서 봉투를 손에 쥐는 대신 품에 꼭 안고 가게 되는데 그 순간이 나는 왜 이렇게 좋은지 모르겠다. 고소한 빵 냄새와 텁텁한 종이봉투 냄새가 묘하게 섞여 그날 오전을 완성시킨다. 요가하는 빠리지앵. 오늘의 추구미는 이것으로 하겠다.


집 가까이 오면 마침 또 꽃집이 있다. 사장님은 늘 매장 바깥에 새로운 꽃꽂이를 해두시는데 이게 나를 홀린다. 어쩜 꽃들의 모양과 색감이 이렇게 조화로운지, 볼 때마다 감탄한다. 그래서 결국 화병을 하나 마련했다. 일주일에 한 번, 만 원어치 꽃을 사서 식탁 화병에 꽂아둔다. 화사한 분위기가 일주일 내내 집을 밝히고 그 에너지가 다시 돌고 돌아 주말 요가로 향한다. 그럼 난 다시 또 요가를 통해 에너지를 충전하고 맛있는 빵을 사고 알록달록한 꽃을 사고. 주말 아침 요가의 역동적인 움직임 덕에 내가 이렇게 부지런히 굴러간다.


김미경 강사님께서 홍진경님 유튜브에 나와 하신 말씀이 있다.


'살다가 겁나거나 무서우면 일찍 일어나라.'


일어나지 않고 누워있으면 온갖 걱정과 상념에 짓눌리게 된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다 보면 못 일어나고 누워만 있는 내가 진짜라고 착각하게 된다. 그러니 일어나야 한다고 말한다. 잠시 누워있게 된 것이지 진짜 나는 똑바로 앉고 설 수 있으니까 말이다. 일단 일어나고 나면 무엇이든 할 수 있는 힘이 생긴다. 그러니 일찍 일어나라고 말씀하셨다.


물론 나는 겁나거나 무서운 일이 없고 무엇보다 새벽 요가도 일찍 못 일어나는 바람에 포기하고야 만 사람이다. 하지만 늦잠 자던 주말에 일찍 일어나고 있으니 이 정도에 충분히 넘치도록 만족한다. 나의 개똥철학이긴 해도 아침의 맑은 정기를 품겠다는 의지를 우직하게 지켜내고 있으니 이것으로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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