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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목련나무 Jun 06. 2024

9. 잘 지내고 있니?

친구야. 우리 그렇게 잘 버텨보자. 잘 지내보자.

얼마 전, 나에게 급히 전화를 걸어 마음 아프게 울었던 친구에게 하고 싶은 말을 이 글의 제목으로 넣어봤다.


'잘 지내고 있니?...'


은 인간관계를 가진 나지만.. 조금씩 친구들과 연락하고 얼굴도 볼 수 있는 마음이 회복되어 가면서 그동안 미루었던 연락을 하기 시작했다. 나와 남편이 신혼여행을 갔던 하와이에 내 친구가 때마침 잠시 살고 있었다.


그래서 신혼여행 기간 친구를 만나, 친구의 가족과 함께 현지인이 즐겨가는 바다에 가서 맛있는 푸드 트럭 음식도 먹고, 무지개가 뜨는 바닷가에서 추억을 쌓고 왔었다.


하루 종일 운전사를 한 친구 남편과 여행 계획을 세우며 우리 부부를 살뜰히 보살핀 친구에게 고마워서 남편은 언젠가 친구 부부가 한국에 들어오면 우리가 잘해주자고 얘기하곤 했었다.


내가 전화를 했던 그날, 친구는 힘든 상황을 겪는 중이었다. 그래도 서로 나름 담담히 안부를 전하며 전화를 끊었는데-..


한 30분쯤 지났을 때, 친구는 울면서 다시 전화를 했다. 얼마나 힘들면 그럴까.. 삶이 그 친구에게 감당할 만한 짐을 지워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울고 있는 친구 목소리를 듣다 보니- 몇 달 전에 울다가 죽을 것 같다고 생각한 날이 생각났다.


너무 울어서 코가 너무 막혔다. 눈물이 멈추질 않았다. 숨이 쉬어지지 않았다. 울다가 죽을 수 있겠다 생각했었다. 그다음에는 울다가 숨을 쉬어 보려고 물을 마셨는데, 그게 호흡이 안 맞았는지 물을 바로 뱉어내고도 한참을 캑캑대고 숨을 쉬었다. 제대로 사래가 들렸다.


울다가 죽을 수 있겠다- 는 생각이 든 이후로 울 때도 견딜 만큼 울어야 한다는 걸 알았다. 그래서 친구에게 "코를 풀라"고 말했다.


그리고 울다가 죽을 뻔한- 웃을 수도 웃지 않을 수도 없는- 내 얘기를 해주며, 울 때 울어도 숨은 쉬어야 하니 코를 풀라고 간청(?!)했다.


친구는 그 말에 웃었다. 다행히 좀 웃게해줄 수 있다. 그리고 정말 고맙게도 코를 풀어주고는 조금씩 마음을 가라앉히기 시작했다.


그리고 힘들게 느끼는 상황들에 대해서 얘기하고 마음을 안정시키고 전화를 끊었다.


그 이후 다시 전화한다는 게- 이제 안부 묻기에 좀 늦은 감이 있어 이 글에 물어본다. 그 안부를. 잘 지내고 있냐고. 그 이후로 괜찮냐고.


속상하다고 눈물 흘리며 소리를 지를 수 있는 내 친구의 용기와 솔직함이 난 좋았다. 아마 일상에서는 그 답답함을 견디고 참고 이겨내려고 하느라 그러지 못할 텐데, 전화로라도 그럴 수 있었던 게 다행이다 싶었다.


그리고 어쩌면 내가 큰 슬픔을 겪어서 내 눈치 보느라 얘기하지 못할 이야기도 그래도 어렵사리 조심스럽게 풀어내는 친구가 고마웠다.


사실 그 친구는 내 슬픔이 더 크고, 감히 자신의 힘듦과 비교될 것이 아니라고 계속 말해왔었다. 내 슬픔에 대해서도 그렇게 생각하고 배려해주는 게 나는 또 고마웠다.


얼마 전 모란꽃 친구가 큰 일을 겪으면 다른 사람의 슬픔을 안아주고 이해할 수 있는 품이 생긴다고 말해준 적이 있었다.


나는 그 말을 들을 때, 그게 싫다고 생각했었다. 나는 다른 사람 안아주지 못해도 되니 그 품- 이런 슬픔으로 생기고 싶지 않다는 생각을 이기적이게 했었다.


그런데, 친구의 얘기와 다른 사람들의 힘듦에 그게 뭔지 조금은 아는 마음으로 공감할 수 있는 품이 이제야. 너무 철없고, MBTI에서 T인 나에게 조금은 생겼다는 게- 그 친구와 전화하던 날, 다행이구나 생각되었다.


친구도 지금의 어려움을 겪으면서 - 물론 안 겪었다면 더 좋았겠지만, 아마도 그런 품이 생겨서 사랑하는 가족과 사람들을 더 안아주는, 더 품어주는 사람이 될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친구는 뭔가 이유는 모르지만 생각하면 튤립이 떠오른다. 근데, 기가 막히게도 지금의 남편이 친구에게 데이트할 때 한 첫 선물이 튤립 크리스탈 장식이었다.


친구의 남편은 그토록 친구를 초반에 알아보았던 것 같다. 이 친구는 훗날 명칭한다면 튤립 친구라 해야겠다. 튤립처럼 크고 아름답고 선명한 꽃잎을 가지고 싱싱한 삶을 살아가길 두 손 모아 바래본다.


얼마 전에는 송도를 다녀왔다. 키가 시원스레 크고 마음도 시원시원한 친구와 친구 남편의 배려로 송도 친구 집에서 1박 2일을 보내고 왔다.


친구와의 만남에서 여러 의미 있는 일들이 많았어서- 만나고 나서 그 바쁜 친구에게 난 며칠 동안 열심히 그날의 감흥을 장문의 카톡을 보내 전달했다. 민폐 같았지만 뭔가 여흥이 남아서 잠재울 수 없었다.


지금 사는 곳에서 송도는 거리가 제법 된다. 처음 가보는 송도에서 친구가 선택한 첫 장소는 공원이었다.


장미정원이 가꿔진 그 공원에서 나는 내가 공원에서 돗자리라는 것을 깔고 앉아서 있어 본 지 정말 오래되었다는 걸 알았다. 그 순간의 공기와 바람과 초록과 나무의 색들이 마음 깊숙이 들어왔다.


밤에는 저 멀리 항구 쪽의 항구 건물을 식별하게 하는 듯한 오렌지 빛 불빛이 건물 테두리를 따라 일렁였다.


친구 덕분에 올 일이 없었던 송도를 가본 것도, 그리고 송도라는 곳을 알게 된 것도 참 좋았다. 그리고 내가 얼마나 내 집과 내 반경 외에는 생각하지 않고 살았나-라는 생각도 들었다.


얼마 전에 또 무슨 일을 보다가 알게 되었다. 그동안 내 삶은 모든 바람을 다 맞아준 튼튼한 배가 되어준 남편이 있어서 나는 거친 바다를 보지 않아도 되었다는 것을. 이제 혼자 남은 나는 거친 바다를 겪는 초입에 진입했다.


뭘 해야 할지 몰라 기회가 닿으면 그 기회를 쫓아 전에 해보지 않던 것들을 해보기도 하는데, 그 하나가 바로 송도에 가보는 일이었다. 그리고 내가 모르는 다른 삶, 다른 환경에 대해서- 나는 더 알아가야 하는구나. 생각했다.


요즘 나는 독서를 지속적으로 시간을 늘려서 고 있다. 정말 읽고 싶지 않은 것들도 공부해야 하고 알아야 해서- 지루하고 딱딱한 책과 재밌는 책을 믹싱 가며, 뽀모도로 타이머를 써가며 읽고 그 세계를 알아가려 노력하고 있다.


조금씩 이제 살 길을 찾고, 걸어가야 했다. 걸어가야만 한다.


다행히 조금씩 해보고 싶은 일들이 생겨나고 있는데, 가장 큰 문제는 나의 내적 동기부여와 자기 관리였다. 이것도 노력하고 있다.


이게 지켜지지 않으면, 예를 들자면, 아마 떡볶이 가게를 차려도 오픈 시간이, 아니 오픈 일이 들쭉날쭉한 떡볶이 가게를 차린 주인이 될 것 같다.


언젠가 사진 속 남편을 바라보며, 언젠가 남편을 아는 누가 봐도, 남편이 부끄럽지 않은 아내가 되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야 천국에서 남편을 만났을 때. 남편에게 나 열심히 살았다고, 오빠 창피해하지 않을 사람 되려고 많이 노력했다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남편이 나보다 먼저 가서 다행이다-라고 생각했다. 남편이 이런 눈물과 슬픔의 지옥에서 조금이라도 살지 않게 돼서 다행이었다.


어쩌면-,정말 어쩌면.. 남편보다 내가 더 마음이 강인해서 내가 견뎌낼 수 있기에 내가 남겨진 건지도 모른다.


이런 지옥은.. 이런 힘듦은 되도록 내가 짊어지겠다고 다시 다짐했다. 남은 우리 가족에게도 말이다.


'친구야. 우리 잘 버텨보자. 우는 날은 울더라도. 코는 풀고 숨도 쉬면서. 그렇게 잘 살아보자. 고맙다.'

글로 전해본다. 이 글을 볼지는 모르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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