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소마 Mar 20. 2024

왜 자살하면 안 돼요?

어느 누구도 아닌 나 자신을 설득하기 위해 적는 글

  본 글의 서두에 말하고 시작할 것이 있다. 이번에 연재하고자 하는 <자살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 시리즈는 지극히 개인적인 의견이며, 내가 나 자신을 설득하기 위해 적는 내용에 가깝다. 나를 구원하기 위해 적는 이 글이, 누군가의 구원에 정말이지 눈곱만큼이라도 기여를 한다면, 그보다 더 감동적인 것은 없을 듯하다. 누군가의 마음에 닿기를 염두하고 쓰기는 하지만, 이번 시리즈는 나 자신을 가장 많이 염두하고 쓰는 글이다.


    사실 몇 달 전까지 나는 본 글과 정반대 되는 제목을 지닌 시리즈를 쓰고자 했다. 

    <자살해도 되는 이유>

    나는 사람들이 끊임없이 말하는 생명의 소중함, 일단 죽으면 안 된다고 귓가에 딱지가 앉도록 소리치는 것들에 진저리가 날 지경이었다. 그래서 다짐했었다. 자살해도 되는 이유를 합리적으로 적어내겠다고. 내가 당신들을 다 설득시키고 난 자살해 버리겠다고, 그런 다짐을 했었다. (지금 다시 보니 좀 웃긴데 그땐 정말 진지했다.)







    며칠 전, 서울시자살예방센터에서 진행한 봄생명사랑캠페인 마음돌봄토크에 현장참여자로 선정되어 다녀왔다. 그 자리에서 아주 인상 깊은 질문이 들어온 것을 보았다. 


    "대차대조표를 작성하고, 결론이 자살로밖에 나지 않는 경우에도 자살하면 안 되나요?"


    현장에서 서울시자살예방센터 김현수 센터장님과 나종호 교수님은 이렇게 답변하셨다. 그 대차대조표를 주변인과 함께 검토해보아야 한다고, 그리고 다시 대차대조표를 써 보아야 한다고. 그럼 자살이 유일한 결론이 아닐 것이라고. 그 순간 나는 생각했다. <자살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에 대한 글을 적어내겠다고.


    <자살해도 되는 이유>(혹은 자살해야 하는 이유)를 적어 내려 가던 그 시기의 나를, 차분하고 안전하게 반박해 보겠다고. 






    




    자살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를 적기에 앞서, 나는 주로 어느 때에 자살을 다짐하였는지 고민해보게 된다. 내가 자살해야겠다고 마음을 먹고 행동에 옮긴 가장 최근은 작년 여름이었다. 그 '날'로부터 한 달가량 전, 주변인들은 내 상태가 호전되어 보인다며 반가워했다. 이전처럼 죽고 싶어하지 않는다며 말이다. 이런 글을 본 적이 있다. 우울증에서 약간 호전되었을 때가 가장 위험하다고. 그 말이 꼭 나를 보고 쓰인 듯, 난 어느 순간 무기력에서 조금은 에너지가 흐르는 상태로 변했고, 그 에너지는 자살을 시도하는 데에 쓰였다. 그리고 나의 자살시도는 실패했다. 생존에 성공했다는 표현이 조금 더 듣기 좋으려나? 어쨌든 지금 나는 살아있다. 살아서 조금 웃기지만 '자살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에 대한 글을 쓰고자 하고 있다. 


    내가 자살을 결심하던 순간은 대개 감정이 극화된 때가 아니었다. 오히려 차분했다. 그리고 자살을 다짐하던 나의 결심(?)이 굉장히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판단이라고 생각했다. 죽음 말고는 나를 고통에서 해방시킬 방법은 없다고, 이게 최선이라고 그렇게 생각했다. 지금 앞에 적은 이 문장들은 모두 나의 착각일 것이다. 아마 내가 자살을 결심하던 순간은 대개 감정이 극화되었을 터이고, 차분하기보단 흥분된 상태에서, 살고 싶지 않다고 생각만 하던 것은 아닐 것이다. 살고 싶은 마음이 아주 조금은 있었겠지, 아니 어쩌면 아주 조금이 아니라 살고 싶어했던 것도 같다. 편협한 사고 속에서 나는 자살을 다짐했다. (이는 다음 편에서 이어질 내용이다.) 또 자살이라는 방법이 온전히 옳다고 생각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그런데 그냥, 지금 눈앞에 보이는 게 그것뿐이라 손을 뻗으려고 애썼던 것은 아닐까. 이것이 편안해지기 위한 가장 쉬운 방법이라고 스스로를 설득했을 것이다. 그런데 누구나 알다시피 자살을 시도하는 행위는 결코 쉽지 않다. 정말 간단히 생각해봐도 지금 자살을 하는 것보다 내가 좋아하는 투썸플레이스 아이스박스 조각케이크 하나를 사 먹는 것이 훨씬 쉽다.





    자살을 시도하고자 하는 사람은 계속해서 양가감정을 느끼고 있기에, 순간의 개입이 자살 위험성을 낮추는 데에 크게 기여한다는 글을 본 적이 있다. 


    난 계속해서 개입하고 싶다. 

    나의 사고에,

    당신의 사고에.    












    당신이 오늘을 살아남아서, 부디 나의 이 여정에 함께해 주기를 바란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