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갑자기 브랜드 마케터
연말에 갑자기 팀을 이동했다. BX (Brand experience) 팀이다.
기존에 하던 일은 카드사의 앱 서비스를 기획하는 일이었다. 이 일은 수학문제를 푸는 것 같았다. 가맹점-PG- VAN-카드사로 이어지는 결제구조 속에서 적합한 결제 서비스를 기획했다. 금융권의 다양한 규제들과 승인, 매입, 정산의 바다를 요리조리 헤엄치면서, 마지막에는 고객과 만날 화면까지 그려내는 일이었다. 여기에 온갖 운영성 업무들이 더해지면, 업무 파악하랴 실수 없이 처리하랴 예민하고 분주했다.
빨리 가나 느리게 가나의 문제일 뿐, 도착지가 정해져 있는 업무라는 점, 경력이 쌓일수록 쉬워진다는 점이 누군가에게는 매력적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나에게는 엄청난 단점이었다. 누가 하는지에 따라 결과물이 달라지는 업무, 창의적으로 발산하는 업무가 간절했다. 눈에 보이고 손에 잡히는 무언가를 기획하고 만들어내고 싶었다. 그게 내가 기획자가 되고 싶었던 이유였다.
그런데 갑자기, 브랜드팀으로 발령이 난 거다. 그것도 콘텐츠 제작 담당으로, 이럴 수가. 회사 일에서도 개인적인 삶에서도 갈피를 못 잡고 있는 느낌이 드는 때였다. 그래서 더 퇴근 후 나의 콘텐츠를 제작하는 일에 관심을 쏟았다. 회사에서는 때로는 머리를 비우고 일해야 한다고, 스스로 되뇌이던 시기였다. 인생은 역시 아이러니다. 뭔가 엉망진창이라고 주저앉으려는 순간이 되면, 꼭 새 길을 열어준다.
그렇게 처음 간 팀에서는 이상한 기분을 맛봤다. 회사에서의 일은 재미있기 힘들다고, 꼭 맞는 업무는 없다고 마음을 단단히 먹었었다. 그런데, 이 팀에서 주어진 일들은 획일적인 유니폼을 벗고 내 스타일의 옷을 찾아 입은 것 같았다.
홀린 듯 사서 읽었던 책들과 욕심껏 잔뜩 신청했던 강의들은 온통 브랜딩, 스토리텔링, 기획에 관한 이야기였다. 당장 실수를 안 하는 것, 결제구조를 이해하는 것이 중요했던 시절에는 하나도 도움이 되지 않았다. 개인의 삶에서 즐겁게 했던 것들이 회사에서는 무용해지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 이제 모두 업무와 유관한 것이 됐다.
회사는 돈 주고 다니는 곳이 아니고 돈 받고 다는 곳이라고, 훈계 같은 말을 스스로에게 자주 해줬다. 그러니까, 재밌을 수는 없는 거라고 원래 어느 정도 견디고 참고 타협하면서 지내야 한다고. 그렇게 회사에 대한 기대치를 한껏 낮춰 놓았는데, 갑자기 궁금했던 일을 배울 수 있게 된 거다.
나처럼 맞는 일은 있을 거라는 기대를 가지고 있는 분들, 퇴근 전후 자아가 달라져서 혼란스러운 분들께 도움이 되면 좋겠다. 그리고 내 일에 대해 돌아보고 싶을 때 읽어보고 싶다.
맞다, 이 글은 신나서 쓰기 시작한 글이다. 잘하고 싶다는 마음이 드는 업무를 만나는 일, 그 어려운 것이 나에게 일어난 걸 자축하기 위해서. ‘브랜딩 하는 주니어’ 시리즈를 통해 틈틈이 프로젝트에 대해, 관련해 읽고 들은 강의에 대해 인사이트를 나눠보려 한다. 또한 올해 목표인 셀프 브랜딩 과정에 대해서도!
그럼 곧 이어지는 글에서 뵈어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