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자소서가 못 쓴 자소서라니!
대외활동 모집을 위해 대학생 친구들의 자소서를 봤다. 나도 대학교 때 수없이 많이 자소서를 냈기 때문에 감회가 새로웠다. 읽으면서 내가 썼던 수많은 자소서들이 머릿속에 지나갔다.
자소서를 쓰는 입장과 읽는 입장은 전혀 달랐다. 어쩜, 이렇게 열심히 잘 썼을까 싶은 기특한 자소서도 있지만, 의미 없는 문장들로 엮어진 자소서를 읽다 보면 동상이몽이 이런 걸까 싶었다.
'뭘 말하고 싶은 거지?' 고개를 갸우뚱하는 경우도 있었다. 미간을 찌푸리다가도, 쓴 사람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무책임하게, '나를 보여줬으니 알아서 하세요.'라는 마음은 아니었을 텐데 싶기도 했다. 그럼 상대방에게 그렇게 느껴졌다는 게 무척 억울하겠다 싶었다.
직장인이 n년차가 되어도 내가 남에게 어떻게 보이는지 짐작하는 건 여전히 어렵다. 그래도 수많은 대외활동을 하고, 수없이 붙고 또 떨어져 본 사람의 입장에서 좋은 자소서에 대해 몇 가지 생각을 써보려 한다. 정리하면 아래와 같다.
자소서를 읽으며 느낀 점...
쓰는 사람의 관점
-이 정도만 써도 이해하겠지
-일단 나는 하고 싶은 말 했어.. 끝
-나는 다 보여줬으니까, 선별해서 보겠지
읽는 사람의 관점
-쓰지 않으면 모르지
-도대체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걸까?
-뭘 보라고 보여주는지 모르겠네
아래 4가지가 고르게 어필이 되었을 때, 좋은 자소서라고 판단이 됐다.
1. 왜 이 회사/직무인지 (대외활동이라면 왜 이 활동이어야 하는지)
기사에 나온 정보를 짜깁기 하거나 좋은 제품과 서비스를 만들겠다는 포괄적인 내용들로 채우면 안 된다. 개인적인 사용 경험, 배우고 고민한 내용, 분석한 내용을 기반으로 선택한 이유를 적어주는 게 좋다. 이 내용이 없으면 어디에나 사용할 수 있을 것 같은, 즉 복붙 한 느낌의 자소서가 된다.
2. 나를 왜 뽑아야 하는지 (지원동기)
당연한 부분인데, 누락시키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단순히 활동이 좋아 보였다는 식의 기술로 끝나는 경우, 지원자에 대해 이해하고 평가할 근거가 없으니 도무지 뽑을 이유를 찾기 힘들었다.
3. 활동에서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역량이 무엇인지
대외활동인만큼 콘텐츠 제작 역량, 마케팅 역량, SNS 운영 역량으로 정의하여 어필해 준 친구들이 많았다. 스스로 필요한 역량을 정의하고 어필하는 것 자체가 정성으로 느껴졌고, 그 내용이 좋은면 뽑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4. 그 역량과 관련한 나의 구체적인 경험
역량을 정의하는 건 틀을 짜는 것이고, 그 안에 내 경험을 채워야 완성이 된다. 역량과 유관한 경험을 설득력 있게 전달해야 한다. 이때 구체적인 행동과, 수치적 결과를 적어주는 것을 추천한다. 혹은 정성적인 결과라도 적어주거나, 배운 점을 함께 적으면 그 자체로 어필이 될 뿐 아니라, 경험에 대한 정리와 회고가 되는 사람이라는 인상을 줄 수 있다.
그 외에 서비스 관련해 사용 경험과 개선 아이디어를 기재한 경우 돋보였다. 분량이나 항목의 제한이 없다면 적극적으로 기업과 서비스에 필요한 아이디어를 먼저 제안하는 것은 주도적이고 열정적으로 느껴졌다.
그 외 개인적인 소감으로, 게시글이 없는 블로그나 아주 사적인 인스타를 첨부하는 건 지양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마치 집들이에 초대받았는데, 가구 하나 없는 빈 집이나 정리 안 된 너무 사적인 공간에 들어선 느낌이랄까... 자소서는 자신을 그대로 보여주는 게 아니다. 목적이 있는 글인 만큼 목적에 부합하는 사람이라는 걸 증명하는 것이다. 선별 없이 자신의 정보를 전달하는 사람보다 정리된 내용으로 명확하게 어필하는 사람이 더 적합하다고 판단할 수밖에 없다.
나아가 읽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수많은 자소서를 정해진 시간 내 봐야 하므로, 잘 정리해서 보기 좋은 형태로 주어야 한다. 제목 등 중요한 내용을 강조하거나 적절한 문단 나누기는 필수다. 사과를 달라고 하면 사과를 주는 과일가게에 가고 싶지, 온갖 다른 과일이 굴러다니는 좌판을 가리키며 직접 가져가라고 하는 곳에 갈 이유가 없다. 퇴근 시간이 정해져 있는 바쁜 사람들이라면 더욱더.
내가 그냥 누워만 있어도, 나를 필요로 하는 누군가가 날 발견하고 보석처럼 빛날 수 있는 자리에 두면 제일 좋을 것 같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내가 스스로 원석이라는 굳은 믿음을 가지고, 경험하고 부딪히면서 보석이 되어야 하는 것 같다. 모두 스스로를 잘 어필하고, 꼭 맞는 빛나는 자리를 찾으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