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글, 진짜 고민, 깊은 취향

열두 번째 귤껍질 편지

by 귤껍질

분노하고 비관하는 냉정한 글이 아니라, 다정하고 말랑한 글을 쓰고 싶었어요. 그런데 예쁜 글을 쓰고 싶던 건 아니었어요.


실제 고민들은 훨씬 구체적이고, 잘 정리되지 않아요. 생각의 잔여물이 가득 남아 불안과 고민의 싹을 티워요. 이런 이야기를 어떻게 다룰지 몰라, 글로 다 담지 못할 때가 있어요. 나의 마음을 다치게 하지 않는 선에서, 더 솔직한 글을 쓰고 싶어요.


브랜드를 어떻게든 진척시키기 위해서, 무조건 시안과 관련된 내용으로 시작할 거예요. 그리고, 경험 아카이브를 계속할래요. 근황을 전하며, 한 주를 돌아보는 게 귤껍질 편지의 첫 번째 목적이었거든요.




이번 주는 이렇게 흘러갔어요.


1/5(월) : 집 계약서 작성, 이삭토스트, 회사 운동, ‘도우큐먼트’ 피자와 LP 바

1/6(화) : 이삭토스트, 트레바리 독서모임

1/7(수) : 회사 운동, <환승연애> 시청

1/8(목) : 팀장님 집들이

1/9(금) : 대림국수, 필라테스, <프로보노> 시청

1/10(토) : 트레바리 독서모임, 97즈 모임

1/11(일) : LBCC 강의, 파파존스





ch1. 일단 오게 하자, 오면 다 좋아해


숙박업은 청소업이라는 말이 맞았어요. 손님이 오기 전 침구 커버를 갈고, 먼지떨이, 청소기 돌리기, 걸레질을 몇 차례 순서대로 진행해요. 여기까지는 저도 부모님과 같이 해요.


그 뒤에 싱크대 얼룩까지 깨끗하게 지우고, 매번 화장실 바닥과 변기 안까지 닦아내는 과정을 보면 손님맞이란, 청소란 이렇게 하는 거구나,, 약간 숙연해져요.


엄마는 "물로 씻어내면 되는 건 하나도 안 더러워" 라며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것 같아요.


그럼 속으로 ‘청소는 부모님께 맡기자’, 하고 제가 할 수 있는 걸 찾아보는데요. 브랜딩인 것 같아요. "오기만 하면 다 좋아해, 일단 오게 해 줘"라는 엄마의 말이 머리에 콕 박혀서, 어떤 플랫폼에 올릴지, 어떤 콘텐츠를 기획할지, 어떻게 소개할지 고민 중이에요.



트레바리, 주말토리 경험상점 같은 플랫폼을 통해 공간과 글쓰기에 관한 모임을 열고 싶어요. 스테이폴리오, 구공스테이, 스페이스클라우스 등 플랫폼에도 올리고 싶고, 공간이 필요한 분들을 더 만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볼래요.


브런치 글 100개를 쓴 기념으로 귤껍질 전시를 기획해 보자는 생각도 들었어요. 마음이 따스해지는 노란색으로 가득한 전시를 준비해 보려고요.


이렇게 해야 할 일이 우다다 떠오를 때는 심호흡을 하고, 하나씩 해보자고 다짐해요. 우선 한 해 동안 시안북스테이의 출발을 함께해 준 분들께 감사 인사를 드렸어요.


올해는 시안 북스테이에 머무르는 걸 넘어서 시안 갤러리, 공방 공간에도 많은 분들을 초대할래요.



ch2. 서른 살에 집주인이 된 주디


회사에서 닉네임이 주디예요. 5일 월요일부터 집 계약을 위해 급하게 반차를 쓰게 되어서, 팀장님께 사유를 공유드렸어요.


오후에 출근하니 이른 나이에 집주인이 됐다며 축하해 주셨어요. 이 말을 듣고 팀원들이 한 분씩 오셔서 축하도 해주시고, 부동산 정보도 주셨는데요.


자신의 경험만큼 세상이 확장되는 게 맞는 것 같아요. 부동산이라는 새로운 세상이 열리는 느낌이었어요.


당시에는 지금 머무는 집 전세를 포함해 신경 쓸 것이 한두 개가 아니었고, 회사 분들이 집 매매 소식을 알게 되는 게 좀 부담스럽기도 했어요.


비밀로 할 수는 없지만, 주변에 너무 알리지는 말아야겠다, 말하고 싶어도 꾹 참아봐야지 다짐했어요. 그래도 열두 살의 부자가 된 키라가 된 것 같아 일단 기분이 좋았어요.




ch3. 올해의 단어를 정해 봐요.


새해가 시작될 때 한해의 키워드를 정해요. 2026년의 비공식적인 키워드는 사랑이에요. 사람, 일, 공간, 물건 내가 사랑하는 것들이 뭔지 알아가고 싶어요.


그런데 글로 쓸지는 고민이에요. 사랑이 글의 주제가 되면, 갈피를 못 잡고 흩어지는 글들이 될 것 같거든요. 그래서 글을 많이 써도, 그중 대부분은 저의 개인 기록으로 남기려고요.



공식적인 키워드는 해외예요. 한국이 너무 재밌어요. 그런데 더 큰 세상을 보고 싶어요. 내년에는 해외여행을 많이 다닐 거예요. 경험 안에서 상상하고 선택하게 되니까, 이 경험을 넓히고 싶어요.


쉽게 쉽게 해외로 눈을 돌려 보겠다고, 계속 밖으로 나갈 궁리를 하는 한 해를 만들어봐야겠다고 다짐했어요.




ch4. 내 삶을 담아낼, 공간은 어떤 모습일까?


팀장님 댁 집들이를 가서, “오직 예쁜 것만 집에 들어올 수 있어”라는 인테리어 원칙을 얻어왔어요.


집은 그 사람의 많은 걸 담고 있어서, 모아놓은 인형들, 조명들, 깔끔하고 따스한 인테리어가 집주인이 어떤 사람인지 메시지를 던지고 있었어요.



하나도 빠짐없이 맛있는, 선별된 음식들을 코스로 먹고 집 곳곳을 소개받았어요. 마지막에는 우주 조명을 켜고 방바닥에 누워 마션의 'starman' 노래를 들었어요. 캠프파이어를 온 듯 기분이 말랑센치해졌어요.




내 집에 대한 상상의 물꼬가 트이고, 인테리어의 모든 의사결정을 나답게 하겠다고 다짐했어요. 그냥 예쁜 집이 아니고 취향과 감도가 깊어서, 부러운 것에서 나아가 탐나는 집이 되겠다고요.


집으로 돌아오며, 마침 휴대폰 배터리도 나가서 손에 잡히는 종이에 제가 원하는 집에 대한 마인드맵을 그렸어요.


다정하고 따뜻한 간접등을 쓰고, 곳곳에 노란 등을 두고 싶어요. 욕실, 잠, 요리, 작업 공간으로 구분해서 각 공간들이 제 역할을 똑 부러지게 해낼 수 있도록 하고 싶고요.


작업공간에는 실컷 사부작 거릴 수 있게 맥과 키보드, 드로잉 패드, 맥, 압화 도구, 뜨개질거리를 둘 거예요. 한쪽에는 저의 애장품을 전시하고요. 퇴근 후 글 쓰고, 상상하는 공간으로 할래요.



부엌 싱크는 눈이 편안한 연녹색을 하고 싶어요. 서툴러도 손님이 오면 요리를 해줄래요. 같은 브랜드가 아니라도 왠지 잘 어우러지는 귀여운 도자기 접시들을 내놓고 싶어요. 그 구성만 보고 있어도 즐거운 기분이 들게요.



화장실은 가장 예뻐야 해요. 인디핑크색 타일로 집의 시그니쳐 공간이 되면 좋겠어요. 침실에는 좋아하는 인형과 깨끗한 침구를 둘래요. 다른 공간과 구분되어, 오롯이 잠에 집중할 수 있게 하는 게 중요해요.


시안 갤러리와 공방을 빈 땅 위에 짓고 인테리어까지 한 경험이 있는, 엄마가 든든한 지원군이 되어줄 것 같아요.


봄이 시작하면 입주 후, 손님을 많이 초대하고 인테리어 포인트들을 알려주는 즐거운 순간을 자주 상상해요.




ch4. 취향의 바다를 헤엄치며, 나와 비슷한 존재들을 만나기를 기다려요.


유명세, 여기서 '세'는 세금을 의미한다고 해요. 유명하면 그에 따른 비용도 있다는 거겠죠. 독서모임에서 유명에 관한 이야기를 나눴어요.


그 과정에서 저는 유명한 사람보다 취향이 깊은 사람을 좋아하고, 제가 부러워하는 건 그 취향을 인정받고 공유하며 새로운 사람, 경험과 연결되는 거란 걸 알게 되었어요.


정밀아, 루시드폴, 무과수, 하미나 등 자신의 이야기를 만들어가고 있는 사람들을 관심 있게 보고 있어요. 유명을 위한 유명보다는 삶을 섬세하게 보고, 그 시선을 같이 따라가며 공감해 주는 이들이 있는, 어딘가 닮은 사람들을 팔로우로 가진 사람이 되고 싶어요.





ch5. 마음의 중심에 무엇이 있나요?


“저는 의존적인 사람인가요? 독립적인 사람인가요? “라는 질문을 종종 했어요. 의존하고 기댈 수 있는 환경에 나를 둘지, 삶에서 독립적으로 개척해야 하는 영역을 많이 둘지 고민이거든요.


이 질문이 ”나는 어떤 사람처럼 보이는지? “로 이어졌고, 또 “어떤 사람과 함께하면 좋을지?”로 흘러갔어요. 그리고 최근에 흥미로운 답변을 들었어요.



“세희 님은 뭐랄까, 중심이 비어 있는 사람 같아요. (여기서 살짝 동공이 흔들렸어요..) 강한 욕망은 강한 결핍에서 나오는데, 그게 없잖아요? 그래서 무엇이든 될 수 있어 보여요. (여기서는 안도했죠) 누구와도 잘 지낼 수 있고, 그래서 본인이 선택하면 될 것 같은데, 어렵죠.”라는 말에서, 나의 욕망을 생각하게 됐어요.


지금까지는 강한 결핍이 저를 힘들게 하지 않게, 안전 기지를 만들고 거기서 한 발을 빼서 다른 곳을 디뎌봤던 것 같아요. 이런 방식이 저의 불안을 잘 다룰 수 있게 해 줘서 재밌고 따뜻했어요.


안정적인 삶의 구조를 만들기 위해 많이 노력도 해서, 지금은 편안함 속에서 작게 계속 도전하는 방식을 바꾸고 싶지는 않아요.


그런데 중심이 비어 있다는 말에 공감도 되고, 계속 빈 상태로 두기보다 어떤 삶의 가치나 기준으로 채울지 고민해 봐야겠어요.




ch6. 게으름, 느림의 순기능


과장님, 대리님들과 수다를 떨다가 게으름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어요. 놀랍게도? 부모님 중 한 분이라도 게으르면, 자녀가 게으르다! 는 결론에 이르렀어요. “부지런함과 게으름 중 게으름이 우성 유전자네요”라는 말이 재밌었어요. 그런데 게으른 거 나쁘지 않은 것 같아요.


부지런하기보다, 적당히 게으르고 나른하고 느릿한 모습을 상상했을 때 마음이 더 편안하고 기대된달까요. 효율적으로 꽉 채워사는 걸 좋아한다고 생각했는데, 요즘에는 빈 시간들이 주는 느긋함도 잘 즐길 수 있게 되는 것 같아요.



느긋함이 삶을 더 풍요롭게 해 줄 것 같아서 좋다는, 여전히 효율성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마음도 있는데요. 어쩌겠어요, 삶을 야무지게 풍요롭게 즐기고 싶어 하는 게 제 본성인 것을요.


쏟아지는 자극들에서 벗어나고, 뭔가를 해야 할 것 같은 불안에서 자유로운 시간을 의도적으로 만들어 보려 해요. 아무 노래도 듣지 않으며, 계절을 느끼며 산책하거나, 의식적으로 카페와 지하철의 사람들의 얼굴을 바라보면서요.


그러면 일상이 얼마나 시시각각으로 변하는지, 지금 이 시간에도 다양한 사람들의 삶이 동시에 흘러가고 있다는 걸 실감하게 돼요.




사진을 잘 찍고 싶어요. 그 안에 담긴 이야기들이 궁금해지는, 그냥 예쁜 게 아니라 사연 있어 보이는 사진을 찍을래요.


독서모임 후, 다음 약속을 기다리면서!

공차에서 만난 스티치!

선물 받은 더피와 까치예요

꼭 붙어서, 안 떨어지려 하는 코알라들이 귀여워요.

소화가 잘 되었던, 최애 피자라 기록해요.

의외로 맛났던 곶감 치즈말이, 이런 디저트를 직접 만들어 보고 싶어요. (그냥 실컷 사먹을 수 있는 재력도 가지고 싶구요 ㅎㅎ)



가장 빨리 소식을 받아보시고 싶다면, 귤껍질 레터를 구독해 보세요.



keyword
월요일 연재
이전 11화그냥 가는 거야, 서른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