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한 번째 귤껍질 편지
이제 만 나이로 새야 한다고 하지만, 서른이 된다는 걸 굳이 미루고 싶지 않달까요. 서른의 무게를 잔뜩 느끼고 있어요.
대학교 시절에 제가 여기저기 통통 튀어 다닌다며, 엄마가 “우리 딸 보면, 살아있는 것 같달까. 그런 에너지가 느껴져서 좋아”라고 한 적 있어요.
아직도 기억나는 걸 보니, 살아있는 것 같다는 표현이 좋았나 봐요. 서른에도 생기 있는 사람으로 살래요.
ch1. 인생의 책임
서른이 되면, 무엇이 준비되어 있어야 할까요? 저는 나이에 따라 부과되는 과제들을 정말 싫어하지만, 매도 먼저 맞는 게 낫다는 마음으로 빨리 해치워버렸어요. 부지런하게 제때 필요한 것을 먼저 찾아 하고, 남들보다 한 발 빨리 완료하려고 했어요.
그런데 이게 정말 피로했어요. 불안 때문에 깊이 사유할 시간도 없이 행동하느라, 지칠 때가 많았어요. 서른이 되고, 또 다른 과제들을 요구받고 있는다고 느껴요. 일반적으로 가장 좋다고 생각하는 길을 말해준다는 걸 이해해요.
하지만 잘 해내면 잘했다, 그러니 다음 건 늦게 해, 가 아니라 잘했으니 다음 것도 잘할 수 있지? 라는 기대가 들려올 거라는 생각에 벌써부터 지쳐요.
그럼 좀 화가 나요. 스스로를 억압하는 자신에 대한 것이 제일 크고, 암묵적으로 저를 재촉하는 주변의 모든 사람과 대상들에게로 확장되어요. 급기야는 지금 멀쩡하게 굴러가는 일상을 정지하고 마음을 따라 튀어나가고 싶은 충동까지 들게 하죠.
그래서 요구되는 과제들을 해치우는 게 아니라, 내게 맞는 길 위에서 삶의 속도와 모습을 재정의할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그럼 억울함도 분노도 없이 마음이 자연스럽게 흘러갈 수 있을 것 같아요.
ch2. 글을 쓰는 것
어떻게 꾸준히 기록할까? 에 대한 고민을 하는 사람이 많다고 느껴요. 온갖 뉴스레터와 콘텐츠에서 다루는 주제이기도 하고요. 제가 뭔가를 기록한다고 하면 글의 내용도 모르고 대단하다고 하는 사람들도 많이 봤어요. 근데 그냥 중독된 거예요.
쓰다 보면, 글을 계속 쓰는 사람들은 느끼겠지만, 수다 떨기나 정리하기 같은 일종의 습관이 돼요. 그냥 자연스럽게 쓰게 돼서, 쓰지 않는 게 오히려 어색하고 불편하달까요. 인스타그램 스토리와 게시물을 올리는 느낌, 사진첩을 다시 보는 느낌과 비슷해요.
점심시간에도, 지하철에서도, 친구를 기다리면서도, 급기야는 건널목에서 신호가 바뀌기 전까지도 계속 써요. 그냥 재밌거든요. 뿌듯하거든요.
쓰는 걸 멈추는 게 더 어려워진 지금, 부디 제 글이 의미 있는 콘텐츠가 되길 바라고 있어요.
언젠가 쓰는 재미를 알고 싶은 사람들을 모아, 글로 삶을 회고하고 두 번 사는 것 같은 경험을 더 많은 사람들이 할 수 있도록 하고 싶어요.
귤껍질 북클럽, 글쓰기 클럽을 상상해 보고 혼자 기분이 좋아졌어요.
ch3. 창의성의 단서
박웅현 님의 인터뷰에서 다정하게, 세상에서 제일 소중한 것을 보듯 대상을 바라보고 싶다는 말을 들었어요. 저도 그런 어른이 되고 싶어요. 그리고 제 주변에 그런 분들이 많길 바라요.
작은 것들을 잘 포착해서 삶의 해상도를 높이는 게 창의성의 일종이라는 말도 좋았어요. 그리고 제가 요즘 잘하고 있는 것 같아 뿌듯했어요.
요즘에는 햇살에 꽂혀 있는데요. 창의 크기와 재질에 따라 햇살이 들이치는 모습이 달라지는 점, 시간에 따라 색과 분위기가 변하는 것, 그리고 대상에 따라 부서지고 반사되는 형태가 바뀌는 걸 관찰하는 게 좋아요.
사람들의 옷차림에서 귀여움을 찾는 것도 재미있어요. 털모자 위에 헤드셋을 올려서, 모자가 눌린 모양이라던지, 목도리를 두르는 방법, 볼터치와 가방에 달린 키링 같은 각자가 귀엽다고 생각하는 포인트들이 재밌어요.
너무 삶을 자세하게 보려는 게 아닐까, 혼자 걱정하는 마음도 있었는데, 창의적인 사람이 되는 길이라 생각하니 마음이 편해졌어요.
ch4. 일단 내가 좋아하고, 의미를 찾으면
새해 첫 책은 이전에 읽었던 <시골 빵집에서 자본론을 굽다>와 <좋은 기분>을 다시 펼쳐봤어요. 관심이 있는 시기에 책을 다시 읽으면 내가 쓴 글인 것 마냥 깊게 공감되고, 정말 술술 읽혀요. 분명 읽었는데, 이런 의도로 쓰였구나, 전혀 새롭게 다가오는 문구들이 있었어요.
전자는 천연 효모로 빵을 만드는 과정에 대한 책으로, 간편하고 부패하지 않는 돈의 특징을 깨닫고 여기서 탈피하고자 해요. 음식마저 자연스러운 상태를 벗어나 쉽고 해로워지는 것에 저항해요.
후자는 좋은 기분을 응원해요. 기분 따위는 상관없다며, 쉽게 무시되는 세상에서, 좋은 기분이 아주 중요하다고 말하며 고민과 정성이 가득 들어간 아이스크림을 건네요.
두 책 모두 세상에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어서, 이유 있는 한 걸음씩을 내딛으며 계속 생동하고 변하는 브랜드를 만드는 내용이에요. 저도 그런 브랜드를 만들고 싶어요. 2026년에는 이를 위한 초석을 다져볼래요.
그런 의미에서, 안 팔리면 어떤가요,라는 다소 무책임한 생각으로, 하지만 어떤 의도는 가지고서 이것저것 제작해보려 해요. 책도, 물건도, 지금 제가 만들 수 있는 것으로 다양하게 생산해 보고, 이 브런치 글처럼 누군가에게 닿을지 기대하는 마음으로 세상에 내놓을래요.
ch5. 선물하는 기쁨
올해는 선물을 잘하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많은 돈을 쓰겠다, 라기보다 마음에 남는 선물과 메시지를 잘 주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선물 잘 주는 사람을 뽑으면 1등은 못해도 순위권에 드는 거죠.
왜냐면, 일단 선물을 잘 주는 건 상대에게 존중받는 느낌, 사랑받는 느낌을 잘 준다는 거고, 취향이 깊다는 거고, 맥락을 읽는 역량이 뛰어나다는 것까지 모두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일 같거든요. 모두 제가 지향하는 모습이고요.
정말 필요한, 정말 어려운 일이겠지만, 상상해야 그렇게 되니까. 목표로 세워봐요.
그리고 나이를 먹으면서 같은 사람을 다시 만나는 주기가 정말 길어져요. 하고 싶은 건 해야 하고, 싫으면 정말 안 하는 성격이라 약속을 조정도 잘하고 때로는 파토내는 다소 좋지 못한 행동을 하는데요. 오랜만에 보는 인연들을 귀하게 여기자고, 보고 싶고 생각나는 사람이 되자고 연초 다짐을 단단히 해봐요.
엄마표 떡국, 계란말이, 갈치, 아빠표 김밥까지 집밥을 많이, 가득, 충분히 먹고 몸만 아니라 마음까지 토실해졌어요.
연말연초, 시안에서의 시간들을 공유해요.
가장 빨리 소식을 받아보시고 싶다면, 귤껍질 레터를 구독해 보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