왠지 눈물이 날 것 같은, 행복한데 무거운 연말

열 번째 귤껍질 편지

by 귤껍질

올해 연말은, 괜히 마음이 무거워요. 어른이 되는 것 같아요. 지인들과 지피티와 많이 대화하고, 글을 쓰고, 차분한 노래를 들어요.


마음에 돌을 얹어둔 것 같은 느낌, 먼 길을 떠나기 전 잠시 멈춰 방향을 잡는 느낌, 제 앞에 놓인 시간들이 이전에 느껴보지 못한 크기로 다가왔어요. 결혼, 커리어, 집 이런 것들이 갑자기 모두 살아있는 단어로 느껴져요.


어딘가에서 떨어져 나와서 나의 뿌리를 내려야 할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어요. 특히 선택의 무게가 정말 무겁게 느껴져서, 낯설기까지 했죠.


무언가를 선택하고, 포기하고, 계획하고 여러 번 해 온 과정들인데 요즘에는 유독, 단계마다 무겁게 발을 디뎌야만 할 것 같았어요. 이 마음은 어디에서 온 걸까, 분명 나는 그대로인데, 고민해 봤어요.


그러다가 제가 어른이 되고 있다는 것, 마음이 나이가 들고 삶을 좀 더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있다는 걸 알았어요.



ch1. 집을 샀어요.


사고 보니, 출퇴근길이 걱정되기는 하지만 어쨌든 다정한 동네에 아늑하고 작은 저의 집을 샀어요. 안락하게 절 안아주고, 가격도 올라서 미래에 다른 꿈을 꿀 수 있는 토대가 되길 바라요.


자세한 내용을 다른 브런치 글로 남겼어요. 아래 지피티가 글을 읽고 분석해 준 내용을 덧붙여요. 요즘 종종, 제 글이나 생각들을 채팅 창에 넣고, 코멘트를 받아봐요. 수많은 사람들의 데이터들을 토대로 분석된 나는, 어떤 사람인지 들어보면 기분이 새로워요.





ch2. 같은 방향을 보는 것, 대화가 즐거운 사람


<건축탐구 집>을 통해 알게 된 임형남, 노은주 건축가님의 북토크에 다녀왔어요. 두 분은 지금까지 20권의 책을 쓰셨다는 걸, 이번 북토크를 통해 처음 알게 됐어요. 부부가 같이 책을 쓰는 삶을 볼 수 있게 된 것, 그 부부가 땅과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집을 짓는 사람들이라는 것이 좋았어요.


같은 결의 생각을 하고, 그 생각을 나누면서 깊어지고 단단해지고, 그 결과물로서 책을 내는 과정을 듣고 왔어요. 내가 살아야 할 공간에 대한 고민을 할 수 있을 거라고 기대했는데, 발 딛고 선 땅과 나를 둘러싼 풍경들, 그리고 그 안에서 누구와 살 것인가까지 상상해 볼 수 있었어요.




ch3. 제가 좋아하는 가수는,


"좋아하는 가수 있어요?" 누가 물으면, 정밀아라고 답해요. 발음을 헷갈려하시면, "정밀하다, 의 그 정밀이에요, 정밀아."라며 집어 줘요.


시처럼, 일기처럼 쓴 가사와, 엄마의 표현을 빌리면 한 자리에서 백 곡을 불러도 목이 상하지 않을 것 같은, 나지막한 노랫소리가 편안해요. 인디밴드와 가수들의 공연을 자주 다니던 시절, 우연히 알게 된 가수예요. 엄마에게 소개하고 그 해 연말 콘서트를 같이 갔고, 올해가 두 번째였어요.


일상 속에서 사랑이 깃든 순간들이 많다는 말, '서울역에서 출발'이라는 노래가 담아낸 엄마와의 잔잔한 대화, 서울역에서 조그마한 당근 몇 개 안주 삼아 생소주를 들이켜던 아저씨들을 보고, 그 장면을 머리에 담아뒀다가, 가사로 써 내려갔다는 '어른'이라는 노래에 대한 이야기, 떠나간 두 친구를 기리는 '먼 곳'과 달라진 청파로를 떠올리면서 부른 '오래된 동네'까지.


한 사람의 이야기가 노래 안에 고스란히 담겨 있었어요. 그 이야기 안에는 공감되는 것들이 너무도 많아, 모두가 각자의 기억들을 떠올리며 안온한 기분을 느꼈어요.




ch4. 올해의 우리는


회사 만들기 동아리에서 아주 즐거운 회식 자리를 가진 적이 있어요. 생산적인 이야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유독 많이 모였어서, 내년 계획을 세우자는 제안에 모두 열심히 목표를 떠올렸어요. 그리고 다음 모임의 핑계는 중간 점검, 그리고 연말에 성과 점검을 위해 꼭 모이자고 약속했어요.


그래서 정말 카톡방을 만들고, 두 번의 모임을 가졌어요. 올 초에 저의 목표는 탄탄 마른, 줄여서 탄마가 되는 거였죠. 마르고 탄탄한 몸을 가지고 싶었어요. 무리해서 다이어트하기는 싫고, 야금야금 조금씩 근육량을 늘리고 살을 빼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 결과 약간의 다이어트와 자세 교정, 그리고 자세히 보면 알 수 있는 정도의 잔근육들을 얻었어요.


하지만 탄탄마른이라는 목표는 꽤나 달성이 어려워 보여서, 중간에 회고로 목표를 바꿨어요. 지금 생각해 보면, 귤껍질 편지를 쓴 계기 중에 이때의 목표 수정이 포함되어 있었네요. 그렇게 어찌어찌 올해 목표를 달성했어요.


다른 분들은 말아톤, 드럼, 도수치로, 기록 등의 목표를 세웠고, 얼마만큼이던지 그 목표와는 한 걸음씩 가까워졌어요.


내년 목표를 세우고, 사진을 왕창 찍고 헤어졌어요. 듀오링고, 근육량, 문화생활 등 여러 목표가 나왔어요.


저는 내년에 물건 일지를 쓰기로 했어요. 이사를 가면서 저의 물건들과 그 안에 담긴 사랑스러운, 싫은, 슬프고, 아쉽고, 기쁘고, 고마웠던 기억의 조각들을 소개하는 글을 써보려고요.





귀여운 것들이 눈에 쏙쏙 들어와요. 맑은 눈의 광인, 그게 바로 저인데요. 호기심이 가는 것, 귀여운 것을 보면 눈이 커지고, 더 맑아지고, 그래요. 잘 포착해서 사진으로 남겨두고, 글을 쓸 때, 인스타 게시물을 올릴 때 등등에 유용하게 써먹어요. 물론 그냥 기분이 좋으니까, 사진첩에 담아두고 들여다보기도 하고요.


손글씨, 손그림들


고개를 빠꼼 내민 곰돌이들


거북목 눈사람들


딱, 적당히, 하찮고, 그래서 사랑스러운 눈사람


닉과 주디


꼬질한 내 토끼인형


눈사람들


물고기들과


다정한 노란색 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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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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