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아보고 싶은 생각, 마음, 경험들에 대해

아홉 번째 귤껍질 편지

by 귤껍질

올해가 끝나간다는 기분에 괜히 감성적이 된 덕분에, 글이 잘 써지는 시간을 보내고 있어요. 싱숭생숭했던 아홉수를 떠나보내면서 시원 섭섭해요. 이번 글은 연말에 드는 여러 감상들을 쭉 적어보았어요.



ch1. 쌓인 시간들


손 편지를 받으니 기분이 좋았어요. 다이어리 앞에 끼워두고 여러 번 읽었어요. 그렇게 그냥 불특정 다수를 향한 글이 아니라, 누군가에게 전달되길 바라는 마음 한 조각이 담긴 글, 편지의 매력에 빠져버렸어요.


귤껍질편지보다, 귤껍질레터라는 말이 더 좋다고 추천을 받았는데요. 뉴스레터,라는 익숙한 말보다는 약간 낯선 '편지'라는 표현이 더 좋았어요. 세련되려고, 대중적이려고 하지 않는 느낌이 들었거든요.


귤껍질 편지를 쓰면서 더 편지 쓰기에 대해 생각하게 됐어요. 손글씨가 아니라 온라인으로 전하는 게 아쉽지만 제 마음이 느껴지게 편지지의 색을 고르는 마음으로 뉴스레터의 배경색을 골랐어요. 제 글에서 누군가가 마음에 드는 문장을 발견할 수 있기를 바라면서 써요.


브런치에 쌓인 글이 거의 100개가 되어가요. 저는 글을 쓰는 게 생각을 정리하면서 스트레스를 낮추고, 기분을 정화하는 방법이에요. 그 시간들이 쌓인 결과라고 생각하니 새삼스러워서, 이제는 방향성과 의미를 좀 더 부여해 보려고요. 글들이 모여 무엇이 될 수 있을지? 이들을 엮어서 다음 단계로 나아갈 방법을 고민 중이에요.



ch2. 한 해 동안의 단어들


어떤 시간들을 연결할 키워드를 떠올려보는 걸 좋아하는데요. 올해 초에 '공간'이라는 키워드로 여러 경험을 해보자고 생각했어요. 꾸준히 쓰지는 못했지만, 공간에 대한 기록들을 모아둘 브런치북도 기획했어요.


(아래 링크에서 확인할 수 있어요!)


부모님의 공간인 '시안'에 대해 생각하면서, 수많은 공간을 탐방하고, 공간 기획자분들과 교류했어요. 공간이 미운점은 개성으로 인정하고, 예쁜 점은 구석구석 다 알아주면서 돌보는 느낌을 받으면, 그 공간이 더 특별해지더라고요. 그 과정을 듣는 게 즐거워서, 모두가 나와 꼭 닮은 공간을 만들고 그 안에서 자신의 이야기를 만들어가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문래에서 신촌으로 그리고 다시 목동으로 여러 번 이사를 하면서 집에 대해 생각하게 됐어요. 그리고 내년 초에 독립을 하면서 (지금까지는 쭉 부모님 댁에 살았어요.) 직접 소유하고, 가꾸는 나의 집을 처음 상상해 봤어요. 이제 막 고민을 시작했고, 부동산 시장은 매물이 적은 불장이고 전세값도 치솟아서 오래 걸리겠거니 했는데, 최근에 어떤 결정을 내렸어요. (이 과정은 다른 글에서 풀어볼게요!)


한 해의 이야기를 잘 꿰어낼 찰떡같은 단어를 고른 것 같아 신기하기도, 뿌듯하기도 해요. 내년의 저는 어떤 단어들로 경험들을 선택하고 엮어낼지 기대해 봐요.



ch3. 재미있는 거 뭐 없어?


재밌는 게 있었으면 좋겠다, 는 말을 많이 하는데요. 사람들은 도파민 중독자라고 하지만, 릴스보다 긴 영상과 책을 좋아하고 글 쓰는 게 가장 재미있는 사람으로서 조금 억울하기도 해요.


저에게 재미란, 호기심인 것 같아요. 궁금해지는 대상을 만나고 탐구하는 것, 그리고 마침내 나의 것으로 소화해서 어떤 결과물을 내놓는 것이 가장 재미있어요.


독자님께는 어떤 것이 가장 행복을 느끼게 해 주나요? 오늘과 같은 안온한 내일일 수도, 인내한 끝에 온 성취일 수도, 통제받지 않는 자유일 수도, 엄청 다양할 것 같아요. 아무튼 그 대상들을 잘 알면, 이해하고 나아가는 힘이 된다고 생각해요



ch4. 맘에 쏙 드는 문장들


예쁜 말들, 문장들을 애정해요. 들으면 햄토리처럼 모아놨다가 누군가를 가득 예뻐해주고 싶을 때 꺼내서 전달해요.


우리 예쁜 사람 잘 잤어?

보드라운 시간 보내세요.

자네, 참 훌륭하구먼


좋은 말인데, 왠지 낯설어서 놓칠 것 같으면 얼른 메모장에 적어두기도 해요. 그럼 제 글의 소제목으로, 어느 날 마음을 전하고 싶을 때, 괜히 다르게 표현해보고 싶을 때 툭툭 튀어나와요.


ch5. 사주를 보고 싶은 마음, 지혜롭고 싶은 마음


최근에 마구 사주를 보고 싶어 졌어요. 점심시간에 앱을 켜고 생년월일시를 입력했어요. 운명보다는 자율성이 삶의 방향성을 만든다고 생각해요. 태어난 시간이라는 단일한 외부 요인으로 삶을 알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고요. 그런데 믿지 않는다고 해도, 나를 잘 읽어낸 문장들을 만나면 솔깃해지는 건 어쩔 수 없는 것 같아요.


사주에 관심이 많은 언니가 사주란 무엇인지 설명해 주고, 봐준 적이 있어요. 저는 '작은 여름 토양'이라고 했어요. 좋은 토양에서 무언가를 옹골차게 키워낼 수 있는 사주라고요.


사주는 데이터라 참고만 해야 하고, 지금의 현실을 고려하여 현명한 이야기를 해줄 수 있는 사람에게 봐야 한다고 했어요. 해석하는 사람의 지혜가 담겨 있는 풀이는, 당면한 문제의 실마리를 찾는데 도움이 된다고요.


지혜로운 사람이라면, 사주 풀이를 한 번 들어봐도 좋겠다고 생각하는 요즘이에요. 그냥 나의 삶을 돌아볼 수 있고, 상상해 볼 수 있고 그럼 어떤 실마리를 찾지 않을까 해서요.


다양한 사람들의 관점을 들으면서, 같은 것을 봐도 이해의 깊이와 경험에 따라 전혀 다른 생각을 한다는 걸 체감하고 있어요. 삶에 대한 지혜가 필요하다는 걸 느껴요.




ch6. 책임, 단어의 의미


저는 은근히 책임이라는 단어를 내내 머릿속에서 굴리는 사람이더라고요. 부끄럽지만 팀에서 탑 3에 드는 지각쟁이인데요. 이런 일상의 (비교적) 작은 책임은 다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어, 매번 고쳐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인생의 굵직한 책임이라고 느끼면 정신이 아주 명료해져요.


제가 가장 책임감을 느끼는 존재는 바로 미래의 제 자신이에요. 건강, 커리어, 돈 이런 것들에 있어서 미래의 내가 보기에 지금의 나는 열심히 고민하고 나아가고 있는가, 준비하고 있는가 자주 질문해요. 내 인생은 내가 책임진다, 는 어떤 때는 투사 같고, 어떤 때는 엄격한 제삼자 같기도 한 마음이 있다는 걸 느껴요.


그렇다고 지금의 기쁨을 포기하지는 않는데요. 그 또한 일종의 책임감 때문인 것 같기도 해요. 내가 나를 가장 아껴주고, 사랑해 주겠다는 책임감이 저를 지키고 강하게 해 준다고 느껴요.


이 마음이 나이가 들면서 주변 사람들에게도 많이 뻗어나가길 바라요. <두 번째 산>이라는 책에서 말했듯이 인생의 두 번째 산에 오르는 때가 오면, 저에게 주었던 관심과 세 사람이 더 많은 이들에게도 흘러갈 수 있기를.



ch7. 회사 생활의 만족도를 고공행진하게 하는 법


회사 생활 만족도는 계속 떨어지는 게 일반적이라고 하더군요. 사람과의 관계도 처음 좋았던 시기를 지나면 긍정 경험보다 부정 경험이 잘 기억되고 만족도가 떨어지게 된다고요.


이 말에 왠지 저항하고 싶었어요. 그럴 수도 있지만, 안 그러게 만들어보고 싶달까요? 나빠지는 건 당연한 거라고 받아들이는 게 어른스러운 게 아니라, 그러니까 좋아질 방법을 꾸준히 고민하는 게 멋지다고, 그렇게 해보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이전에는 일은 나를 깎아 무언가에 맞추는 거였어요. 지금은 브랜드팀의 일은 내가 있는 그대로의 나일 수 있고, 저의 어떤 특성들이 이 일을 남들보다 쉽게 할 수 있게 해주는 것 같아요. 감사한 마음으로 출퇴근하고 있다,라고 말할 수 있어서 좋아요.




ch8. 내년도 올해만큼 클 수 있다면


내가 좀 컸다, 는 느낌이 언제 드시나요? 저는 이전만큼 많이 흔들리지 않을 때, 내가 깊이 뿌리내리고 있구나, 좀 컸구나 싶어요. 또 새로운 것이 사실 경험해 본 것들의 연장선이라 느껴질 때도 뭘 많이 하긴 했구나 해요. 나무에 비유하면, 잔가지를 많이 쳤다는 느낌이에요.


우당탕탕 작은 것에도 뿌리부터 가지까지 통째로 흔들렸던 시절로 돌아가고 싶지는 않지만, 묘하게, 그 시절에 느낀 새로움과 놀라움의 강도를 다시 느끼고 싶기도 해요. 어른이 되어서도 크게 기뻐하고 깊이 슬퍼하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내년에도 올해만큼 컸으면 좋겠어요. 하던 일들을 잘하게 되고, 그만큼 새로운 것들로 채우면서요.




ch9. 나란 사람은,


자기 이야기를 잘하는 사람, 근데 딱 적당하게 하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고민을 나누고, 상대방의 생각을 듣는 걸 좋아해요. 그래서 잘 물어보고, 내 이야기를 잘하는 편이에요. 그런데 가끔 나에겐 무거운 이야기인데, 너무 가볍게 취급하는 사람을 만나면 왠지 나의 취약점만 드러나버린 것 같은 느낌이 들 때가 있어요.


그러면 속으로 '이제 절대 안 말해!' 어린아이처럼 다짐하고, 다시 또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면 슬쩍 나를 오픈하고, 그러다가 조금 후회하는 패턴이 반복되어요. 사람 간 관계는 미묘하고 어려운 것이라, 이런 감정들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는 것 같아요. 그래도 딱 적당하게 나를 보여주는 스킬을 키우고 싶어요.


일단 해보는 게 저에게는 어렵지 않아요. 그런데 그 방향성을 치밀하게 조정해서 어딘가에 가닿는 건 조금 어려워요. 해보는 것 자체로 충분히 재미있다면 그것만으로 만족해요. 그리고 재밌는 과정들을 통해 언젠가 어딘가 닿게 될 거라고 맘 편하게 생각해요. 그래도, 성과가 있고 다음 단계는 무얼 할지 보인다면 더 신이 날 것 같아요.


용감한 결정들을 잘 내리지만, 사실은 기댈 구석이 있어서 용감한 거예요. 맨땅의 헤딩이라는 말을 싫어해요. (그럼 큰일 나는 거 아닌가요..? 맨땅인데!?) 매 순간 심리적이고 경제적인 안전 기지를 두려고 해요. 부모님, 지인들 혹은 스스로 그 역할을 해줘요. 덕분에 마구 시도해 보고 크고 작게 도전할 수 있어요. 나의 취약점이 뭐고, 용기의 근원이 뭔지 아는 메타인지, 지혜로움이 있었으면 해요. 스스로를 잘 달래고 사용하는 법을 배워가고 있어요.





이번 주 발견한 귀여운 순간들!


겨울 곰돌이들

인생 델리만쥬

뽀용한 눈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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