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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지 May 24. 2023

바다거북의 잠

7시간 동안 숨 참고 자기


살다 보면 가끔 숨이 턱, 막힐 때가 있다. 지난달(2023년 4월) 인도네시아 길리 섬으로 떠나기 직전 내 상황이 그랬다. 나로선 감당하기 힘든 일이 한꺼번에 일어나고 있었다. 뭐랄까, 너무도 오랜만에 내 안의 무언가가 무너져내린 느낌. 지난해 9월부터 최근까지 계속돼온 그 정체 모를 기운을 나는 간절히 떨쳐내고 싶었다. 언제나 그랬듯 다시 일어나고 싶었다. 누구보다도 씩씩하게!


길리 섬에서 바다거북을 만난 건 바로 그런 시기였다.


매부리바다거북과 나. 바다거북의 여유롭고도 우아한 날갯짓에 감탄하며. 사실 헤엄치는 속도가 장난 아니다. 거의 날아다니는 수준 (사진: 스노클링 가이드 Samsul Hadi)


길리섬 바다거북과 영접하다


그야말로 벅차오르는 순간이었다. 영험한 존재를 마주한 기분이었달까. 그때 받은 기운은 감사하게도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내 상태는 분명, 전보다 꽤 나아진 것 같다. 글쎄, 나아졌다기보다 좀 초연해진 것 같기도?


지금이야 다행히 그렇다만, 사실 바다거북을 만난 직후엔 영 정신을 못 차렸다. 엄청난 현기증이 밀려왔던 것이다! 나는 물속에 오래 있는 걸 못 견뎠다. 고글과 호스를 비집고 스며드는 바닷물을 계속 들이켰고, 숨을 쉬기 위해 물 밖으로 나오길 반복했다. 그 와중에도 바다거북은 저 멀리 유유히 계속 헤엄치고 있었지만.


  열대어에 둘러쌓인 나. 빵가루를 뿌리자 물고기들은 기다렸다는 듯 돌진했다. 오른쪽은 다시 매부리바다거북과 나 (사진: Samsul Hadi)


물론 바다거북과 나는 비교할 군번도 못 될 것이다. 바다거북은 이름 그대로 대부분의 시간을 바다에서 보내는 동물이다. 알을 낳기 위해 일 년에 한두 번 육지로 가는 것을 제외하고. 그렇다고 물고기처럼 아가미로 호흡하는 건 또 아니다. 다른 육지 동물처럼 바다거북은 허파로 숨쉰다. 다만 허파의 크기가 몸집 대비 큰 편이어서 물속에 오래 있을 수 있다.


* 거북이는 섬에서 진화한 동물로 알려진다. 바다거북을 포함, 오늘날엔 350여 종의 거북이가 육지와 강, 호수, 바다에서 살아간다. 어디에 살든 모두 육지의 모래나 흙 속에 알을 낳는다.


바닷속을 좋아하는 그들이지만, 해수면 위로 가끔씩 올라오기도 한다. 재빠르게 머리를 내밀고 숨을 쉬었다가 물속으로 다시 들어간다. 길리 섬에서 보트를 타고 스노클링 장소로 이동하던 중에도 이런 바다거북을 여럿 보았다. 반짝이는 해수면 위로 부표처럼 둥실둥실 떠올랐다 사라지는 그들은 정말이지, 너무도 아름다웠다.


바다거북 출몰 스팟에 모인 스노클러들. 사진 속 해수면 위로 떠 있는 머리들은 바다거북의 것이 아니다! (사진: 연지)


물속을 육지보다 더 편안히 여기는 바다거북은 잠도 바닷속에서 잔다. 해수면 가까이 혹은 산호초 깊은 곳이나 해저 암벽 틈 사이에서.


놀라운 건 이들이 바닷속에서 7-10시간까지도 잘 수 있다는 사실이다. 아가미도 없는 바다거북이 어떻게 그토록 숨을 오래 참을 수 있는 걸까?



바다거북의 오랜 잠수 비결


바다거북은 물속에 오래 있기 위해 특별한 적응 능력을 키워왔다. 그들은 허파가 크고, 산소를 운반하는 헤모글로빈 수치가 높으며, 신진대사도 낮다. 더욱이 물속에서 잠을 청하는 순간엔 심박수와 호흡이 극적으로 느려진다. 이는 잠수반응(diving response)이라는 바다거북의 특별한 매커니즘이 작동한 결과다.


휴면(brumation) 상태일 때도 비슷한 반응이 나타난다. 육지거북을 포함한 겨울잠을 자는 동물들이 추위를 피해 동면하며 에너지를 비축하듯, 바다거북은 주변 온도가 추워졌을 때 따뜻한 물로 이동하며 휴면 상태에 들어간다. (바다거북은 피가 차가운 동물이어서 체온을 따뜻하게 유지할 수 있는 곳을 선호한다. 이들이 주로 대서양과 태평양, 인도양 등지 열대 해역에서 발견되는 이유다.)


하와이 해변에서 일광욕 중인 푸른바다거북 한 쌍. 오른쪽은 다시 바다로 돌아갈 준비를 하는 코스타리카 해변의 장수바다거북 (사진: NOAA / Leatherback Trust)


바다거북은 올리브바다거북, 장수거북, 푸른바다거북, 매부리바다거북 등 모두 7종이 있다. 길리 트라왕안 섬엔 주로 매부리바다거북(Hawsbill Turtle)과 푸른바다거북(Green Turtle)이 서식한다. 내가 만난 거북은 매부리바다거북. 주둥이 앞쪽 끝이 매의 부리처럼 뾰족해 이런 이름이 붙여졌단다. (참고로 푸른바다거북은 매부리바다거북과 달리 주둥이 앞쪽이 뭉툭하고 둥글둥글하다.)



매부리바다거북과 푸른바다거북 모두 멸종 위기종이다. 바다거북은 1억 5천만 년 전에 등장해 몇 번의 전 세계 대멸종 시기를 버티고 살아남았지만, 이젠 인간에게 생존을 위협받는 처지가 되었다.


무작위하게 개발되는 해변은 더 이상 바다거북이 알을 낳기에 적합한 장소가 아니다. 인간이 내다버리는 쓰레기도 문제다. 바다거북은 바다에 떠 있는 하얀 비닐봉투를 해파리로 착각해 덥썩 삼키기도 한다. 실제로 바다거북을 부검해보면 비닐과 스티로폼, 그물, 나일론 끈 등 다양한 폐기물이 심심찮게 발견된다고 한다.


게다가 딱딱한 등껍질도 무방비 상태. 특히 매부리바다거북의 등껍질은 색도 짙고 화려해 장신구나 빗, 단추, 안경테 등을 만드는 데 자주 남용된다.



사실 나도 잘못한 게 하나 있다. 바다거북을 발견하고 너무 반가웠던 나머지 (그리고 소원을 빌고자) 바짝 다가가 등껍질을 쓰다듬었다. 그것도 두 번이나! 나중에 알고 보니 그래선 안 되었다. 그러면 바다거북에게 박테리아를 옮기거나 스트레스를 줄 수 있어 위험하다.


함부로 만졌던 건 미안하지만, 그래도 정말 고마웠다고 꼭 말해주고 싶다. 아무 말 없이 나를 스쳐 지나갔을 뿐인데, 신기하게도 큰 위로를 받았다. 그때 바다거북에게 전해 받은 그 소중한 기운을 오래도록 간직하고 싶다.



* 참고 자료

- <동물들처럼>, 스티븐 어스태드, 김성훈 옮김, 월북, 2022

- <Turtle Conservation on the Gili Islands>, www.gilisharkconservation.com

- <Information About Sea Turtles: General Behavior>, Sea Turtle Conservancy, conserveturtles.org

- <바다거북이 한반도 연안에 '단골' 방문하는 이유는?>, 조홍섭 기자, 한겨레, 2021.12.28

- <바다거북>, 이미지 사이언스, 박수현, 2010.0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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