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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예스 Aug 21. 2023

돼지 500마리를 내손으로

양돈업의 실제 1. 새끼돼지가 태어나던 날

30년 전 어린 내가 체험한 '양돈업'이라는 직업은 온 가족이 쉴 새 없이 복작대는 투쟁이었다.

내가 3살 때 제주도에서 배를 타고 육지 경상북도 한 시골로 이사 왔다.

아빠가 돼지치기를 업으로 하시려고 경산에 사는 선배님 농장에서 새끼돼지 6마리를 사 왔다고 한다.

다른 농사도 그렇겠지만 양돈업 등의 동물을 키우는 일은 먹고 싸고 낳기 때문에 휴일이 없는 직군이다.

아빠는 날마다 돼지를 키우며 돈사(돼지우리)를 스스로 짓고, 엄마는 아빠가 작업하는 동안 돼지를 먹이셨다.

돼지 막사를 짓고, 주사를 맞히고, 번식을 시키고, 톱밥을 갈고, 사료를 배급하고, 똥을 치우고, 새끼를 받고, 꼬리를 자르고, 성장에 따라 돼지를 몰아서 다른 돈사로 이동시키고, 돼지를 '잡았다'.


6마리 새끼돼지로 시작한 돼지의 마릿수는 점점 늘어나서 초등학교 5학년 여름까지 500마리가 되었다.

오늘의 추억은 초등학교 2학년때이다.


물론 나와 내 동생들은 거들뿐.

그러나 결코 부모님만이 해냈다고는 할 수 없다.


새끼돼지가 태어나던 순간, 나는 돼지의 출생을 알리기 위해 7분을 뛰어야 했다.

사람은 한번 임신을 하면 일반적인 경우 1명, 쌍둥이일 경우 2명 이상을 낳기도 하지만 돼지는 보통의 경우 10마리에서 14마리를 낳는다. 일반적으로 어미가 가진 젖의 개수의 절반과 근접하게 자식을 낳는 것 같다.



더운 일요일 점심때 엄마가 국수 삶는 멸치국물 냄새가 났다. 아까 '멸치 똥 따라'라고 하셔서 내장과 머리를 제거하고 소쿠리에 담았던 그 멸치다.

나는 끈적한 먼지가 달라붙어있는 선풍기 앞에서 시간을 '연속'으로 맞추고, 바람 세기 조절 레버를 '강풍'으로 돌려놓고 천장을 바라보고 누운 채 신선놀음을 하고 있었다.

번개표 형광등 표면과 주위로 갈색 파리똥이 많이 달라붙어 있다. 그리고 형광등 한쪽 끝이 검푸르게 변해 있고 잊을만하면 한 번씩 깜빡거리고 있다.

다른 형광등은 얼마 전에 교체했는지 파리똥이 조금만 묻어있다. 양쪽이 분홍색인 형광등케이스, 그 형광등을 수동으로도 끌 수 있게 손때 묻은 긴 줄이 내려와 있다. 그리고 그 줄과 부딪히지도 않게 교차하며 긴 파리끈끈이가 여기저기, 대롱대롱 달려 있다. 반이상 새카맣게 파리가 달라붙어 있어서 밥 먹기 전에 보기에는 비위가 좀 상한다.

 

분주한 엄마의 밥 차리는 손길, 오늘은 안방이 아닌 마루에서 상을 펴고 다 같이 국수를 먹으려고 앉아 있었다.

아빠가 목에 땀에 절은 수건을 걸치시고 '아빠다리'를 하고 앉으시고는 한번 더 이마를 닦으셨다.


 "이따가 5분 뒤에 저- 끝에 있는 돈사에 가서 새끼 낳았으면 빨~리 와서 알려 주라" 

라고 하시고 젓가락으로 국수말이를 힘차게 저어 올려 드셨다.


아, 하필 맨 끝에 있는 돈사. 어린 나는 달려가도 7분이다.

돌핀 손목시계가 5분 뒤임을 알리자 나는 국수를 먹다 말고 달려갔다.


출산 중인 돼지, 엉덩이 쪽에 새끼를 받을 수 있는 지푸라기와 돼지수건이 몇 개 깔려있다.

돼지수건은 새끼돼지가 어미의 자궁에서 나올 때 닦아주는 용도의 수건이다.

가서 보니 두 마리가 나와 있었다. 앞다리를 구부리고 눈은 감은 채로 장님처럼 앞을 더듬는듯한 아기돼지, 자세히 볼 겨를도 없이 냅다 뛰었다.

"아빠~!! 두 마리요~!! "

아빠는 다시 땀에 전 수건을 목에 두르고 서둘러 가셨다.

아빠의 멜라민 대접을 보니 지금 막 다 드신 모양이다.

아, 다시 안 가도 된다. 이제 아빠가 계속 돼지를 지키실 것이다.


다른 집 국수는 '소면'인데 우리 국수는 늘 '중면'이었다. 안 그래도 얇지 않은 면인데 산파 심부름을 하고 오니 좀 더 불어 있었다.  국수를 대충 먹고 마당에서 놀았다.


늘 보는 게 돼지라서 출산의 과정을 열심히 지켜보지도 않고, 이렇게 사육에 참여할 과제가 주어질 때나 보는 것이었다. 일단 돈사의 냄새가 싫다.

각 돈사들마다 조금씩 다른 냄새가 나지만 매한가지로 똥냄새를 함유하고 있다.

그래도 돼지우리로 들어가기 전엔 숨을 참을까 잠깐 고민하다가 일단 입장하고 나면 이상하게도 깊게 숨을 들이마시게 된다. 그러면서 '음~ 맞아 이 냄새지~'하고 익숙한 냄새를 맞이하게 되는 것이다.


30년 전이라 탯줄을 어떻게 잘랐는지, 배꼽은 떨어진 건지, 바로 어미의 배 위에 올려 주었는지는 모르겠다.

다만 어미돼지가 기운이 없어서 파리들이 무릎이나 배 옆에 달라붙어도 내쫓을 힘 없이 출산했던 노곤함이 생각난다.

그리고 '견치기'라는 니퍼로 새끼돼지의 송곳니를 자르셨다.

새끼돼지가 불쌍했다. 왜 태어나자마자 이빨을 자르냐고 여쭈어보았다.

송곳니가 날카로워서 어미젖을 깨물면 젖에 상처가 난다는 것이다.

부어서 고름이 나오면 젖이 안 나오니 잘라줘야 한단다.



하루 이틀 뒤 새끼 돼지구경을 하러 가게 되었다.

공중에 파리끈끈이가  매달려 있지만 파리는 여전히 어미돼지 몸에 더러 달라붙어 있었다.

등에가 아니길 정말 다행이라 생각했다.

새끼를 10마리를 낳았는데도 여전히 육중한 몸인 어미돼지는 별 힘없이 옆으로 돌아누워서 잠을 청하고 있다.  

어미가 쉬어야 하기 때문에 새끼돼지들을 어미 칸 근처에 옹기종기 가두어두는 방이 있었다.

아웃백에서 본 것과 비슷한 전등갓에 노란 백열전구, 그 아래 세 벽이 벽돌과 시멘트로 막히게 지어진 방에서 새끼돼지들이 한편에 서로 부대끼며 자고 있다. 자리는 여유로운데 눈도 안 뜨고 모여있는 게 귀여웠다.


젖 먹는 시간이다. 새끼돼지집에서 벽돌로 괴어 놓았던 얇은 합판문을 들어 올린다.

10마리의 새끼돼지들이 눈 뜬 순서대로 우르르 나가서 순식간에 어미돼지의 배를 포위한다.


좀 자 보려고 했던 어미돼지는 움찔 놀라서 콧소리를 '구엥~' 한번 내고는 사정없이 젖이 빨린다.

많은 젖먹이 시간을 마주해 봤지만 신기하게도 늘 우량한 대장 돼지가 있고, 가냘픈 돼지가 있는 것이다.

대장 녀석은 어미젖을 앞발로 눌러가며 다 먹고 다른 돼지들 틈을 파고들어 다른 젖도 쟁취해먹는다.


왜 젖의 개수만큼 낳지 않고 한 마리 더 나왔을까?

제일 비실비실하고 비쩍 마른 돼지는 무리에서 떨어져 나와, 남는 젖이 있는지 힘없이 기웃거린다.


어미가 옆으로 돌아누우면 좌/우 중에 한 줄의 젖 전체가 바닥에 깔리기 때문에 위쪽에 보이는 한 줄 위주로 먹게 된다.  젖의 간격도 딱 새끼돼지 한 마리씩 들어가기 좋은 간격이라 힘이 없는 돼지는 아예 자기의 분량도 없이 사람이 자리를 마련해 주는 대로 조금 먹고 만다.


여지없이 우리아빠가 그 가여운 막내를 구해준다.  

우량한 1등 돼지를 떼어내는 손길이 넌 이제 많이 먹지 않았느냐고 핀잔주는 듯하다.  힘없는 막내돼지를 그 자리에 올려 주지만  옆의 다른 중간돼지들에게 밀려 어느새 무리를 빠져나와 형제들의 엉덩이에 코가 치이는 것이다. (그렇게 해도 제대로 못 먹고 비실대다 보면 수 일 내에 막내돼지는 사망하게 되는 것 같다.)

아래 사진에서도 한 마리가 무리에 치이고 있다.



여동생이다. 돼지와 찍은 사진이 많다. 3살 때쯤. (나는 이사진 찍을 땐 초등 3학년)

새끼돼지들은  힘차게 어미돼지의 유방을 돼지코로 여러 번 들쳐 올려가며 젖을 먹는다.

시간이 흐르고, 어미돼지는 이제 자세를 바꾸며 힘겹게 한쪽 앞다리를 접으며 반쯤 일어나려는 자세를 한다.

그러면 이미 돼지의 젖은 자동으로 아래로 향하며 물려있던 젖은 놓여나게 된다.

밥 다 먹었으면 가라는 뜻인 듯했다.

눈을 몽롱하게 뜬 돼지들은 아쉬움에 다가가지만 어미의 젖이 아니라 옆구리에 코가 박힌다.


다시 새끼돼지들을 따뜻한 백열전구가 있는 새끼돼지방으로 몰아넣는다.

밥시간 끝이다. 잠시만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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