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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예스 Sep 01. 2023

돼지 똥 치우는 건 정말 싫은데..

양돈업의 실제 3. 돼지의 식사와 청소 (이것은 똥에 대한 이야기)

1990년대 어느 여름날도 우리는 돼지를 키웠다.

정말이지 돼지는 먹성이 좋아서 뭐든지 먹는 것 같았다. 똥만 빼고.

엉덩이와 배와 옆구리에 아무리 똥이 묻어 있어도 그들의 코는  깨끗했다. 

여름에 우리는 마루에 둘러앉아 수박을  열심히 먹었다.

수박씨가 너무 많아서 살살 피해 먹는다고 먹었는데도 빠작, 씹혔다.

 식구가 쟁반 한편에 수박껍질 탑을 쌓고 한쪽에는 수박씨가 잔뜩 모여들게 되었다. 개구리 알이라도 되는 듯이 모여가는 까만 수박씨, 그리고 간혹 덜 여문 하얀 씨, 갈색 씨가 섞여있다.

(먼 훗날 씨 없는 수박이 나왔을 때 얼마나 기뻤는지..^^)

파리들이 상황을 분별하지 못하고 수박 주변을 능구렁이같이 훠-이 날아왔다.

아빠가 연두색 파리채를 들었다.

..다시는 수박에 달려들지 못하게 되었다. 안녕.


돼지를 키우면서 파리는 정말 지긋지긋하게 많이 보았다. 여름은 정말 어떤 게 수박씨고 어떤 게 파리인지.

파리의 종류도 여러 가지다.

보통은 까맣고 검회색 무광의 일반 파리인데 어떨 때는 밀레니엄의 분위기를 내뿜는 초록은박 색종이색의 통통한 파리도 있다.

마치 색깔이 풍뎅이 같기도 하다.  예쁜 색이지만 흔하지 않아서 더 징그럽다. 우리는 그 색의 파리를 똥파리라고 불러주었다.

가끔은 진짜 너무 커서 파리채로 잡기도 두려운 왕파리도 있었다.

뭘 먹고 저렇게 클까, 저렇게 큰 녀석들은 왜 집파리보다 개체수가 적을까. 파린줄 알았는데 설마 소등에는 아니겠지 하며 날아다니는 동선을 따라 두려운 눈알을 유심히 굴린다.


왕소등에야 말로 가축에게는 역적이다. 피를 빠는 해충이라 볼 때마다 몸서리가 쳐진다.

보통은 엄전한 황소의 등이나 채끝에서 마치 상처 딱지인양, 아니면 말라붙은 소똥의 일부인 양 딱! 달라붙어 앉아서 피를 빤다.

긴 소꼬리가 제 엉덩이를 찰싹찰싹 휘두르며 때리면 등에는 잠시 자리를 피한다. 등에가 앉았던 자리는 등에크기만 한 피가 맺혀 있었다. 꼭 내가 까불다가 넘어지면 도로에 쓸린 무릎의 상처 같았다.


피맛을 안 왕소등에는 도망가는 척하다가 이번엔 옆구리 쪽의 애매한 등짝에 달라붙는다. 앞다리를 움직여 걸어도 근육이 움직이지 않는 쪽이고, 긴 꼬리로 휘갈겨 보아도 도무지 닿지 않는 그들만의 스위트 스이다.

황소의 주인아재에게 들키기라도 하면 소등에는 욕을 한 바가지 먹으며 빨간 파리채에 맞고 짚풀 아래로 툭, 떨어진다. 그러게 눈치 봐가며 적당히 먹어야지. 자주 있는 일인지 파리채가 아에 마당근처 기둥에 걸려있다.

소의 황토색 속눈썹이 차분하다. 굵은 눈망울 안쪽 눈꼬리로 눈물 자국이 나면 거기엔 파리가 앉아 소의 눈물로 목을 축인다.

등에에 비하면 파리쯤은 소에게는 그냥 있는 듯 없는 듯 공기와 같은 것.

마당 말뚝에 메인 소가 수더분하게 구부려 앉아서 오후의 휴식을 취하며 되새김질을 한다.

윽..!  덜 마른 제 똥에 그대로 퍼질러 앉는다. 안 그래도 달라붙어 마른 논바닥 같은 엉덩이에 덧칠이 추가된다.

며칠 전에 눈 듯한 옆자리 똥에서 나온 쇠똥구리가 부지런히 똥경단을 굴린다. 뒤로 뒤로 재빠르게 요리조리 굴리는데 어쩜 그렇게 넘어지지도, 똥경단을 놓치지도 않는지 신기하다.

쇠똥이 아무리 크고 양이 많아봤자 냄새는 쇠죽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쌉쌉한 향을 나도 모르게 깊이 들이마셔본다.

우리 소와 송아지. 좀 키우다가 팔았다.(엄마와 막내동생)

우리 집 돼지 똥은 천하의 고약한 슈퍼 똥내인데 왜 소똥은 저렇게 깨끗한(?) 향이 나는 거지? 재미없는 맛의 풀을 쇠죽으로 쑤어 먹어서 그런가. 우리 돼지들은 사료를 먹는데 옆집 소는 왠지 밥 먹고 사는 재미가 있기는 할지 가엾어진다.



드디어 아빠가 점잖은 목소리로 거역할 수 없는 명령을 내렸다.

"야들아-. 첫 번째 돈사에 가서 수박 껍데기 좀 주고 와라."

"아~.. 가위,  가위 바위 보!"

"둘이 같이 가라이? -"

"네에 -"

우리는 빨간 바구니를 돈사 바닥에 쏟아부었다. 돼지들이 서로 와서 그 맛도 없는 수박 껍데기를 먹었다.

먹고 남은 바닥이 반들반들하다.

시골이니 음쓰봉투 따윈 없다. 음식물이 아직은 신선 할 때 돼지 밥으로, 도사견의 밥으로 대체되었다. 모아놓았을 뿐이지 우리 뱃속에 들어간 것과 별반 다르지 않기는 했다.

역시 게 중에 대장 노릇을 하는 놈이 더 먹지 못한 것에 분해서 옆에 돼지를 한방 먹이려 하고 있었다.

아빠가 뒷짐을 지고 나타나셨다. 간식을 끝낸 돼지우리를 보더니 초등학교 저학년인 우리 남매에게 장화를 신고 오라 하셨다.  

아빠의 말씀이 곧 법이라 우리는 장화를 신고 왔다.

체험 삶의 현장!

철 봉으로 만들어진 돈사의 문을 돌려 열고 똥 푸는 네모난 삽 두 개를 들고 들어가게 되었다.

평소에 엄마와 아빠의 돼지우리 청소를 많이 봐왔던 더라 내키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피하고 싶었다.

수박값 해봐라며 아빠가 능숙한 솜씨로 시범을 보였다. 허리를 굽히며 쓱 밀어 쓱 치운다. 옆에는 돼지 똥무덤이 모인다.

돼지우리 청소, 벌칙 같은 체험 와중에도 똥을 싸는 돼지는 있다. 아빠가 삽의 뒤편으로 돼지의 엉덩이를 저쪽 방향으로 살짝 민다. 나오던 똥은 멈칫하지도 않고 하던 일을 계속한다.

짤막한 꼬리를 보며 웃기고 귀엽고 그 아래에서 나오고 있는 똥은 역시 더럽다고 한번 더 생각한다.


이 칸에 있는 돼지들은 생후 6개월 정도 된다 .

생후 2년안에 다 자란 돼지가 되어 10년에서 15년을 사니, 사람으로 치면 유치원생 쯤 될 것이다.

여섯 마리에서 여덟 마리 정도 모여서 사는데 제법 자유롭게 움직일 공간이 많았다. 돼지를 꽉꽉 채워 넣으면 20마리 이상은 족히 들어가겠지만 그렇게 하지는 않으셨다. 우리는 돼지와 돼지 사이 바닥에 있는 똥을 재빨리 삽으로 떴다.


돈사의 바닥 표면이 고운 시멘트로 되어있다. 콘크리트가 잘 펴진 반들반들한 바닥에서 똥을 퍼 낼 때 삽이 쓸려 싸압- 하는 소리를 내며 떠졌다. 이 똥을 모아 모아 지푸라기와 섞은 뒤 아빠는 똥장군이라 불리는 일륜 리어카에 실어서 농사하시는 이웃집에 거름으로 갖다 주시겠지.


분만을 앞둔 돼지들이 있는 돈사에 비하면 자유로워 보였다. 그리고 사료 외에도 특식이 있었다. 엄마는 밭에서 직접 기른 친환경 케일도 먹였다. 벌레가 먼저 맛본 맛 좋은 케일은 튼튼함을 자랑하며 계속해서 잎이 생겼다. 당연한 얘기지만 우리가 먹고 남은 음쓰도 분별해서 뼈나 생선가시 같은 것은 절대로 주지 않았다.

스페인의 이베리코돼지는 도토리를 먹인다지만 우리 집 돈사의 이 칸에 있는 돼지들은 더 다양한 식사를 하게 되고 결국 사람똥과 같은 냄새를 풍기게 되는 것이었다.

 

우리 집에서 가장 가까운 첫 번째 돈사 첫 번째 칸, 여유로운 돈사 환경과 별식과 같은 식사, 그것은 특혜이기도 하며, 가장 슬픈 곳이기도 하다.
가장 먼저 출하하게 될 녀석들이다. 팔려 나가는 것이다.


녀석들은 목욕도 자주 하는 것 같다.

아빠는 담배를 입에 삐딱하게 물고 더운 돈사에 호로 등목을 시켜준다. 호스의 끝을 엄지로 살짝 막아 쥐셨다. 물줄기가 둘로 갈라지지 않고 고르고 적당한 부채꼴로 분사되도록 뿌리면, 돼지들은 당연하게 물줄기에 옆구리를 갖다 대는 것 같았다.

땀구멍이 없어 진흙탕에 구르며 체온을 떨어뜨려야 할 녀석들에게 이런 목욕은 천국의 물줄기일 것이다. 목욕으로 회색의 얼룩덜룩한 오염 물질들이 씻겨나가면 살색다운 살갗과 흰 털이 뻣뻣할 테지만 단정해 보이게 정돈이 되는 것이다.

기억속의 돼지우리 청소는 두 세번 밖에 되지않는다.

하지만 초등학교 저학년인 우리보다 몸집이 큰 돼지들 사이에 들어가서 그들의 하우스키퍼를 하는것은 잊을 수 없는 경험이었다.

성인이 되어 알바를 하며 궂은 일이란 생각이 들때, 이 시급을 받고 이짓을 하려고 여기를 다니고 있나는 생각이 엄습해올때, 열정페이조차 없이 돼지우리에 들어갔던 장면을 떠올리며 감사한 마음으로 하게 되었다.

갑자기 아름다운 마무리를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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