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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예스 Oct 20. 2023

신식 썰매부심

아빠는 발명왕

자고로 썰매는 어린이 겨울 스포츠의 꽃이었다.

모두가 무릎을 꿇거나 가부좌를 틀고 탈 때 우리는 의자에 착석한 채로 탔다.

썰매라 부르지 않고 아빠는 스겟또(스케이트) 라고 불렀다.

일반적인 썰매의 가내 수공업 제조공정은 나무 판을 못을 쳐서 이어 박은 판을 만든 다음 바닥 양쪽에 나무막대를 이어 붙이는데 그 막대는 굵은 철사나 알루미늄사로 고정했던 것 같다. 양손에 잡는 막대  끝은 대못을 박아 고정했을 것이었다.

우리 썰매에 대한 자부심은 하늘을 찔렀다.

두발을 얹는 곳과 좌석이 있었으며 점점 진화해서 나중엔 바닥의 쇠 부분이 아예 돈사 건축용ㄱ자 쇠막대를 그라인더로 잘라서 용접해 주셨는데, 한번 지나갈 때마다 바닥에 날카로운 홈이 파여 길이 만들어졌다. 노젓기용으로 손에 드는 막대도 처음엔 못을 박은 것으로 시작해서 점점 진화하더니 쇠봉으로 손잡이를 만들고 건축용 철근 끝을 뾰족이 갈아서 그 자체로 흉기 같이 위험하고 멋졌다. 한번 빙판을 찍으면 엄청난 파워의 흔적이 남았다. 음판을 찍으며 제자리에서 뱅뱅이도 돌아봤다.

끝까지 썰매 경주를 하기도 했다.

물이 얕은 곳은 얼음이 투명하면서도 깡깡히 잘 얼어있어서 스피드가 좋을 것 같지만 방심하는 사이 얼음판 위로 튀어나온 돌부리에 넘어져서 썰매만 1등 하고 탑승한 선수는 꼬리뼈가 시큰하게 벌러덩 넘어진다.


동생이 쇠꼬챙이를 휘두르면 진짜 눈알이 뚫릴까 봐 겁이 나서 경계하게 되었다.

나무막대로 만든 손잡이보다 쇠 손잡이는 더 차가운 단점이 있었지만 너무 든든했다. 한 해 보관하고 나면 파란색 락카 스프레이를 뿌린 쪽에만 녹이 슬지 않았다.

손이 너무 시려서 가끔 젖은 장갑을 벗고 목뒤를 만지며 손을 녹였다. 온기가 떨어지면 이번엔 잠바의 지퍼를 열고 잠바 안쪽 겨드랑이 밑으로 손을 넣었다가, 입김을 불었다가 하며 손을 녹였다.

따뜻한 벙어리장갑을 끼면 T자형의 손잡이를 잡을 수 없고 손가락장갑을 끼면 도대체 갑은 끼나 마나인 것처럼 손가락 뿌리의  사이사이로 냉기가 스며들어왔다.


사진엔 없지만 아빠용 썰매도 있었다.

"아빠랑 스겟또 같이 앉아 타보까?"

아빠 꺼는 좀 더 컸다. 그걸 남동생과 함께 앉아 타본다는 것이다.

그러나 어른을 포함한 두 명의 무게를 얼음이 버티지 못해서 그대로 깨지며 어, 어, 어이구! 풍덩~ 빠져 버렸다.

나는 같이 안 탄 것을 다행으로 여기며 뒤늦게 빵 터져 웃었다.

해가 제법 나서 안 그래도 아빠와 동생이 동승한 썰매가 지나갈 때 냇가 얼음판의 테두리가 출렁출렁했고 아래쪽에 이미 물이 흐르고 있었는데 그래도 설마 깨지기까지 하려고?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겠다고 스스로 함정에 빠지신 건지, 무릎까지 젖은 아빠와 허리까지 젖은 아들.

황급히 옷을 갈아입으러 달려갔다. 세탁기 대신인 엄마의 손에 빨랫감 몇 개가 추가가 되었다.

얼음판 밑으로 노닐던 피라미들에게는 하늘이 무너진 날이었다. 깨진 얼음 틈새로 들어오는 햇볕은 반가웠을 것이다.

그날 이후 아빠가 썰매탄 걸 본 적이 없다. 나무로 만든 '아빠 썰매'는 아마도 그 해 겨울철 땔감으로 바뀌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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