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나예스 Oct 21. 2023

겨울, 눈 오는 날의 고향 풍경

괜찮아, 울어도 돼. 산타할아버지는 없거든

정말 가장 예쁘게 나온 우리 집의 사진이다.

배산임수. 산을 등지고 앞에는 물이 흐르며 태풍에 무너지기 전이었던 오밀조밀한 돌담들.

남동생이 해맑은 모습으로 아빠품에 안겨 있다.

이런 다시는 볼 수 없는 산천의 풍경이 사진으로 남아 있어 부모님께 얼마나 감사한 지 모른다.

지금은 물이 흐르긴 하고 있을지, 너무 졸아있어서 냇가 같지도 않을 것이다.


산토끼는 꼭 눈 오는 겨울에 잡혔다. 숨을 곳 없는 하얀 눈 위로 뛰어다녔던 앞산의 산토끼들.

어떻게 잡아오신 건지 아빠가 회색 토끼 두 마리를 잡아 오셔서 백숙을 해 먹은 적이 있는데 다시는 먹고 싶지 않다. 삼계탕 맛을  예상했던 게 잘못일까? 만화 속 하얀 토끼는 당근을 먹고 큰  눈망울로 귀여운 표정을 짓지만,  야생 동물은 뭐든 혹독하게 살아남으려면 운동량도 많고 먹을거리를 찾는 것도 전쟁일 것이다.  


마을에 출몰했던 산 멧돼지나 산토끼의 공통점은 잿빛의 가지런하지 못한 털,  누린내 나고 질긴 육질이다.  


겨울엔 먹을거리가 별로 없었지만 이웃 한 다리 건너서 얻은 시금장의 맛은 너무 그립다.

시금장,  한 두 번 밖에 못 먹어봤는데 보리밥과 메주 만들고 남은 물로 만들어 삭힌, 된장도 쌈장도 아닌 묽은 장소스였다. 

시금장 속에 가자미식해에 들어갈법한 반쯤 오독오독한 무말랭이가 들어 있었는데 그것만 골라먹는다며 고추도 먹으라고 핀잔을 받았다. 무청인지 고들빼기인지  검초록의 나물 잎도 들어 있었다. 발효된 시금장은 새콤하면서 입맛을 돋우어 주었다.

(좌)목에 군인벨트를 둘렀지만 자세히 보면 여성형 눈사람.

사진 속 마루에 적재되어 있는 것은 쌀이다. 쌀자루 양만 보면 부자다. 곡식용 창고는 없지만 아마 솥도 숟가락도 공출로 빼앗겼던 일제 강점기였다면 온 마을 주민이 우리 집 앞에 몰려들었을 것이다.


저 추운 창호지 문이 흔들리는 정도의 외풍을 어찌 감당하고 살았는지.. 지금이라면 못살았을 것이다.

어릴 때는 겨울이 참 즐거웠다.


엄마는 커피를 타서 마루에 걸터앉아 드셨다. 

너무 맛있게 호로롭하며 따스한 기운이 엄마 얼굴을 가렸다.  

"나도..." 하면

"니들은 커피 마시면 잠 못 자서 안돼에~.

프리마 타 까아?"

"네에~!(네 뭐라도..)"

해서 엄마가 프리마를 따뜻하게 타 주시면 그렇게 맛있었다.


1학년때 인가 우리 가슴만큼 눈이 쌓인 적이 있었는데 눈으로 쌓은 벽 뒤에 숨어서 찍힌 그 사진이 어디로 갔는지 모르겠다.

동생과 눈싸움도 하고 처마 밑 고드름을 따서 싸움도 하고. 고드름의 길이는 역대급이었다. 1.5리터 물병보다 긴 것을 톡 따면 뾰족한 곳은 맑은 투명인데 손잡이 쪽은 먼지가 섞여있고 너무 두꺼웠다.

고드름 싸움에 지면 반틈이 날아가고 또 경운기에 올라가서 고드름을 따야 했다.

놀이라는 게 죄다 싸움뿐이었다.

 손가락에 감각이 없어지고 얼굴이 터지도록 춥지만 눈이 쌓이면 눈 오는 날의 강아지처럼 촐랑대는 낭만이 찾아온다. 트럭 바퀴에는 눈길에 미끄러지지 말라고 아빠가 체인을 덧 씌울 때도 있었다.

딱 한번 그리고 반나절동안 '비료포대 썰매'를 탄 적이 있었다.

아랫마을 친구집에 놀러 갔다가 질소비료 포대를 들고 눈으로 다져진 앞산의 S커브를 탔다.

거의 Z에 가까운 것 같았다.


먼저 언니들이 시범을 보였다.

질긴 비닐인 비료 포대기의 앞쪽 양가를 잡고 살짝 뒤로 젖히면 출발하는 안전바 없는 놀이기구.


꺾이는 부분에서 자칫 잘못하면 굴러 떨어질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아.. 저기 떨어지면 가랑이 찢어지겠는데?'

멋있게 꺾고 싶었지만 나무에 가랑이가 걸리지 않기 위해 양 발로 브레이크를 건 다음 나머지코스도 엉덩이를 질질 끌며 출발했다.

역시 놀이는 무서울수록 재미있는 법이었다.

도전정신으로 불타올라 비닐이 닳을 때까지 5명이 줄 서서  탔다. 포대기가 여러 장 있었어도 두 명씩 출발할 순 없었을 것이다.


그만 타고 가는 길에 아직도 달려있는 어른 손톱만 한 다래가 있었다. 쪼글쪼글하고 한입거리도 안되지만 키위 맛보다 맛있었다. 몇 개 없어서 2개 정도 맛본 것 같다.


비료포대 썰매도, 산에서 딴 다래도 그날이 처음이자 마지막이었지만 아직도 가끔 생각이 난다.

산타 할아버지

눈이 오지 않았던 크리스마스.

초등학교 3학년 때 산타할아버지는 죽었다.

머리맡에 놓아둔 아빠양말 옆에 배드민턴이 놓여 있었다. 비록 빨간 양말은 아니었지만  가장 큰 양말인 내 종아리가 다 덮이는 진회색양말을 놓아두었었다. 선물은 생각보다 낭만 없는 생활체육 장려기구였다.

그런데 그 해에는 머리가 커진 우리들을 위해 아빠가 좀 더 노력을 하셨고 그게 나의 동심을 파괴시켰다.

"어? 배드민턴이네.. "

"어이구~산타할아버지가 아빠 털모자를 선물 주셨구나." 하시며 기쁜 연기를 하시며 귀가 덮이는 아빠 털모자를 써보신다.

"엄마 거는요?"

"뭐고? 고무장갑이가?"

엄마가 불편한 심기를 드러내며 고무장갑을 획 잡아채서 부엌으로 가셨다.

엄마가 동생을 임신했을 때 겨울에 포도가 그렇게 먹고 싶어 하셨는데 5일장에 포도가 어디 있겠는가? 엄마는 펭귄표 깐도리  깐 포도를 아직도 잊지 못해 씁쓸하게 회상하신다.  그런데 고무장갑?? 엄마의 마음을 너무나도 이해하겠다.


게다가 산속 마을까지 힘겹게 찾아오신 산타할아버지는 그 해는 여유가 있었는지 필적이 좋은 편지도 한 통 남겨두셨다.

우리가 편지를 알아채지 못하자 아빠가

"아니?~ 싸안타 할아부지가 편지도 써놓고 갔네?" 하고 읊어 주시는데 편지 내용은 너희들이 한 착한 일을 잘 보고 있었으며 올해는 특별히 너희 엄마 아빠 것도 주고 간다는 것이었다.

(응, 그런데 들켰어요. 아빠 글씨체랑 똑같음요.)

지금은 아무리 착한 일을 많이 해도 산타할아버지가 다녀가시지 않아서 초등학교 1학년 아들에게 내가 산타가 되어주고 있다.




이전 19화 신식 썰매부심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