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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예스 Oct 21. 2023

절대 안 간다, 내 그리운 고향 산천

산골 추억의 글을 마치며.

집 앞에 흐르는 냇가는 30년 후 거의 졸아 없어진 것 같다.

예전에는 지도 앱에서 마을 입구 2차선 포장도로까지만 로드뷰에 나왔는데 이제 2km 거슬러 올라가는 집까지 로드뷰에 나온다. 세상이 많이 좋아져서 지금 살고 있는 인천에서도 경북 포항 옛 집터와 냇물을 볼 수 있다.

역시, 실망스럽다.  그새 내 그리움의 한 조각이 떨어져 간 느낌이다.


아빠가 대구에서 택시를 같이 타고 지나가면 택시 밖 회색 풍경을 보며 얘기하신다.
"어이고? 여기 웬 건물이 이렇게 높으노? 여기 다 아무것도 없었는데. 다 풀밭이었는데!"


그 심정을 알 것 같다. 생활이 편리 해 질수록 우리는 자연을 가공하고 훼손하며 추억 속으로만 간직한다.


박경리 작가님의 대하소설 <토지>에 독립투사로 떠나는 친구 이동진에게 최치수는 이렇게 묻는다.
 "망해버린 나라의 군왕을 위해선가, 아니면 백성을 위해선가?"
 "백성이라 하기도 어렵고 군왕이라 하기도 어렵네. 굳이 말하라 한다면 이 산천을 위해서, 그렇게 말할까?"

산천, 정말 산천이 너무너무 그립다.

며칠 전에 포항에서 인천 우리 집에 놀러 온 동생이 나에게 제안했다.

다음에 같이 가보자고. 자신은 종종 가서 냇물과 , 우리 집었던 그 집터와 바위와 경치를 본다고 말이다.

"절대 안 가. 가서 보는 순간 내 추억은 훼손되고 말 거야."


고등학교 때 수학이 영어보다 더 싫어서 문과를 간 나였다.

그 잘 가르친다는 선생님의 재미있고,  예의 바른 말투와 둥근 음성, 수학시간은 그 자체로 나에게 자장가였다.  수학선생님의 별명은 이니셜을 따서 '황산마그네슘(SMg)'이었다.

맨 앞줄 제일 가운데 앉아서 차량용 고개 끄덕이는 인형같이 흔들리는 내 머리는 선생님의 의욕을 매번 꺾어 놓은 듯하다. 너무 대 놓고 졸고 있었던 것이다. 짝꿍이 옆구리를 찔러도 그때뿐이다. 드디어 선생님이 울분을 섞어 얘기하셨다. 그냥 머리를 한 대 때리는 다른 선생님과 다르게 참 인격이 좋으신 분이었다.

"정말 너무 한 거 아닙니까? 저는 지금 귀신을 보았습니다. "

우리 반친구들 전부에게 호소하시며 칠판에 눈동자가 없는 두 눈을 그리셨다.

모두들 폭소하며 나를 바라보아서 나는 그만 얼굴이 빨개졌다.

수학선생님 : 오늘은 옛날이야기 하나 하겠습니다.
예전에 살던 고향이 있습니다. 이렇게 더운 날에는 시원한 그 고향에 가서 수영을 하고 싶습니다.
거기는 진짜 물이 맑고 깨끗해서 바닥이 훤히 비치는 청록색이었습니다.
어릴 때 물이 머리 높이까지 오고, 암벽이 얼마나 높고 멋진지, 그 위에는 소나무가 쫘악 나 있었습니다.
그 물 맞은편에도 소나무가 군집으로 모여 있어서 경치가 정말 멋졌습니다. 통발을 놔서 물고기도 잡고 해서 너어무 생각이 나는 겁니다. 어른이 되어서 그리운 생각이 나서 차를 몰고 가 봤는데, 세상에! 그 많던 물이 다 졸아들어서 허리까지밖에 안 오는 겁니다. 얼마나 실망했는지 모릅니다.
거기가 저기 포항 쪽에 있는 '죽장'이라고.
  여러분은 그리운 고향 있으면 절대로 다시 가지 마십시오.

나는 이 순간만큼 수학 선생님이 반가운 적은 한번 도 없었다.

내가 살던 곳, 내가 초등학교 5학년때 그 많던 450마리 돼지를 다 팔고 대구로 전학을 가기 전까지 있었던  '경북 포항시죽장면'.  그곳에서 내가 태어나기도 전 시절에 이 대구의 수학 선생님이 유년 시절을 보내셨던 것이다.  내가 자랐을 때보다 훨씬 더 깊은 물이었고 나에게는 향수병에 3년간 시달리게 했던 그 산천이 이미 이 수학 선생님에게는 실망한 모습이었던 것이다.

"선생님! 저도 거기가 고향인데요!"

나는 기뻐서 소리쳤다. 워낙 사람이 적은 곳이어서 고향 사람을 만나는 것이 너무 기뻤다.

그리고 선생님처럼 다시 고향에 가서 실망할 바에는 절대로 가지 않고 내 추억을 보존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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