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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예스 Oct 10. 2023

팔이 한쪽뿐이던 멋진 나의 언니

유치원생의 목숨을 구해준  초등 고학년 언니

마당에서 놀던  남동생과 나.

30년도 더 된 옛날, 시골에 살았던 나는 삼 남매의 장녀이지만 나에게도 언니가 있었다.

유치원 시절과 초년시절 정말 많은 놀이문화를 내게 가르쳐 주고 나의 목숨도 구해준 언니.

이름은 가명으로 영희언니라고 하겠다.

이 언니는 팔 한쪽이 없었다. 하지만 단지 불편할 뿐 팔이 있는 것과 똑같았다.


처음부터 없었던 것은 아니라고 했다. 자세하게 얘기하진 않았지만, 언니가 예닐곱 살 나이였을 적에 논에 추수 타작을 따라갔다가 콤바인인지 타작하는 기계의 사고로 어깨 부분 아래로 팔을 잃게 되었다고 한다.

어깨 끝이 마치 화상자국처럼 수술자국이 있었다. 얼마나 대수술이었을지, 평생 그 부모님 마음이 어땠을지 지금 생각하면 더욱 가슴이 먹먹해진다.

첩첩산중 도보 15분 내 이웃 중에 어르신들 말고 또래의 어린이가 있는 것은 얼마나 큰 복인가?

학교는 4km를 걸어가야 하고 우리 마을 입구는 2km나 떨어져 있다.


부모님이 상업용 돼지를 키우시고 밭농사를 하시는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와중에 어떻게 놀아야 하는지 모르는 유치원생, 국민학교 1학년 생인 우리에게 영희언니는 그저 빛이었다.

론 혼돈속에 명암이 존재하듯  동심을 파괴시켜준 기억도 많지만, 좋은 기억이 오늘의 나를 만들어 주는 재료가 되었으니까 좋은 기억을 주로 남기겠다.


거리가 가까워서 전화기를 쓸 일은 없었다. 그냥 심심하면 언니 집으로 찾아갔다. 찾아가면 늘 놀거리가 있거나 놀러 나갈 수 있었다.

"언니야~~ 노올자~~"를 두세 번 부르면 작은방 문이 열리며 언니가 맞이해 주었다.

문 밖에서 한눈에 보아도 비키니장이라고 하는 두꺼운 천에 지퍼가 달려있는 옷장이 정면 혹은 측면에 보였다. 언니방의 바깥 옆쪽으로는 많은 확률로 아궁이 가마솥에 일소가 먹게 될 쇠죽이 뭉근히 끓고 있었다. 종일 끓이는 건저, 저런 건초더미로 소 한 마리가 먹고 힘을 내는지 알 수 없었다.



이 언니에 대한 가장 오래된 기억은 <색칠공부> 책에 색칠을 하는 방법을 전수받을 때였다.

'장화 신은 고양이' 색칠공부 책이었는데 한 페이지에서 '크레파스 36색'으로 언니는 아래쪽인 장화를 금색으로 색칠하고 나는 구름을 색칠하라고 하길래 당연하게 회색으로 칠하고 있었다.

흰색 종이 위에 색칠한 표가 나도록 구름을 칠하려면 회색으로 칠하는 게 정답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왜 구름을 흰색으로 칠하지 않느냐고 언니가 물었다.

"하늘은 파랗고 구름은 흰 색이잖아. 나가서 보고 와~"

흰색을 흰 종이 위에 칠하면 안 보이지 않느냐고 하니 직접 시범을 보이며 칠하는데 미세하게 표가 났다.  그리고 하늘색을 구름 주변으로 칠하니 그제야 '아~ 맞다, 이게 하늘이지' 생각하게 된 것이다. 배경을 칠하는 것이라고는 상상도 해보지 않았을 때니까.상아색으로 조금씩 포인트를 주며.

 내가 잿빛 하늘만 봐 왔다는 것에 충격을 받게 되었다.


그리고 언니가 해준 요리가 생각난다. 초등학교 고학년인 언니가 집에 혼자 있는데 주방 가까운 마루에 앉아서 감자를 깎고 있는 것이다. 상상이 가는가? 팔이 하나 없는데 감자를 깎고 있었다.

둥근 감자를 깨끗이 씻은 발로 잡고 나무도마 위에서 발가락으로 요리조리 능숙하게 움직여가며 감자를 깎았다. 깎았다고 해야 할까, 긁었다고 해야 할까.

지금은 테라 맥주 오프너도 숟가락 모양을 본떠서 나오기도 하지만 그때는 숟가락을 반달, 초승달모양으로 어떻게 갈고 연마한 것인지 그것으로 긁으면 감자껍질이 얇게 긁히며 제거되었다. 감자칼 대신이었다.

처음엔 '윽! 드러... 발로..' 라고 생각했다.

발에 힘을 주어 잡으니 발바닥 윗부분이 순간 노르스름 해졌다.

그런데 이 언니가 요리하는 모습을 두 번, 세 번, 여러 번 보니 발은 그냥 손과 다름없었다.

매 순간 깨끗이 씻어가며 하다 보니 슬리퍼 신고 놀러 온 내 발보다 깨끗해 보였다.

한날은 믹서기에 누런 계란 혼합물을 넣고 있을 때 "언니야~ 노올자~"하러 갔는데 마요네즈를 만들고 있다며 식초와 식용유가 이만큼 들어간다고 보여주기도 했다.


가장 맛있 먹은 것은 '밀가루 과자'였다.

 홍두깨로 밀가루 반죽을 밀고 도마 밀가루 위에 펼치더니 나에게 소주뚜껑을 쥐어주며 "찍어라"라고 했다.

소주 뚜껑이 맥주 뚜껑같이 주름진 것과 동그란 지금의 뚜껑이 공존할 때였는데, 그래도 더 신식인 동그라미가 더 예쁘게 나왔다.

납작한 주름뚜껑은 밀가루가 달라붙었고 초록색 소주뚜껑은 동글동글 동전처럼 나왔다.


그리고 언니는 숟가락머리 크기의 별을 직접 과도로 그려가며 별모양도 만들었다. 하트도 만들고.

"언냐, 나도, 나도~"  하니 "너는 위험해서 안된다"라고 했었다.

매작과를 만들듯이 프라이팬에 식용유를 넉넉히 두르고 밀가루 반죽으로 모양낸 덩이들을 튀기듯 구웠다.

그런 다음 대망의 백설탕이 듬뿍 든 접시에 과자들을 빠트리니 설탕옷이 입혀졌다. 빵처럼 맛있지는 않았지만 마을에 상점이 없기에 출출할 때 먹으니 훌륭한 간식이었다.


 1학년때 그림일기 숙제가 있었는데 나는 잔뜩 수두가 걸려 버렸고 숙제를 못해서 혼나면 어찌할지 울상일 때 직접 살색 약 카라드라민을 몸 구석구석 수두로 가려운 곳을 발라주고 그림일기까지 직접 그려줬다.

일부러 좀 더 못 그리는 척하느라 애쓰는 듯, 너무 다 벗은 것 같아서 싫다고 하니 그림일기 속 여자아이에게 팬티를 그려주었다.

그리고 함께 살색으로 칠한 뒤 굉장히 흥겹게 수두자국을 홍매색으로 툭툭 찍어 색칠했다.

여름방학 과제인 곤충채집은 산 곤충에 직접 알코올을 주사한 뒤 침핀으로 스티로품에 고정하는 표본을 직접 만들기도 했다. 좀 소름 끼치기는 했다.

종이 인형놀이를 해주고, 마론인형놀이로 놀아주며, 구멍 난 양말로 바느질을 해서 갖가지 원피스, 드레스를 만드는 모습은 경이로웠다.

이 언니는 글씨도 예뻤다. 내가 3학년때 방학숙제인 밀린 일기를 상당부 대신 써줬는데 글씨체가 내가 쓴 앞부분과 많이 달라서 걱정했지만 담임선생님은 개의치 않은 것 같았다.


한날은 여름방학 과제를 다시 집으로 가져가는 면 내에 무거워서 뚜껑 달린 분홍 바구니를 길에서 떨어뜨렸는데 바로 옆에 지나가시던 교장 선생님이 그중 내 일기 한 권을 주워주시며 일기냐고 물으셨다.

그렇다고 했는데 "너 참 글씨 잘 쓰는구나?!" 하고서 일기를 훑고 계신 것이다.

아, 망했다. 담임선생님도 아무 말 없었는데 여기서 탄로 나는 건가 하고 있는데

정독을 하시더니 믿을 수 없이 놀랍다고 , 어떻게 3학년이 일기를 6학년처럼 쓰냐고, 극찬을 하시며 한 권을 들고 가서 좀 읽어봐도 되겠냐고 하셔서 알겠다고 말씀드리며 드렸다.

난 사실 언니가 써준 일기 다 읽어본 적도 없이 제출하기 바빴다.

그런데 시골발령에 무료한 생활 중이신 교장 선생님한줄기 감상에 젖어 마을 언니가 대신 써준 내 일기로 외로움을 달래고 계셨다.  나중에 일기를 너무 잘 봤다며 '혹시 그동안 쓴 다른 일기도 없냐'라고 하셔서 요즘은 개학해서 일기 숙제 없다고 거절했다.


늘 좋은 문화만 전수해 준 언니는 아니어서 언니가 중학생이었을 때는 야한 비디오를 혼자 보고 있다가 놀러 온 나한테 들켜서 화들짝 TV를 파란색으로 돌린 적도 있었고, 유통기한 5년 지난 샴푸를 이용하여 소꿉놀이용 못쓰는 그릇들을 설거지 자며 어른들 눈을 피해 신나게 산 쪽으로 따라 올라가서는 시냇물 상류에서 거품을 내며 설거지를 한 적도 두 번 있었다. 흙 때가 잘 지워지니 신세계이긴 했는데 척추가 휜 버들치 물고기 한 마리를 근처에서 발견 한 뒤로 왠지 이건 아닌 것 같아서 그만뒀다.



한날은 방에 맥주병에 맥주가 절반정도 있어서 물어보니 맥주로 머리 감으면 노란 물 염색된다고 해서 해볼 거란다. 실제로 다음날 머리끝이 결은 좋지 않지만 밝은 갈색이 된 것을 본 적도 있다.


우리가 유치원 생일 때 걸어서 4km를 등 하원할 수 있도록 동행해 준 것도 이웃 언니였고, 손톱에 봉숭아 물들여 준다고 빻은 봉숭아를 손톱에 처음 얹어 준 것도 언니였다.

가출 경험담을 무용담처럼 들려주었지만 "집 나가면 개고생"이라는 교훈을 준 것도 언니였다.


하지만 가장 잊을 수 없는 일은 목숨을 구해 준 일이 아닐까?



무더운 여름날이었다.

집에서 10분 정도 상류로 거슬러 올라가면 깊은 계곡 물이라 해야 할지 , 딱 한 군데 깊은 물이 있었다. 

유치원생인 나에게는 아찔하면서 도전의 장소.

함께 언니와 수영하고 있는데 평소에도 좀 얕은 데서 자주 물놀이를 즐기던 곳이라 언니도 있고 하니 언니처럼 깊은 물에서 돌고래처럼 헤엄쳐보고 싶었다.

자연스럽지는 않아도 튜브도 없이 언니는 한 팔로 헤엄을 치고 있어서 그 모습이 너무 신기해서 보고 있는데 그만  갑자기 발이 안 닿고 훅 빠지는 깊은 물에 들어간 것이다.

나는 너무 공포스러웠고 얼굴이 물 위로 올라갔다, 내려갔다 고로고록.. 페! 고로로록... 하고 있었기 때문에 눈앞에는 출렁이는 수면만 어지럽고 팔만 하늘로 사방으로 뻗어대고 있는데 언니가 나를 발견하고 구해주러 왔다.

"야! 힘 빼라! 내 몸통 꽉 잡아래이!"

하지만 일곱 살인 나의 순간적인 삶에 대한 욕구는 얼마나 치사했던가.

물속에서 너풀거리는 언니의 옆구리 쪽 옷을 움켜쥐고는 한 팔로 헤엄치며 나를 구해주고 있는 언니를 밟고 일어서려고 발 끝에 힘을 모으고 있었다.

그때 쿨한 이 언니는 내 머리를 한 대 탁 때리며

"내 몸통 잡으라 캤제?!"

하며 내 얼굴에 헤드락을 걸어 뒤로 끌며 헤엄을 3초 정도 쳐서 구해 주었다.


팔이 한쪽뿐인 이 언니는 얼마나 순간 판단력이 빠르고 지혜로웠는지 모른다.

물에 빠진 사람을 구출하는 방법을 어떻게 배운 건지, 생각한 것인지 너무 위대하고 고마웠다.

그 몇 초 안 되는 순간에도 또 언니를 밟으면 둘 다 빠져 죽거나 아까처럼 머리를 세게 맞을 것 같은 생각도 번득 들어서(아까 진짜 아팠..) 순순히 배를 하늘로 둔 채 깊은 물에서 끌려 나오고 있었다.


아까와는 달리 더 이상 '고로고록..' 하지 않고 지금 있는 지점은 깊은 물이 아니라는 계산이 빠르게 돌아가더니, 헤드락을 걸어준 한쪽 팔과 물범처럼 팔 없이 헤엄치는 몸통을 믿고 몸을 맡겼다.

해마다 물놀이 안전수칙을 보면 물에 빠진 사람에게 절대로 뛰어들어 구할 생각하지 말고 근처에 있는 큰 뜰 것을 던지거나 막대나 줄을 잡게 한다는 글귀를 접할 때마다 이건 진짜 레알이라고 다시 한번 느끼며, 몸통으로만 헤엄쳐서 구해준 이 언니에 대해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내 유초년 시기에 나에게 많은 영향을 준 언니, 바쁜 부모님의 빈자리에 스펙터클한 경험들(좋은 것도 있고 나쁜 것도 있지만)을 준 언니 생각이 난다.

잘 살고 있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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