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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예스 Oct 02. 2023

어쩌다 화석 채굴한 초등학생

집에 가는 길에 화석 발견한 3학년

내가 초등학교 3학년 때, 그러니까 30년 전쯤이라 국민학생이었다.  


나는 당시 <자연> 시간에 배우는 지층과 화석에 큰 흥미를 느끼고 있었다.

학교에서 박물관 견학을 갔을 때 돌(암석)  속에 물고기 뼈나 나뭇잎이 박혀 있고 공룡 발자국도 화석도 있다는 게 재미있었다.



 당시 나의 최고 관심사는 략 다음과 같았다.

1. 은하계 (U.F.O와  E.T가 실제로 있을 거라는 확신이 있었다.)


2. 혈액형 유형별 성격( MBTI는 없었시절 나는 학습만화를 보고 집에 와서 나는 AB형 성격 같다고 생각했다.  아빠한테 "저는  AB형인 것 같아요"라고 했더니 "피검사하러 지금 보건소 가자"하셔서 겁먹은 적이 있는데, 엄마아빠 혈액형 조합으로는 O형과 B형 말고는 절대 나올 수 없었기 때문이다.)


3. 화석 (발견해서 팔면 돈이 된다고 어디서 들었다. 그땐  왕지네를 한약방에 팔면 값을 잘 받을 수 있다고 해서 한동안 지네만 찾아다닌 적도 있다. 거래를 어디에서 할지는 알 수 없었지만 용돈이 귀했으니까 솔깃했다. 부모님은 농업인이었지만 우리는 상업에 더 매력을 느낀 것 같다.)



동생과 집에 기 위해 마을 어귀를 지나가는데 문득 시멘트 길 양 사이드 논두렁 옆에 ,  사이에서 지층이 빼꼼, 모습을 보였다.


"? 이거 지층인데? 이거 책에 있는 이암인데? "

한 살이라도 더 먹어서 배운 사람이었던 나는 동생에게 쉽게 부서지는 돌도 있다는 것을 시범 보이고 있었다. 그리고 굵은 입자의 돌 보다 이암에 화석이 더 잘 발견될 수 있다고, 강의 하류에 더 많은 물속 생물이 죽어 차곡차곡 쌓일 수 있다고.

<자연> 시간에 배웠던 퇴적암. 이암, 사암, 역암, .

이암은 고운 진흙이 굳은 돌 질감, 사암은 모래입자의 암석이라 거칠거칠했고 역암은 자갈돌이 박혀있는 암석이었다.

출처 : 천재학습백과 https://100.daum.net/encyclopedia/view/24XXXXX92262

차곡차곡 쌓인 페스츄리 같이 쌓인 고운 지층.

퇴적암이  쌓이는 과정의 초고배속 영상이 그려지며 나는 지질학자로 빙의했다.


눈을 감으니 어떤 강가의 단면이 그려졌다. 크고 작은 물고기와 헤엄치는 암모나이트,  삼엽충이 깊은 물속을 누비고, 물 가에서 한들거리는 갈대들, 공중에선 산비둘기만큼 큰 잠자리과 생물이 날아다녔다. 여기가 과거엔 강물이었겠구나. 화산은 어디쯤이었을까? 잘만 하면 공룡화석을 찾을 수도 있겠다는 희망.


(이 사진은 유치원 때 동네 언니가 찍어준것. 내 생각엔 멋진 포즈로 찍은줄 알았는데 인화해보니 이랬다..ㅋㅋ)   우리 마을입구  이 큰 바위 근처에서 있었던 일이다.

이암이라는 고운 퇴적암 근처에 사암도 있었다.

자갈이 박힌듯한 역암은 없었다. 

큰 주먹돌을 도끼 삼아 이암을 쿡쿡 내리찍었다.

얇은 송판처럼 이암이 툭툭 깨지며 손바닥만 한 조각이 떨어져 나왔다.


맙소사! 깨진 단면에 벚나무 잎사귀 같은 것이 삐져 나왔다. 뭇잎이 묻어있는 것이 아니었다. 층과 층사이에 박혀 있었다. 나뭇잎 화석!!

사진 출처: https://m.blog.naver.com/yes3man

화석을 발견 한 순간부터 돌조각 돌도끼는 멀리 치워두고 그때부터는 맨손으로 주변 흙을 팠다.

마당을 파서 엽전 채굴했던 것처럼 이번에도 광채 가득한 눈이 되어 동생에게 화석의 가치를 설명했다. 박물관 견학 갔을 때 소품상점에서 나뭇잎 화석 1조각에 5천 원에 파는 거 누나가 봤다고. 이거 다 돈이라고.

절대 담임 선생님에게 말하지 않을 것이다.

손톱밑에 때가 가득 끼이도록 주변을 파고 털어보 니 널따란 지층 퇴적암이 나왔다.

그래도 꺼내기 위해 아까 썼던 모서리가 뾰족한 돌조각을 다시 들고 조심스레 내리찍었다.


나뭇잎 화석 표본이 5개쯤 나왔다.

그리고 2미터도 안 되는 폭의 시멘트 길 반대쪽 주변의 사암 암석을 파보니 나뭇잎 화석은 아니었고 수많은 갈대조각인지 짧은 지푸라기 조각인지 2cm 정도 되는 것들이 불규칙하게 섞여 그대로 박혀 있었다.

이암 화석은 촘촘한 나뭇잎 페스츄리라면 , 역암 화석은 갈대 파운드 케이크이었다.

그리고 사암만 있는 것이 아니라 시선을 멀리 두어보니 봄마다 산딸기를 맛있게 따먹는 지점 근처에도 지층이 있었다.

이암에 박힌 또 하나의 의문점은 달팽이집 같은 화석이었다.


우렁이든 달팽이든 작고 둥근 녀석의 껍데기가 고운 퇴적암에 딱 하나 박혀 있었는데 한 번도  듣지도 보지도 못했던 화석이었다.

아무리 봐도 달팽이집 같아서 신기하기도 하고..

손이 얼얼해지고 더 파면 논 주인이 뭐라 할 것 같아 일단 가방에 흙가루와 돌가루가 묻은 화석 조각들을 8개쯤 가득 담아왔다.


오늘부터 내 보물 1호다.

TV장 속의 빨간 사과바구니에 차곡차곡 담아 하루에 한 번씩 꺼내보고 흐뭇해했다.


초등학교 암모나이트나 삼엽충 같은 고생대와는 먼 최신의 화석을 발견한 것이지만, 이제부터 내가 지킬 가문의 보물 같은 것이었다.


연년생 남매가 흔히 그렇듯 대판 싸운 어느 날이었다.

나는 이제 지쳐 터덜터덜 걸으며 도끼눈으로 동생을 째려보고 있는데, 갑자기 그 녀석이 뭔가 좋은 일이라도 떠올랐다는 듯이 역동적으로 막판에 달려가는 것이다.  


내가 걷고 있는 지점에서 거리가 족히 7미터는 되는 마당으로 들어간 동생은 엄지손가락만 해 보였다. 그런데 잠시 후 무엇을 들고 나왔을까?


동생이 무언가 두 손으로 높이 들고 제자리에서 요란스럽게 펄쩍펄쩍 춤추듯이 뛰 있었다.

키우던 도사견들과 함께..
장난끼 많았던 시절


'아니야, 아닐 거야..!'

나도 온 힘을 다해 뛰었지만 일은 이미 슬로모션으로 벌어지고 있었다.

"아안 도애애애~!!!"

내 빨간 사과바구니에 있는 소중한 화석들을 머리 높이에서 들고는 땅으로 쏟아부었고 순식간에 발로 꽝꽝꽝꽝~!!! 밟아버렸다. 눈물이 콱 나는 것이다.


내가 분노의 질주로 마당에 진입했을 때는 약 올리는 표정을 한 사악한 악마가 밟아 부서뜨린 내 화석 보물 파편들 위로 오줌을 지그재그로 갈기고 있었다.


그때의 상실감은 30여 년이 지난 지금도 한 번씩 아쉬움으로 떠오른다.

나의 보물 1호. 내 업적, 나의 살아있는 지식.

 때 얼마나 대성통곡 했는지.

아빠는 정말 모르는 것이 없는 생활지식백과였고, 못 만드는 것이 없는 생활 발명가였다. 만물 이치를 설명해 줄 수 있을 것 같아 어린 시절 모르는 것은 수시로 물어보고 답을 해주셨던 분이다.


아빠는 "그거 화석 아이다. 잊어 버려라~" 하셨다.

이제 소변에 젖은 가루가 되어 마당의 일부가 되었으니 더는 화석이 아니겠지...


동생과 크고 작은 다툼을 겪으며 어른이 되는 동안 여러 번 단골 얘깃거리가 되고 나니  30여 년이 지난 지금도 동생 가끔씩 화석 얘기를 꺼내며 그때 정말 미안했다고 사과를 다.^^

꽃을 든 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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