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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예스 Sep 23. 2023

초등학교 M&A 시골 초등학교와 분교의 가을 합동운동회

나의 작고 소중한 국민학교

30년 전에 우리 학교에서도 가을운동회가 열렸다.


한 학년에 1반뿐인 시골학교, 병설유치원 반 친구가 고등학교 졸업 할 때까지 같은 반 친구가 되는 경상북도의 국민학교였다. (내가 4학년때부터 명칭이 초등학교로 바뀌었다.)


 분교 두 군데 셔틀봉고에서 병설유치원 때 보았던 친구들 몇 명도 내렸다.

1년에 딱 한번 만난다는 사실에는 견우, 직녀와 다름없지만 분교 친구들은 다 여자였으니 나에겐 직녀와 직녀의 만남이라 해야겠다.


목장아들, 멕시칸치킨 딸들, 이발관 아들, 슈퍼 딸, 과수원 아들인 내 친구들.

2학년때까지는 분교 친구들만 합동 운동회를 했는데 내가 3학년 때는 달랐다.

그 해 가을 운동회 아침에 우리 학교 학생 수보다 훨씬 적은 학교에서 큰 학원 차량 같은 노란 버스에서 낯선 아이들이 우르르 내렸다.

그래도 차량으로 몇십 분을 가야 하는 거리인데 우리 집 가는 방향과 반대였으니 포항시와 조금 더 가깝다는 사실밖에 모르는 낯선 동네에서 1~6학년 전교생으로 추정되는 아이들이 고작 중형 버스 두대에 타고 온 것이다.

그 친구들과 함께 뭘 했는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같이 달리고, 연습해 온 것들을 했을 것이다.

                        

남동생의 달리기. 꽃밭에서 달려서 행복한 거니???

나는 달리기에 별 취미가 없었다.

내 마음은 저 앞에 있는데 다리는 왜 이렇게 안 따라 주는지. 자전거 달리기였다면 1등이었을 텐데 괜히 다리만 아팠다. 늘 꼴찌를 하거나, 꼴찌를 겨우 면하는 정도였다.

그런데 이런 내가  1등 한 종목이 있었다.

바로 굴렁쇠 달리기!!!!

운동회 시작 전에 운동장 한편에서 볼품없는 굴렁쇠 외 아무 나뭇가지를 잘라놓은 듯한 나무가 쌓여 있어서 연습을 했다. 운동회 며칠 전에 연습했을 때도 힘없이 바깥방향으로 굴러가버린 굴렁쇠였다.

언니, 오빠들이 하는 것을 보고 어깨너머로 배우고 동생과 해보는데 오늘따라 잘 되는 것이 너무 신나는 것이다.


굴렁쇠를 하면서 운동장의 반 바퀴를 도는 달리기에서 당당하게 1등을 했다.

남들이 1등 할 때는 끈을 뱃심으로 밀어내며 끊고 도착한 줄 알았는데 막상 1등을 해보니 줄잡는 사람이 느슨하게 잡다가 놓아주는 건지 그날 알았다. 손목에 보라색 "1등" 도장이 찍혔다.

유심히 손목을 들여다보았다. 좀 더 손목 쪽에, 좀 더 가운데 부분에 찍어주면 좋았겠는데 달리기 심사를 보시는 분에게 이런 건 아무 의미가 없는 노동이었으므로 나는 애매하게 손목보다는 좀 더 위에 , 삐딱한 방향의 도장이 사선으로 찍혀 있었다. , 나는 오늘 손목을 씻지 않을 것이다. ㅋㅋㅋ


(한편, 도장이 찍히니 왠지 돼지가 된 것 같았다.

돼지의 귀에도 노란 텍이 달려있고 , 팔려 나갈 때 락카로 등에 무언가 표시를 하기도 했었다.)


상품은.. 무려 "상" 도장이 찍힌 공책 3권 ~!!!

학용품 욕심이 어릴 때부터 남달랐기 때문에 비록 표지에 잉크가 번진 공책이었지만 기뻤다.

2등은 2권, 3등은 1권이었다.

손목에 찍힌 것과 동일한 색인 보라색 "상" 도장.

(공부는 재미없지만 새 노트는 좋아요)


상 도장


콩주머니 박 터트리기

그저 콩주머니로 우리 팀인 청팀의 박을 깨트리기 바빴다.

분명 우리 쪽이 더 세게 던지고 박을 많이 맞추고 있는데 주최 측에서 우리 박을 너무 세게 붙여놨는지 조금 열린 상태에서 입을 안 벌리고 계속 버티는 것이었다.

약이 바짝 올라서 어깨가 아플 지경으로 던지고 또 던지는데 백팀의 박이 먼저 웃음을 터트리듯 시원하게 벌어졌다.

수많은 색종이 조각과 함께 운동회의 미담을 간단히 적은 기다란 싸구려 천도 두루루 풀려 내려왔다.

끝끝내 우리 박이 벌어지지 않자 선생님인지 장대를 잡은 사람인지 그냥 붙여놓은 연결 부위를 뜯어서 벌어지게 했다. 김이 새긴 했지만 어쨌든 반짝거리는 색종이와 은박 가루들이 두루마리와 함께 내려왔으므로 끝이 났다는 의미의 자축 함성이 들려왔다.


올해 운동회에는 엄마가 와 주셨다.

아빠는 열심히 돈사에 있는 돼지를 치고 있을 것이다.


은색 돗자리에 김밥 도시락이 펼쳐졌다.

분명 아침에 두 개 맛을 볼 때는 맛있었는데 모든 도시락이 그렇듯 김인 눅눅하고 질겨져, 도시락 통 특유의 냄새와 함께 '도시락김밥맛'의 맛이 났다.


인디언 변장을 하고 율동을 해야 했다.

2인삼각 게임, 투호 던지기, 인원수는 적어도 할 건 다 했다.

내성적인 성격의 나는 운동회 같은 단체전이 너무 낯설고 머쓱했다.

운동장 테두리에 얼마 전에 생긴 널뛰기가 그렇게 재미있었다. "3학년 모이세요~ " 하는 정규 운동회 종목이 아니라 놀이라서 재미있는지도 모르겠다.



널뛰기

정말 언니학년들은 발 힘도 좋고 장단도 잘 맞추어 한번 널을 뛸 때마다 발사되듯이 튕겨 올라가서 보는 맛도 있었다.  내 차례가 되었는데 맞은편에 널 뛰는 친구와 장단이 서툴러서 서로 동시에 뛰려 하다가 둘 다 무릎만 어정쩡하게 구부리며 널판을 살랑살랑 흔들기만 했다.

베테랑 언니가 알려줬다.

"자, 니 먼저~! 뛰라~ ,  아니~! 니는 가만히 있고, 어 그렇지! "

하면서 순서와 템포를 알려 줬다.

오! 뜬다 떠! ㅋㅋㅋㅋㅋ

6번 연속로 장단이 맞아서 뛰는데 너무너무 재미있었다.

우리 학교 널뛰기는 아마 우리나라에서 제일 재미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널판아래 홈이 파인 정도가 아니라 굴을 판 것 같은 느낌이 들었으니까.

길고 두꺼워 단단한 통원목에, 깊은 홈까지 있어 한번 뛰면 50cm 정도는 올라간 것 같았다.




모래 땅따먹기

남자 애들은 서너 명 모여서 도시락용 나무젓가락을 모래산에 꽂아서 손으로 차례대로 모래를 한 움큼씩 가져가는 땅따먹기를 하고 있었다.


순서를 정한다.

글자로 쓰면 가위, 바위, 보인 것을 누구나 알고 있지만 전교생 중 누구라도 그 글자를 그대로 발음하는 친구는 없었다.

"안내면 술래, 가이 가이 보~!"

"오, 앗싸 1등"

"가이, 가이 가이 보!"

"으아앗~~!ㅠㅠ"


처음엔 호기롭게 모래산의 반틈을 양손으로 쓸어 가져간다.

두 번째 차례의 친구는 그보다 적은 양을 쓸어 잡고 자기 앞에 쌓았다.

세 번째 차례의 친구는 이 각도, 저 각도에서 위태로운 젓가락을 살피며 한 움큼도 안 되는 모래를 사알금~ 가져가다가 나무젓가락이 맥없이 쓰러지면 그렇게 안타깝고 억울한 모양이다.


 

아침에 일어나는 건 언제나 힘들지만 소풍 가는 날과 운동회날 아침은 비가 오는지 날씨를 보기 위해 알람시계보다 먼저 눈이 떠졌다. 그리고 운동회 다음날은 온몸이 뻐근해서 깨워도 깨워도 죽은 척을 했다.

우리 초등학교와 다른 초등학교, 전교생 4명과 6명의 분교 2개가 모여 함께 운동회 한 날,

교목인 은행나무가 큰 둘레에 걸맞게 노란 황금 잎을 살랑거려 주었다.

이듬해부터 멀리 떨어진 이웃 초등학교과 분교는 폐교가 되고 그 친구들은 우리 학교로 등교를 했다.


지금쯤 나의 모교는 학생수가 얼마나 될까 궁금해서 지금 검색을 해보았는데 가히 충격적이다.
교사 10명 , 일반직 및 교육공무직 17명 , 1학년부터 6학년까지 전교생의 총합이 20명이다.
1학년의 학생수는 6명이고 , 6학년은 단 1명이다.
이런 열악한 환경에서 학년에 맞는 수업을 할 수 있을까?
20명의 아이들의 법정교육을 위해 27명의 어른들이 일하고 있었다.
아.. 나의 자랑스러운 모교! 오래 남길 바란다.



출처: http://school.gyo6.net/jukjang/0107/board/21149/197372730?page=1&searchTyp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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