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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당을 파다가 상평통보를 찾았다!!

엽전으로 눈뜨고 코베인 국민학생

by 나예스
대청마루란 이런것. 창호란 바로 이런것 ㅋㅋ
엄마는 우리가 밥먹는 시간이 되어서야 사진 찍어 줄 틈이 나셨나보다. 눈을 감았다는 사실을 인화하기 전엔 모르던 시절.


지금은 포항시 소속이 되었지만 경북의 한 산골짜기, 약 30년 전 우리 집이 1,800년대 조선 후기에는 유서 깊은 집의 터였는지 모른다.


국민학교 3학년 때, 동생과 함께 적당한 나뭇가지로 마당 흙이 패인곳을 더 파면서 놀고 있었다.

그런데 던 마당에서 뭇가지 끝에 단단한 무엇이 걸렸다.

큰 돌멩이인줄 알았는데 납작한 것이 순간 포크로 과일을 콕 찍듯 끼워져서 나오는 것은 엽전이었다.


처음엔 오래된 10원짜리 색에 가까웠는데 다보탑도 아니고 아빠 연장통 큰 나사에 맞는 오링도 아니었다.

학교에서 국어시간에 "천냥이오~" 옛날이야기를 접했을 때 삽화로 본 엽전 꾸러미, 동그라미 주화 안에 네모 구멍이 있는 그것이었다.

출처: 나무위키


아빠가 별일 아니라는 듯이

"엽전이가? 이거 옛날 돈이다. 상평통보네~ 마당에 있더나? 잘 가지고 있어라" 하셨다.

나에게는 1원짜리도 동네 할머니를 통해서나 귀하게 봤을 시절이라 그보다 아득한 옛날 옛적 돈, 무려 '돈'인데 아빠는 옛날 주화쯤은 마당을 파면 언제든지 구할 수 있는 것인지 대수롭지 않게 말씀하셨다.


3학년이던 나는 다음날 자랑스럽게 담임 선생님께 보여드렸다.

"선생님 근데요~,

이거 국어책에 나오는 엽전 맞지요?"

맨 앞줄에 앉은 나는 수업 시작하기 전에 선생님께 보여드렸다.

"으잉? 엽전 맞다. 니 이거 어디서 났드노??"

나는 자랑스럽게 말했다.

"우리 집 마당에서 어제 동생이랑 땅 파다가 나왔는데요?"

" 이야~ 일단 수업 끝나고 교무실 와 봐라. 자세히 봐 보자."



쉬는 시간을 알리는 종이 치고 교무실로 엽전을 들고 갔다.

내가 판 작은 보물. 아빠보다 내 업적의 가치를 알아봐 주신 선생님이 고마웠다.

"보자~ 응, 그래. 니 이거 슨생님한테 팔아라. 이 공책 두 권. 어떠노?"

3학년 담임 선생님은 운동회때 쓰고 남은 "상" 도장 찍힌 공책(노트) 두 권을 내미셨다.

굵은 줄공책이 2EA.

보라색 "" 도장이 찍힌 건 좀 멋이 없었지만 상을 받지 않았는데도 상 받은 듯한 기분도 나쁘지 않아 선생님과 거래를 하게 되었다.

나는 문구 욕심이 있으니까.


"마당 파다가 또 나면 들고 온나~.

그땐 엽전 1개당 공책 3권씩 쳐 줄게~"

라는 말씀은 나를 더욱 들뜨게 했다. ^^


그날 나는 집에 가서 숙제고 뭐고 어제 파던 자리만 계속 팠다. 아예 모종삽을 들고 와서 도굴꾼처럼 마당을 파헤쳤다. 동생도 같이 팠다.

좀 더 닳은듯한 엽전 2개를 더 찾아내고 다음날 등교를 신나게 해서 선생님께 들고 갔다.


우매한 동심을 공책 4권과 맞바꾼 담임 선생님.. ㅋㅋㅋㅋㅋ


일주일 뒤 피노키오 책상 위 늘어난 공책을 보며 아빠가 물어보셔서 공책 벌어온 사연을 말씀드리니

"으이구 등신아, 상평통보를 겨우 남아도는 공책으로 바까왔다고? 차라리 엿장수한테 갖다 주지 그랬노? 그 선생도 참..!"

하시며 엄청 아까워하시는 것이다.

아빠의 말씀을 듣고 나니 갑자기 덜컹 내려앉는 심장.

'내가 뭘 판 거지?'

이미 거래일로부터 7일이 지났고 이제 와서 한 입으로 두말하며 쓰던 공책을 다시 내 보물과 바꿔 올 수는 없었다.

혹시, 당근마켓에서 쓸만한 물건을 소소하게 용돈이나 할 겸 올려 봤다가 생각보다 문의주는 사람이 없어서 가격을 여러 차례 내리다가 결국 나눔♡으로 돌리면 10초 안에 4명에게 문의가 오며 씁쓸한 기분을 느껴본 적이 있지 않은가?

교육자에게 헐값에 물물교환했다는 억울한 마음의 나는 그 후로 나는 판매자의 윤리의식으로 아무렇지도 않은 척 학교생활을 하다가 4학년이 되었다.


담임 선생님이 바뀌고 나서도 문득 계단이나 복도에서 작년의 내 고객이었던 담임 선생님을 마주칠 때마다 나와 동생만 알아볼 수 있는 소심한 눈길을 흘기며 지나가게 되었다.

마당 있는집: 잔디 같은것은 없는 리얼마당.

어두운 표정으로 "안녕하세요" 할 때 물어보시는 선생님의 안부는

"느그 아부지 요즘도 술 드시나?"

"아니요.."

"그래, 다행이구마."


나는 단지.. 걸음을 주저하며 뒤돌아본다.

(선생님.. 제 엽전은 잘 있나요?... )

속으로 외치며 침을 꿀꺽 삼키고 지나갈 수밖에. ㅎㅎㅎ


글 올리고 나서 남동생에게 받은 카카오톡 메세지 ㅋㅋㅋㅋ

글 발행한뒤 폭로하는 동생ㅋㅋㅋ
동생이 보관한 옛날주화들
그런데.. 상태 나쁜 주화는 별로 값어치가 없다고 하던데... 그당시 공책 2권이면 값을 많이 매겨주신건가? 이제와서 궁금하다...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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