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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예스 Aug 12. 2023

꿀벌아 미안해!

장난감 총으로 남의 집 벌통을 건드리면 받는 벌.

시골에서 있었던 어린 시절 가장 강렬한 기억 중 하나는 꿀벌에 대한 기억이다. 

사람은 몇 집 안 살아도 키우는 동식물은 다양한 우리 마을에서는 양봉도 겸하는 뒷집이 있었다.

거창하게 '양봉업'이라고 까지 하기는 뭣하지만 뒷집 언니집에 놀러 가는 일이 많아서 아저씨가 하시는 일을 유심히 보는 일이 많았다.


1. 아저씨는 소 한 마리를 키우시고 어디선가 지푸라기에 가까운 건초들을 낫으로 베어와서 쌓아놓은 다음 가마솥에 불을 피워 쇠죽을 매일 쑤었다.


2. 각종 논과 밭농사를 하셨다. (모내기하실 때 종아리에서 피를 빨던 살찐 거머리가 충격이었다)


3. 집 앞으로는 담배밭도 있는데 어른 키만큼 자다. (아빠의 담배연기를 생각하면 쓸모없는 증오의 작물이었다)


4. 감자와 콩, 그리고 고추까지도 재배하셨다. 마디로 바빴다.


5. 담벼락 안쪽에는 나와 '사투'를 벌인 꿀벌집 두 통이 있었다.


우리 엄마 아빠와 조금 다른 분야에서 하루가 부족하도록 쏘다니며 농부의 본분을 다 하고 계셨으므로 호기심 많은 초등학교 1학년이 무슨 일을 벌였는지 알지 못하셨다.




멍 때리는 게 즐거운 늦봄의 어느 날이었다.

세상 모든 것이 신기하고 호기심 충만한, 그러나 미숙한 여덟 살이었다. 

나른한 오후에 동생과 함께  담벼락 주변을  서성였다. 

집벌이라고도 하고 꿀벌이라고도 했던 녀석들이 보였다.

판인지 원목인지 네모난 나무집의 작은 네모굴 속으로 른하게 꿀벌들이 꽃가루(화분)를 발에 묻혀서 들어가고 나왔다. 그 모습이 참 부지런해 보였다.  그런 보드랍고 노란 꽃가루는 어디 핀 꽃에서 따온 것인지 신기하게 지켜봤다.


한 때 아빠는 절에 달려있는 어른 머리만 한 말벌집을 건드리다가 죽을 뻔한 적이 있다고 했던 이야기가 생각났다. 장수같이 전투력 쎄 보이는 무자비하고 죽지 않을 것 같은 장수말벌에 비해서는 이 작고 동글동글 순하게 생긴 꿀벌들이 '꿀벌 마야'처럼 귀여워 보였다.


그냥 지켜보기만 하면 될 것을, 갑자기 나도 모르게  호기심에 우발적인 행동을 버렸다.


빨간 불빛과 특유의 소리만 나오고 총알은 안 나오는 장난감 총을 동생에게 빌린 뒤 벌집 입구에 대고 쏜 것이다.


레버를 손가락으로 당길 때마다 막힌 총구 부분이 빨간 불빛으로 빛나며 본체에서는 '즤잉~쟈르릉, 쟈르릉~'같은 소리가 나왔다. 딱 두 번 당겼다.


그 순간 평화롭기만 했던 벌집은 제2차 세계대전의 상태와 마찬가지로 폭격을 당한 위기의 상태가 되었다.

상상해 보라. 어두운 동굴에서 조심스레 식량을 기다리고, 집을 짓고, 알을 낳고 있는데 시뻘겋고 강렬한 불빛과 폭음이 울려 퍼진 것이다.


5초도 안되어 전사들이 공격을 개시했다.!

걸으면 5분, 뛰면 2분인 뒷집에서 꿀벌전사들에 쫓기며 집까지 울며 뛰어왔는데 오만 곳을 다 쏘인 것이다. 달리는 2분이 20분 같았다.


극강의 공포 속에 드는 생각은 '엄마한테 어서 가야 한다'는 생각과, '엄마한테 가면 맞아 죽겠다'는 생각 두 가지가 교차했다.

 그러나 본능이라는 것은 놀라워서 그런 상반된 생각을 하는 동안에도 다리는 끊임없이 털어내듯이 달리고, 팔은 매달려 있는 벌들을 떨쳐내기 위해 공중에서 휘젓고 있었다. 얼굴만은 쏘이지 않겠다고 팔로 얼굴을 막으며 달리고 또 달렸다.


 장난감 총을 고민 없이 대여해 준  남동생은  영문도 모르고 그 자리에 함께 있는 죄로 나와 함께 쏘이고 울며 팔을 사방으로 휘저으며 , "엄마!"를 외치고 지그재그로 달아났다. 


울부짖던 우리 남매를 향해 엄마가 눈이 휘둥그레져서는 바쁘게 마중 나오셨다.  엄마가 최정예 전사벌들을 마지막까지 뿌리치며 이게 무슨 일이냐고 소리치셨다.


살았다는 생각과 이제 죽었다는 생각을 하며, 조금이라도 덜 혼나기 위해 불쌍한 울음을 하염없이 울었다.


온몸이 그 자체로 벌집이 되고 만 우리의 팔다리는 통증으로 부어올랐다.

엄마는 마당에 서서 울고 있는 우리에게 자초지종을 듣더니 갑자기 부엌으로 가서는 주황색 바가지를 들고 오셨다.

 7살 남동생보고 난데없이 오줌을 누라고 하셨다.

바지를 내리고 빨리 누라고 윽박지르셨다.

마침 참았는지 신기하게도 동생의 소변이 바가지에 포물선을 그리다 손바닥으로 맞을 때만 두 번 포물선이 흐트러졌다. (달리는 말에 채찍질을 하는 꼴이었다. )

그러더니 그 소변을 손가락으로 찍어서 우리 몸 곳곳에 발라주시는 것이다.

"으윽~! 오줌! 싫어~  " 내가 도망가자 아직 덜 아픈 거냐고 혼나며 동생의 소변을 팔과 다리에 찍어 발라주셨다.  너도 빨리 발라라고 했다.  해독하는 것이라고 했다.

세상 쓸모없는 오줌 따위로 치료를 해도 되는 것일까?

소변의 성분에는 암모니아가 들어있다. 염기성인 암모니아가 산성인 꿀벌의 독을 중화시켜 줄 수 있다고 한다. 그러나 현대 의학은 민간요법을 그리 추천하고 싶지 않은 눈치다. 주의해야 할 것은 체내에 있는 소변은 일반적으로 무균 상태로 깨끗하지만 체외로 배출되는 순간 세균 번식이 용이하게 되므로 벌에 쏘인 상처가 세균에 감염될 수 있다고 한다. 그 바르는 엄마의 손에도 세균이 있긴 했을 것이다.

또한, 벌 독에 아나필락시스 같은 쇼크가 있는 경우는 벌에 쏘였을 때 1시간 내 숨이 가빠지고 기침, 다른 부위에도 발진, 구토 등의 증상이 있는 경우는 응급실로 가야 한다. 우리 면내에 한의원 있어도 의원은 없었으며 보건소만 있을 뿐이었다. 민간요법으로 해결하기 딱 좋았던 것이다. (보건소가 치과였고 의원이었으므로 여름방학 때 무릎에 웬만큼 10 바늘 이상 꿰매어야 하는 깊은 상처도 빨간 소독약과 후시딘을 바르고 소독해 가며 마루에 한 달 누워 지내기도 했다. )


눈두덩이에는 벌이 쏘이지 않았지만 벌에 쏘인 꼴이 되어 흐느끼고 있는데 벌에 쏘인 곳이 가라앉는 느낌이 되었다.  그리고 저녁에 씻고 나서는 찬장 손 안 닿는 곳에서 종지만 한 미니단지를 꺼내셨다. 그 작은 단지도 뚜껑이 있었다.

미니 꿀단지에서 고약 같이 굳은 토종꿀을 커피스푼으로 조심스럽게 긁어내서 또 발라 주셨다. 나는 내 몸에 발린 그 꾸덕한 꿀을 찍어먹고 싶었지만 낮에 발라놓은 오줌이 생각나서 맛보지 못했다.  


낮의 일이 다시 재구성되면서 내가 왜 벌들을 골려주려는 생각을 했을까, 악의가 있었던 것도 아닌데 뒷일은 생각지도 못하고 놀라게 하고 싶었던 것이다.

벌무리와 함께 생존 달리기는 하는 동안 그 눈코 뜰 새 없는 순간에도 팔에는 꿀벌이 놓은 벌침이 그대로 박혀있던 게 보였다. 엄마 앞에서 숙인 고개가 향한 바닥은 벌침이 뽑힌 벌들이  힘겹게 뱅뱅이를 돌고 있었다. 그 죽고 있는 몇 마리 꿀벌들에게 다시 공격당할까 봐 무참히도 콩콩 밟았다. 노란 내장이 독침 끝에 함께 뽑혀 나오며 동료들을 구하고 자신은 죽고 있는 전사의 모습이었다. 어차피 쏘면 자기는 죽을 건데 어떻게 남은 동료를 위해 그렇게 희생을 동반한 공격을 하게 된 것일까.


아이 하나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고는 하지만 이런 식으로 필요한 것은 아니었다. 우리 마을의 어르신들의 바다 같은 너그러움과 피실험자가 되고 만 수많은 자연생물들이 생각난다.

그러고 놀았다.

Y자 나뭇가지만 보면 꺾어 기저귀용 고무줄로 새총을 만들어 참새를 잡고, 물고기를 잡았으며, 매미와 잠자리를 잡았다. 치킨과 소고기와 생선을 사 먹으면서 이런 얘기를 하는 것이 위선자 같다.  

어른은.. 농작물에 피해를 주는 산멧돼지와 병아리를 물어가는 족제비를 잡았다. 마당을 지나가는 까치독사와 초록주황색의 꽃뱀(유혈목이)을 뱀집게로 잡아 뱀 항아리에 넣으시는 것은 일상이었다.

자신과 다른 종을 처단하는 것은 보통의 경우 자신에게 피해를 끼쳤을 때, 배가 고파서 상대를 먹이로 인식했을 때, 생명의 위협을 가했을 때 우리 종이 살려고 상대 종을 죽이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하지만 이번 꿀벌에 대한 나의 공격은 그 어느 쪽의 이유도 아니었던 것이다.

그저 심심해서 연못에 돌을 던졌는데 개구리가 돌에 맞아 죽은 것과 정확히 똑같은 상황이었다.

잘 살고 있는데 갑자기 나타난 덜 큰 인간에 의해 수많은 희생을 치러야 했던 꿀벌들과 , 그 벌통의 주인아저씨한테 죄송한 마음이 가끔씩 생각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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