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휴가가 3주라서요②
D+8
어느 때에 인연이 된다면 자연과 가까운 곳에 들어가서 살고 싶다. 해, 달, 바람, 구름, 물, 공기, 새소리, 수십 개의 벌레, 지천의 풀, 어느새 큰 고양이, 털갈이를 하는 개. 자연에서 변화들을 예민하게 느끼는 것으로도 하루는 금방 간다.
시시각각 하늘이 그리는 그림을 본다. 해 질 녘의 그림을 특히 좋아한다. 아직은 이불이 얇은 늦여름 밤, 풀벌레 소리를 한 겹 더 덮고 자면서 가을을 기다린다. 자연에 가까운 곳에서 살면 흔하고 담백한 시구가 절로 나온다.
D+9
점심을 먹고는 혼자만의 시간을 보낼 곳을 찾았다. 책과 메모지, 돗자리와 차 한 잔을 챙겨 넣은 가방을 들고서. 작년 여름에 머물렀던 자리에 그대로 누웠다. 졸졸 작은 물이 앞에 흐르는 비탈길. 그곳에 누우면 작년과 크게 달라진 것이 없는 풍경이 보이고, 여전한 안정감을 느낀다. 비탈에 누워 아주 신나고, 장벽이 하나도 없는 상상들을 해나갔다.
D+10
새벽부터 비가 왔다. 아주아주 시원하게 많은 비가 왔다. 짙어진 코끼리 산이 구름을 쓴 모습이 아름다웠다. 아름다운 풍경을 보면 감사함과 기도가 절로 나온다. 그럼에도 이 세상은 참 아름답다. 감사하며 살겠습니다. 잘 살겠습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버스가 구불구불한 길로 1시간은 족히 달려야 용문역에 도착할 수 있는 것을 나는 또 차를 얻어 타고 편히 가게 되었다. 공양간 실장님도 옆에 탔다. 실장님은 그간에 수련장을 오고 간 수많은 아픈 사람들의 이야기를 꺼냈다. 병원에서도 치료해 줄 수 없는 사람들이거나 병원의 치료를 거부한 사람들. 아쉽게 병이 더 커진 사람들과 깨끗하게 병이 치유된 사람들. 그 말들을 자분히 듣고 있으면 나는 요가를 더 진실되게 대할 수밖에 없어진다. 요가를 만나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라는 기도가 나온다.
D+11
오전에 요가원에 갔다가 저녁에 요가수업을 하니 하루가 다 지나갔다. 요가 수업은 항상 시작하기 전에는 하기 싫은 마음이 든다. 이번에도 그 지역에 비가 많이 왔다던데 혹시 취소가 되지는 않을까 하는 허투른 기대를 퐁퐁 피워내다가 이내 거두고 좋은 시간을 보내겠다는 다짐을 읊는다. 수업이 시작되고 일단 입을 떼고 몸을 움직이기 시작하면 다 되었다.
이 공간에 이 사람들과 온전히 존재하는 시간. 시간은 내리막길에 선 바퀴가 달린 무엇인 듯 미끄러지며 금세 간다. 재미있었다. 자신감이 더 붙은 것 같다.
D+12
광복절. 지하철에서 어떤 할아버지가 절규인지 호통인지 모를 말들을 쏟아냈다. 광복절이라고, 의식 있게 살으라고. 할아버지는 그래서 평소에 무엇을 하시는대요? 잠깐 끓어오르는 애국심에 어찌할지 모르는 감정을 분출하는 것 말고요. 지하철에서 소리를 내지르는 것에 그 감정을 다 소모하지 않으시기를. 자신 그리고 자신과 비슷한 소수를 제외한 사람들이 얼마나 어리석게 보일까. 꽁꽁 갇힌 곳에서 혼자만의 우월감을 느끼던 때를 나도 가지고 있다. 부끄러운 자긍심.
사랑하는 이에게 소중한 이를 만나러 가는 길. 어제저녁부터 준비한 반찬을 바리바리 손에 들었다. 그는 나를 너무나 반겨주었다. 같은 말을 몇 번이나 반복하면서 대화하는 사람, 시작도 끝도 중간도 웃음인 사람, 그리고 금세 자신의 세계로 들어가는 사람. 그가 나에게 보내준 그 환한 것이 자꾸자꾸 생각난다.
D+13
여행을 떠나기 전날. 애인과 가까운 곳엘 사는 도반의 집에서 얻어 잤다. 저녁도 잠도 아침도 빌어먹는 날들. 한 사람의 분주함으로 매끈하게 굴러가는 집 하나를 본다. 그들의 모습을 통해서 나의 미래도 그려본다. 그는 내가 그림을 잘 그릴 수 있게 어떤 도구로 그리면 좋을지 소상히 도 알려준다. 나는 그 도구로 그보다 쉽게 그림을 그릴 수 있겠지.
D+14
오대산자연명상센터 옴뷔에서의 하룻밤. 새벽같이 일어나 호흡수련과 명상을 한 후에 아침 프로그램으로 기공요가에 참여했다. 오랜만에 낯선 것을 배워보는 경험, 잘 모르는 일을 따라 하느라 애를 썼다.
월정사에서 동기와를 하나 사서 소원을 빌기로 했다. 나에게 가장 급한 소원은 '평생 쾌변'이었으나 (3일째 화장실을 못 갔다.) 도반들의 말리는 표정이 떠올라서 무엇을 적을까 한참을 망설였다. 변비로 소심해지고 머리가 더 안 돌아가는 것 같았다. 가족의 건강, 특히 아빠의 희귀병 치유를 비는 기도문을 적었다.
소원을 비는 것이 어렵다. '무언가를 해주세요'라고 말하는 것은 기도의 본질이 아니라는 스승님의 말을 듣고 나서부터다. 내가 아픈 아빠가 낫게 해 달라는 소원을 빌어서 뭐 해, 아빠의 생활과 가짐이 중요한 것을. 돈을 많이 벌게 해달라고 빌어서 뭐 해, 무엇을 할지도 모르는데. 무병장수 부귀영화 세계평화 등등 뻔한 소원은 비나 마나 한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