된장독립선언 ①
'장을 담그고 싶어!'
나는 밥을 하루라도 안 먹으면 허전하고 윤기가 도는 쌀밥 앞에서 함박웃음이 지어지니 한 해쯤은 벼농사를 지어보고도 싶다. 좋아하는 사람이 생기면 그가 여념 없이 풀어진 얼굴로 잠든 모습을 비밀을 지켜보듯 바라보며 쿡쿡 웃고 싶다. 좋아하는 것을 조금 더 알고 싶은 아주 단순한 이유에서 장을 담그고 싶은 마음은 시작되었다. 된장과 간장, 둘 중 하나는 매일 먹다시피 하니까.
무엇이든 의지로는 되는 일은 없는 법. 일단 항아리를 보관할 수 있는 장소가 있어야 하고, 어떻게 담그는지 알려줄 사람도 있으면 좋겠고, 그게 아니면 함께 담글 친구들이라도 있어야 할 텐데, 얼마간 그 중 아무것도 내게 없었다. 그 바람을 실현할 기회가 몇 해만에 드디어 왔다. 친구 썸머가 이사한 빌라에 어르신들이 많이 살고 있고, 빌라의 한 편에는 장독대도 있다고 들려주었다. 우리는 서로 장을 담가보면 어떻겠냐는 이야기를 나누었고 썸머는 빌라의 반장님에게 장독을 빌려주겠다는 약속까지 받아냈다. 장을 담가보겠다는 친구들도 삼삼오오 모였으니, 그렇게 올해 생애 첫 장 담그기를 할 수 있게 되었다. 야호!
'여성 어른의 도움 없이 장을 담글 수 있을까?'
일단 메주를 어디서 얼마나 구매해야 하는지, 항아리의 크기는 얼마가 적당하고, 소금물은 또 얼마나 넣어야 하는지 모르는 것들 투성이었다. 인터넷에는 너무 많은 정보가 있었고 장을 담그는 방법은 집집마다 조금씩 달라서 되려 혼란스러웠다. 머리가 복잡할 때 내가 돌아가는 질문들이 있다. '왜 이 일을 하는가' 다시 한번 떠올리기, 그리고 '가장 단순한 방법은 무엇인가'이다. 우리는 대단히 맛있는 장을 만들려고 하는 게 아니라 장을 한 번 만드는 경험을 하고 싶었다.
가장 단순한 방법으로 장을 담글 수 있는 방법을 찾다가 <우리 학교 장독대>라는 그림책을 만났다. '간장 떡볶이가 정말 맛있지요? 재료인 간장을 만들어볼까요? 간장 만드는 일은 라면을 끓이는 일처럼 쉬워요~' 세상에 이토록 간단하고 분명하다니. 이 작은 그림책은 곧 궁금할 때마다 펼쳐보는 '장 바이블'이 되었다.
장을 담그는 날에 맞춰 배송이 온 메주 상자를 열어보고는 복잡한 심경이 담긴 탄성이 나왔다. 호기심, 당혹스러움, 신기함, 설렘이 담긴 탄성. 처음 제대로 만나게 된 메주는 흡사 큰 깜파뉴 같기도, 못생긴 대형 비누 같기도 했다. 쿰쿰한 맛을 좋아하는 나는 한입 떼어먹고는 치즈가 떠올랐다. 맛있는 걸? 매력적인 걸? 다음 된장을 담글 때는 화이트 와인을 한 병 챙겨야지 했다.
메주를 간단히 씻어 말리고, 소금은 물에 미리 타 놓고, 항아리를 소독했다. 밑작업을 마치고 다음 날, 장을 담그는 일은 그보다 간단했다. 항아리에 메주를 넣고, 소금물을 윗물만 떠서 넣고, 메주가 뜨지 않게 대나무로 고정해 주고, 마지막으로 숯과 고추 넣기. 이렇게 하면 정말 된장이랑 간장이 만들어지는 건가? 아직 실감이 나지 않았다. 그저 친구들과 느긋하게 생소한 일을 해보는 것이 좋았다. 그날 오전, 장독대에서 오랜만에 온몸으로 맞았던 햇볕의 감각을 떠올린다면 '이대로만 살면 좋겠다'라고 나누던 말들이 맴돈다.
이제 40~50일 정도 후에는 장 가르기를 한다. 그동안에 메주는 장독 안에서 익어간다. 메주와 소금물이 장독 안에서 간장과 된장을 만들어낸다. 메주 안에 있는 균들이 열심히 생명활동을 한다. 어떤 표현이 가장 적절할지는 잘 모르겠으나 우리가 좋아하는 익숙한 그 맛이 만들어지기를 기대하면서 기다리는 일을 한다.
35L의 크지 않은 장독 안에서 장이 만들어지는 동안, 나의 삶은 장독과는 전혀 무관하게 흘러갔다. 2년의 끝을 두고 시작한 일의 종료일이 다가왔다. 종료일이 다가와도 일을 더 할지 말지, 더 한다면 일주일에 며칠을 출근할지 정해지지 않았다. 일을 더 하든지 그만하든지, 작년에 만든 약속 때문에 한 달간 일을 쉬어야 했다. 업무를 조율하는 과정에서 동료들과 갈등이 있었고 나는 그 자리에서 '그만하세요'를 외치면서 엉엉 울었다. 2년여를 같은 단체에서 함께 일했다지만 물리적으로도 심적으로도 내게 동료들은 가깝지 않았다. 그 거리감을 알게 되자 아쉬웠고 반성도 많이 했다. 조금 더 섞여 들어갈 수 있었기에. 일이 많아서 다른 동료의 일을 맡아 줄 여유가 없지 마음만은 깊고 따뜻한 동료들은 이 일을 계기로 조직문화 워크숍과 엠티를 살뜰히 기획했다. 그 시간을 통과하면서 이해받고 비난하고 싶은 마음이 겹쳐서 부끄러운 말을 많이 했다. 한차례 보내고 난 후에는 '마음에서 정리가 되지 않은 말은 절대 뱉지 말자'라고 다짐했다.
한 달의 휴가를 가지기 전에는 일이 무척 바빴다. 공간의 운영을 지속하기 위한 펀딩 작업과 막바지까지 있었던 행사들, 그리고 인수인계 작업까지. 일주일에 한 번 원격으로 일을 해야겠다는 말에 확인을 받고서야 짐을 쌀 수 있었다. 떠나기 전날이었다. 휴가는 도반의 요가원을 한 달간 맡는 일 때문에 가졌다. 덕분에 새로운 일을 하면서 본래 하던 일과는 멀어지는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내가 맡아 운영하던 공간이 내가 없이도 잘 돌아가는 것을 보고 안심했다. 그간에 내가 얼마나 많은 것을 움켜쥐면서 일을 했는지, 일이 나이고 내가 일인 것처럼 헷갈리면서 일을 했는지 알 수 있었다. 요가를 안내하는 일도 생각보다 잘 맞았다. '앞에 서는 사람은 투명해진다'는 스승의 말에 따라서 그 한 달만큼은 수련도 꼬박하면서 나에게 좋은 기운이 머물 수 있도록 노력했다.
위태롭게 이어오던 관계 역시 끊을 수 있게 되었다. 자신을 지키기 위해서 나를 내팽개치는 인간에게 신물이 났던 것 같다. 비슷한 상황에서 같이 잘 지낼 수 있다며 끌어안아주는 사람들이 있으므로. 그 사람들이 여태 내 곁을 지켜주며 지금의 나를 키워왔으므로. 나는 그 관계를 끊어낼 확신을 얻을 수 있었다. 그를 사랑하는 마음은 물론 그를 증오하는 마음까지도 보내주기로 결심한 후 사랑과 증오를 시소 타기 하듯 오갔다. 살아가며 절대 잊을 수 없는 눈물과 환희를 알려준 순간들을 떠올리면서 그와 함께한 시간은 결국 좋은 선물이었다는 걸 인정하게 되었다. 텅 빈 마음에 자연스럽게 새로운 인연이 자리 잡았다.
어언 한 달이 지나고 돌아온 일상의 자리. 내가 없었던 공간은 너무나 지저분해서 당황했지만 한 편으로는 나의 공백이 느껴져서 고맙기도 했다. 1년 더 일을 연장하면서 주 3일 일을 하게 되었고, 그만큼 생긴 시간과 여유로 평생 하고 싶은 글쓰기를 위해서 연재를 시작했다. 친구들을 집에 불러 밥을 함께 먹을 수 있는 여유도 늘었다. 줄어든 건 덜 하게 된 일만큼의 수입. 그런데 왜인지 더 살 맛이 나서, 그 맛을 믿고 당분간은 이렇게 지내보기로 했다.
다시 장독의 시간. 그 간에 메주는 무사했을까. 메주와 같은 주소에 사는 썸머가 중간에 사진을 한 번 보내주었는데 내 눈에는 조금 수상했다. 장 스승님에게 불어보니 (장을 담그고 난 후에 질문이 많아서 장 담그기 수업을 듣고 있다.) 메주가 공기 중에 노출되어서 겉마름과 함께 발효와는 크게 관련이 없는 균이 생겼으니 메주를 소금물에 푹 담가야 한다고 했다. 그날은 마침 한 달 살이를 하러 진주로 향하는 길이라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어 친구들에게 부탁을 했다. 겉으로는 별 탈 없이 간장과 된장이 만들어지고 있는 것 같지만, 두 달 동안 작은 항아리 안에서도 발효일지 부패일지 갈리는 아주 분주한 활동들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장담그기 후 두달 가까이 지났다. 자 이제 장을 가르자. 장을 가르는 일은 말 그대로 된장이 될 메주 덩어리와 어느새 까맣게 된 간장을 나누는 일이다. 장을 가르기 위해서는 항아리가 하나 더 필요한데 그것 역시 반장님이 빌려주셨다. 집에 지푸라기가 있는 무민 덕분에 오랜 방식처럼 지푸라기에 불을 붙여서 새로 얻은 항아리를 소독했다. 아침부터 분주하게 까르륵 거리는 소리를 들은 반장님은 보는 사람까지 시원한 냉장고 치마 차림으로 다가와서 어느새 장 가르기를 진두지휘 하셨다. 우리의 손끝은 반장님에게 소꿉장난 같아 자주 핀잔을 듣기도 했지만 '하고 싶은 거 다 해봐'라며 북돋아주기도 하셨다.
항아리 안에서 메주를 모두 꺼내서 넓은 보울에 치대고, 간장은 두 번 걸러서 한소끔 끓였다. 모두 각각 항아리에 담아두었다. 이제 6개월 정도 기다리면 된장을 맛볼 수 있다. 친구들과 장을 가른 이후에 장 스승님에게 장 가르기 수업을 받았다. 스승님은 해가 따가운 여름철을 대비해서 한 여름에는 바람과 햇볕맞이를 위한 유리뚜껑 위에 본래 항아리 뚜껑을 덮어야 한다고 했다. 장마철에는 비가 들이칠 것을 대비해서 유리뚜껑을 빼고 본 뚜껑을 덮어주어야 한다고도 했다. 나는 이번 여름을 대비해서 서울 마포구 성산동에 있는 우리의 장독에서도 해야 할 일들을 바지런히 적어두었다.
된장은 된장대로 간장은 간장대로 우리는 우리대로 이제 각자의 시간을 보낼 차례이다. 간장과 된장 항아리는 각자 주어진 조건에서 발효가 될 것이고, 그동안 나와 친구들에게는 또 많은 일들이 일어나겠지. 예기치 못한 눈물과 극복과 헤어짐과 만남과 후회와 기쁨이 뒤섞인 일들. 혹여나 장이 잘못되지 않도록 장독을 간혹 열어서 들여다보고 닦아주고 뚜껑도 갈아주는 일을 잊지 않아야 한다. 우리도 몸과 마음, 관계와 생활도 한 번씩은 가만히 들여다보고 필요한 손길을 보태주어야 한다.
쌀쌀한 겨울바람이 불어올 때 충분히 익은 된장으로 반장님과 된장 전골을 만들어먹기로 했다. 장도, 삶도 익어가는 발효의 시간을 거치고 만난 테이블에서 우리는 결국엔 웃으면서 마주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