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을 먹고 자란다

공유공간 2주년, 지기의 마음을 돌아보며

by 오복파크


문장 하나.

저와 함께 사는 동거인이 있는데요, 자매인 우리는 너무 가깝지도 너무 멀지도 않게 각자의 삶을 한 집에서 채워 가고 있어요. ‘동거인 점수'라는 것이 있다면 저의 동거인은 거의 만점에 가까운 사람일 거예요. 동거인은 자기가 필요하다고 느끼는 일은 자기가 알아서 하거든요. 왜 함께 사는 사람들이 자주 다투는 이유가 각자 다른 위생기준일 때가 많잖아요. 자신의 기준에 맞추기 위해서 무수히 규칙을 만들고, 그걸 지키는지 감시하고, 지켜지지 않으면 화를 내고.


저 역시 동거인과 그 기준이 많이 달라요. 대부분 제가 느슨하고 털털한 쪽이고, 동거인은 빠르고 깔끔한 쪽이에요. 동거인은 자기의 기준은 자기가 맞춰요. 그래서 언제나 더 바지런히 움직여요. 떨어진 정수기 필터를 주문하고 3개월 마다 맞춰 바꿔 끼우고, 힘이 떨어진 청소기의 충전선을 연결해 놓고, 다 마른 개수대의 그릇을 치우고, 가스레인지의 얼룩을 닦는 쪽은 언제나 동거인이에요. 그의 분주함에서 함께 사는 사람에 대한 배려를 느낄 수 있어요. 그의 공백에서 그가 지금껏 혼자 감당한 노고를 알 수 있어요. 제 동거인 점수는 그의 절반이나 닿을 수 있나 하지만 조금씩 그의 배려와 노고를 생각하며 한 번 더 움직여요. 덕분에 우리 집은 항상 그 모습으로 단정해요.


한 공간에서 사람들을 맞이하는 일을 하고 있어요. 평온한 듯 사람들을 맞는 저에게는 실은 아주 고약한 마음이 숨어있어요. 누군가를 탓하는 마음이요. 무언가 잘 굴러가지 않는다면, 그때마다 자꾸 걸리적거리는 돌부리를 발로 차곤 해요. 그냥 돌부리를 치우면 되는데. 삐죽삐죽한 마음을 감추고 있어요.

공간이란건 필히 내가 아닌 누군가도 함께 사용하게 되는 거잖아요. 다 다른 신발들의 발자국이 묻고, 작은 테이블에 한 번이라도 팔꿈치가 닿고, 잠시 화장실에서 체취를 풍기는 시간들도 있죠. 내가 잘 알거나, 조금 알거나, 잘 알지 못하는 누군가들과요. 나 혼자 사는 집과는, 오롯이 나만 사용하는 방과는 전혀 다른 공간의 감각이에요.

연이어 공간을 거점 삼은 일을 네 곳이나 거쳐왔음에도 저는 그때마다 공간을 꼭 제 방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혹은 하지는 않으면서 규칙만 정하고 동거인을 탓하는 빵점 동거인의 모습을 했던 것 같아요. 마음대로 공간의 규칙을 정하고, 정한 규칙이 어그러지면 화가 나고, 허락 없이 들어와 이렇게 만들어놓은 누군가의 탓을 하고. 그때마다 많이 괴로웠어요. 네, 그때마다 괴로운 건 항상 본인이지요.


공간을 운영한다는 건 결국 누군가와 함께 사는 것과 비슷한 것 같아요. 무수히 많은 규칙을 허물고 '내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일은 내가 한다' 규칙 하나만을 생각해 봐요. 누군가를 탓하기 전에 손과 발을 부지런히 움직이는 편이 좋더라고요. 삐죽한 마음을 쓸어주면서요.


최근에는 일하는 저를 이렇게 소개하고 있어요. '저는 공간을 쓸고 닦는 사람입니다.'



문장 둘.

어느 날 밥을 먹고 동네를 산책하다가 함께 일하는 친구에게 물어보았어요. '돈이고 뭐고 다 떠나서 하고 싶은 일이 뭐예요?' 친구는 동네에서 작은 책방을 운영하고 싶다고 했어요. 책방으로 동록 되어 있지만 다양한 일이 일어나는 공간. 노래를 하는 그 친구가 책방에서 노래를 하는 모습이 그려졌어요. 되물어오는 질문에 저 역시 비슷한 대답을 했어요.


- 저도 공간을 운영하고 싶어요. 좋은 책이나 영화가 있으면 사람들이랑 나누고, 제철재료 사다가 맛있는 음식 해 먹고. 요가도 할 수 있는 너른 공간이 있으면 좋겠네요. 냄새나면 안 되니까 층이 두 개여야겠다!


이 말을 뱉자마자 저에게 어떤 목소리가 들려왔어요. '그거 지금 네가 하는 일이야, 할 수 있는 일이야.'


저에게는 두 번째 고약한 마음이 있어요. '지금'을 자꾸 불만족한 것으로 만드는 습성이요. 내가 원하는 미래는 어딘가에 있을 거라는 만족 미루기요. 내가 바라는 일을 이미 하고 있고 충분히 할 수 있는데 아무튼 여기는 아닌 다른 곳에서 실현할 수 있을 다른 일을 꿈꾸어요. 나의 바람을 연기하고 가능성에 제한을 두지요. 내가 하고 있는 일을 별거 아닌 것으로 만들고요.


'낙원은 다른 차원의 의식이 바라보는 현실이다. 천국은 언제나 우리 손안에 있다. 다른 때 다른 곳, 다른 상황이 아니다. 지금 여기에, 완전하고 완벽한 낙원 전체가 있으면 된다. 낙원은 가졌을 때가 아니라 견딜 수 있을 때 온다.'


얼마 후 책을 읽다가 이 문장을 만났어요. 이 문장을 만난 것은 참 감사한 일이에요. 글자 하나하나가 제 마음을 파고 들거든요. 마치 저의 고약한 마음을 뿌리 깊이 파내려는 것처럼요. 이 문장을 필사해서 방 한편에 붙여 두고 오가면서 자주 읽어요. 천천히 곱씹어서. 그리고 응답해요. 네, 어딘가에 천국이 있다는 착각에서 벗어날게요. 네, 지금 여기에서 저는 온전할 수 있어요. 네, 저는 지금 만족합니다, 이 곳을 낙원으로 삼아요.


지금, 여기에서 온전히 즐기지 못하면 어디에서도 그럴 거예요. 낙원을 견디기 위해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활동적인 몸과 감사하고 기대하는 마음, 내가 원하는 것을 여기에서 펼치려는 조금의 용기를 기르고 있을게요.



문장 셋.

누군가의 피드백을 잘 들으시나요? 저는 특히 부정적인 피드백을 듣는 것을 힘들어해요. 고약한 마음 세 번째..


어쩌면 공간을 이용하는 사람들에 대한 저의 엄격한 기준은 이 공간이 마치 저를 나타내는 것 같았기 때문이 아니었을까요. 제가 하는 일과 공간에 대해서 아쉬움이나 부족함을 들을 때면 높은 곳에서 아래를 내다보는 것처럼 울렁거렸어요. 곧 방어적인 태도를 보였지요. 여기서 탓을 하는 마음도 생겨났는데, 그러고보면 마음은 하나인가 봐요. 어느 때에는

그 말들을 다 감당할 수 없어 오래 우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었어요.


재미있는 것은 긍정적인 피드백도 잘 듣지 못한다는 거예요. 일부러 기분 좋아라고 해주는 거라면서요. 맑고 담백한 말들을 달고 자극적인 것으로 받아들였지요. 비판은 감당하기 힘들고 칭찬도 느끼지 못하는. 스스로 만든 벽 안에서 답답하고 힘든 날이었어요.


요즘 저는 일을 줄였어요. 그만큼 받는 돈도 줄어서 소비 앞에서 고민하는 시간이 조금 늘었지만, 소비 밖의 시간이 많아져서 좋아요. 글도 쓰고, 책도 읽고, 동거인의 저녁을 전보다 자주 챙기면서 시간을 보내고 있어요.


주 5일, 하루 8시간 노동하는 몸에서 벗어나니 비로소 다른 노동을 상상해 볼 수 있는 것 같아요. 만약 내가 결혼을 하고 주부가 되어서 '가사 노동'을 전담한다면?

만약 내가 아이를 낳아서 어느 한 시기만이라도 온전히 아이의 '돌봄 노동'을 한다면?

혹은 아픈 부모의 '간호 노동'을 한다면?

사정이 생겨 다른 지역으로 이주해 생계를 위해 부랴부랴 '단순 노동'을 하게 된다면?


이전에는 상상하지 않았어요. 아니 못했어요. '일 말고는 어떤 방식으로 자아를 실현하고 존중과 보람을 얻을 수 있는지 모색할 시간이 부족'했거든요. 주 5일, 하루 8시간 노동의 길은 다른 길을 엿보고 상상할 여력을 주지 않았거든요. 나는 일 말고 좋아하는 것도, 하고 싶은 것도, 관심 두는 것도, 재능을 발휘할 능력도 많은 '일보다 크고 복잡한 사람'인데 말이에요. 일과 직업 중심의 사회에서 갖은 돌봄 노동을 실은 낮게 보고 사회적 시선과 평가를 고려해 일을 하고 있던 건 아니었는지 돌아보게 돼요.


인생이 어떻게 굴러갈지 어떻게 알겠어요? 지금 내 모습이 20년 전에 내가 꿈꿔왔던 모습이던가요? 나의 사정에 맞춰서 어떤 일이고 할 수 있다고 이제 조금 더 다양한 일의 형태를 생각해봐요. 그러니 지금은 지금이 좋으니 돈을 더 벌기 위한 일은 하지 않고 일 밖의 생활에 공을 들여보렵니다. 평생 쓰고 싶다던 글에 시간을 쓰고, 평생 하고 싶은 요가도 밀도 있게 수련하고, 평생 맺고 싶은 관계들도 잘 돌보면요.


이상하지요, 그러니 저는 지금 하는 저의 일을 더 사랑하게 되고, 일 밖의 저도 더 사랑할 수 있게 될 것 같아요.



마지막 문장.

이 글은 제가 일하는 공간의 2주년을 맞이하면서 그간 일했던 저를 돌아보면서 쓰게 되었어요. 공간의 이름에는 '달'이 들어가는데 실제 달처럼 달안에 머무는 저의 마음도 수없이 차고 기울었었거든요. 글을 어떻게 마칠까 고민하면서 시간을 두는데 또 문장 하나가 눈에 들어와요. 공간을 운영하는 분의 글인데 비슷한 일을 하는 사람으로서 공감이 되기보다는 부럽고 멋져 보였어요. 저는 그 문장을 닮고 싶어서 그 문장이 되고 싶어서 몇 번이고 되뇌어서 여기에 또 받아 적어요.


그들이 떠난 자리엔 다정한 마음과 세심한 눈길이 남고 공간은 그것을 먹이처럼 받아먹는다.


눈에 보이지 않는 순환은

사랑의 마음은

보이지 않음으로써 존재하는 것

분명히.


나는 공간을 쓸고 닦는 사람입니다. 필요한 일은 직접 해요. 지금 제가 있는 곳을 가장 좋은 곳은 곳으로 믿고 만듭니다. 공간과 일을 통해 관계를 맺고 있지만 공간은 제가 아니고 일도 저 자체가 아니예요. 어디서 왔는지 어렴풋이 알 것 같은 트라우마로 피어난 고약한 마음은, 그렇게 문장을 통해서 옅어져요. 사랑스러운 이 문장들을 먹고 마음이 다시 맑게 자라나요.



출처

문장 하나. 잘 모름.

문장 둘. 혹시 아신다면 알려주세요.

문장 셋. 책 <일의 말들 (황효진, 유유)>

문장 넷. 스치듯 보았던 ‘고요한 집’ 인스타그램 스토리 @goyohanzi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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