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음악을 즐기는 방법, 다섯 번째는 브로콜리 너마저의 앵콜요청금지이다.
초기 버전
2012 리메이크
한 마디로 가슴이 찢어지고
음악을 들을 때는 가사에 집중하기도 하고 가사를 흘릴 때도 있다. 곡에 따라 가사가 결정적인 역할을 하기도 하고, 그저 보컬이 악기의 일종으로 가사는 이미지와 운율만 만드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앵콜요청금지]는 가사에 집중해서 듣는 곡이다. 집중 수준을 넘어 몰입한다고 해도 좋을 것이다. 몰입한 끝에, 가사 한 구절만으로 가슴이 찢어지는 듯한 기분을 느낄 때도 있다.
아무래도 네가 아님 안 되겠어
이런 말하는 자신이 비참한가요
그럼 나는 어땠을까요
때를 잘 만난 음악들은, 그때의 자신과 반응해 시간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감상을 남기곤 한다. 그중에는 언제 들어도 그냥 슬픈 음악과는 다르게, 내 가슴이 먹먹해지고, 울적해지며, 말로 표현하지 못할 애수를 느끼게 하는 음악들도 있다.
나에게 있어 어릴 적에 들은 백지영의 [총 맞은 것처럼]이 그러했고, 공부하며 들은 EGOIST의 [Ghost of Smile]이 그랬으며, 대학에 입학해서 듣게 된 브로콜리 너마저의 [앵콜요청금지]가 그랬다.
짜장이요? 짬뽕이요? 둘 다 주십쇼
브로콜리너마저의 정규 1집 <보편적인 노래>는 모종의 이유로 음원사이트에서도 들을 수 없게 되었다. 거기에 수록된 첫 [앵콜요청금지]가 있고, 이후 2012년에 곡을 약간 고쳐 다시 발매한 [앵콜요청금지]가 있다.
둘 모두 각자의 매력이 있기에 한쪽만 듣지는 않는 편이다.
첫 [앵콜요청금지]는 씁쓸한 가사와 대비되는 무겁지 않은 밴드사운드가 오히려 이별을 담담하게 이야기해 주는 느낌이 들게 한다. 그래서 이별을 맞고 나서 애써 드럼을 치며 슬픔에 잠겨있지 않으려 하지만, 그 사이로 눈물을 감출 수 없는 애달픈 상황을 보는 듯하다.
재발매된 [앵콜요청금지]는 템포도 차분해지고, 키도 낮아져 좀 더 애절한 느낌이 생겼다. 가사 본연의 씁쓸한 기분을 한껏 느낄 수 있고, '그럼 나는 어땠을까요'에서 느껴지는 감정이 한층 풍부한 느낌이 든다.
두 버전 모두 훌륭하니, 계속 돌려 들었으면 좋겠다.
쭉 뽑아낸 명주실
브로콜리너마저는 가사도 훌륭하지만 사운드와 멜로디의 조화도 절묘하다. 과하지 않게 기본을 지키는 절제된 밴드사운드에, 부드럽게 이어지는 멜로디가 정말 잘 맞는다.
특히 멜로디는 길고 가늘게 뽑아낸 명주실처럼, 어디 한 군데에서 걸리는 느낌이 없이 매끈하고 반짝거리는 매력이 있다. 보컬들 또한 기교나 피지컬을 자랑하기보다는 담담하고 절제되게 노래를 불러 멜로디를 맛깔나게 살려내고 있다.
개인적으로 아름다운 멜로디의 순위권에는 부활의 Never Ending Story를 꼽는 편인데, 여기에 비견될 만큼 잘 만들어진 음악들이 정말 많다고 생각한다.
문득 마주쳤을 때
사실 브로콜리너마저의 음악을 자주 듣는 편은 아니다. 나는 이보다는 자극적인 음악을 더 즐기기 때문이다.
하지만 브로콜리너마저의 음악은 그저 삶을 살아가다가, 문득 마주쳤을 때 깊은 감동을 준다. 그 만남을 통해 겹겹이 쌓여 무거워진 삶을 조금 덜어내고 다시 걸어갈 수가 있다. 언제나 비슷한 음악만으로 살아갈 수는 없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