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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이첼 킴 Oct 14. 2023

'어바웃타임'은 부모님에 관한 영화다.

당신은 되돌리고 싶은 순간이 있나요?


오늘의 곁들임






Movie
어바웃타임



어바웃타임은 로맨스 영화로 알려져있다. 하지만 나는 어바웃타임이 연인간의 사랑이 아닌 부모님과의 사랑을 전하고 싶었다고 생각한다. 영화의 주인공인 '팀'은 시간여행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안 순간부터 되돌리고 싶은 순간이 있을 때마다 이 능력을 사용한다. 그렇게 '메리'와 결혼하고 아이를 낳으며 행복하게 살던 도중, 아버지가 폐암에 걸렸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아버지의 죽음을 받아들이기 어려웠던 팀은 과거로 이동해 미래가 변하지 않는 한정된 시간대에서 이미 죽은 아버지를 찾아가며 즐거운 시간을 갖는다. 메리가 셋째를 가지자며 이야기 할 때, 아버지를 영원히 볼 수 있는 현재에 머무를 것인가 아니면 아내와 아이들과 함께 미래를 살 것인가에 대해 고민하는 장면이 나온다. 



팀의 아버지를 향한 애틋한 마음처럼, 누구나 부모님을 생각하면 가슴 한켠이 뭉클해오는 사건이 있을 것이다. 나 또한 그렇다.  


공부를 오래했던 내가 시험에 합격하기까지 부모님은 물심양면으로 지원을 해주셨다. 지금도 눈을 감으면 유난히 추웠던 수능 날이 떠오른다. 고사장까지는 엄마가 데려다주었는데 학교까지는 혼자 올라갔다. 뒤를 돌아보면 눈물이 날 것만 같아서  눈물이 차오르는 것을 꾹 참으며 오르막을 올라갔다.  


기나긴 시험이 끝나고 지친 몸으로 고사장을 나오는데 학교 앞에서 엄마를 만났다. 엄마는 저 멀리서도 나를 한눈에 알아봤다고 했다. 엄마는 시험을 잘쳤는지 묻지 않고 내 표정을 살폈다. 


조용히 저녁을 먹고 나니 인터넷에서 정답이 나왔다는 소식이 뜨기 시작했다. 나도 숨을 꾹 참으며 정답을 확인했다. 한 문제, 한 문제 채점하는 손이 덜덜 떨렸다. 문제를 맞춰도 틀려도 떨리는 마음은 어쩔 수가 없다. 점수를 확인하고 곧장 안방 문을 열었다. '엄마, 나 해냈어!' 안방에서 엄마와 울면서 부둥켜 안았던 순간이 생생하다.

  

수능날이 지나고 논술 시험을 치러 갔다. 아빠가 학교까지 데려다주었다. 논술 시험이 끝나고 수많은 학생들이 우루루 쏟아져 나오고 사람들 속에 뒤엉켜 아빠를 찾을 수 없었다. 주변을 두리번 거리니 저 멀리서 커다란 돌 위에 올라가 있는 아빠가 보였다. 아빠는 몇 천명의 학생들 사이에서 나를 금새 찾아내었는지 손을 흔들었다. 그 후로도 몇 번의 논술 시험을 쳤었는데 그 때마다 아빠는 왕복 7시간씩 운전해서 데려다주었다. 



되돌아보면 나의 합격은 부모님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아빠는 내가 쓰러질 때마다 병원에 달려왔었다. 모의고사를 못친 날엔 기분이 좋지 않은 나를 데리고 산책을 갔다. 그리고 성인이 된 후로 소득이 없던 나를 대신해 그 모든 학원비와 교재비, 생활비까지 감당하셨다. 시험을 한번만 친 것도 아니다. 수능이며 고시며 시험을 여러번 준비했던 내게 경제적인 부담을 주지 않으셨다. 


엄마는 1년에 네번씩 한의원에서 한약을 지어주셨다. 수험생은 잘 먹어야 힘이 난다고 하시면서 삼시세끼 따뜻한 밥을 지어먹였다. 본가에서 따로 살게 되었을 때는 아침을 잘 챙겨먹지 못할까봐 매주 일요일마다 일주일치 밥을 해서 자취방에 오셨다. 


아침을 잘 먹지 못하는 나에게 쉐이크라도 먹어야한다고 7개의 물병을 들고 오던 날이 기억난다. 엄마는 손수 고구마 껍질을 벗기고 우유에 갈아 만든 쉐이크 7개를 500ml 물병에 담아 얼려서 왔다. 난 그 쉐이크를 하루에 하나씩 꺼내먹었다.


그 다음주에도, 그 다다음주에도.

그 길었던 수험생활동안 엄마는 한번도 빠짐없이 일요일마다 자취방에 오셨다. 고구마만 먹으면 질릴까봐 과일을 갈아봤다면서 '딸기', '바나나', '고구마'가 적힌 물병을 내밀었다. 순간 눈물이 왈칵 났다. 흐르는 눈물을 참기 위해 고맙다는 말 대신 뭐하러 이렇게 고생했냐며 툴툴거렸다.

      


우리는 때때로 되돌리고 싶은 순간이 있다. 나에겐 늘 곁에 있어서 당연하게 여겼던 부모님과의 순간이다. 뭐라도 먹고 나가라며 챙겨 주시는 부모님께 귀찮다며 신경질 낸 기억을 되돌리고 싶다. 내가 좋아하는 반찬을 한아름 싸서 오신 엄마에게 '뭣하러 이런 걸 싸왔냐'며 툴툴거렸던 기억을 되돌리고 싶다. 아빠가 할머니를 뵈러 같이 가자고 했지만 친구들과 놀고 싶어 할머니를 만나러 가지 않았던 순간을 되돌리고 싶다. 


할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에 함께 저녁을 먹으며 시간을 더 자주 보낼 걸 그랬다. 시간을 내서라도 부모님과 함께 여행을 떠날 걸 그랬다. 한번이라도 더 자주 안부통화를 할 걸 그랬다. 우리 모두는 부모님과의 시간을 후회한다. 만약 우리가 팀처럼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부모님과의 시간을 함께 보냈던 순간으로 되돌아가지 않을까?


어바웃타임을 보며 '시간'에 대해 골똘히 생각해본다. 영화에서 시간여행이라는 장치를 썼던 이유는 무엇일까? 우리에게 가족, 친구, 연인이 애틋한 이유는 무엇일까? 그 사람과 보냈던 시간이 길기 때문이다. 시간이야말로 통제할 수 없지만 동시에 우리에게 주어진 축복이다. 소중한 사람들과의 시간은 삶의 틈을 알차게 메워준다. 



그러니 오늘 주어진 하루는 내가 팀처럼 미래에서 후회하여 되돌아온 순간이라고 생각해보자. 부모님은 언제나 내 곁에 있어줄 것을 알기에 항상 뒷전으로 밀려난다. 하지만 부모님과의 시간은 나를 기다려 주지 않기에 더 소중하다.


팀의 아버지는 처음 하루는 평범하게, 두 번째 하루는 처음 하루에 놓쳤던 소소한 것들에 대해 생각한다면 인생을 완벽하게 살 수 있다고 조언했다. 하지만 우리들은 팀의 아버지처럼 하루를 두번씩 살 수 없다. 그러므로 오늘 하루는 유일무이한 순간이다.  


어쩌면 팀의 아버지처럼 하루를 두번씩 사는 것만이 정답이 아니다. 팀은 아버지의 조언을 따르지 않고 대신 하루하루를 최선을 다해 사랑하며 산다. 셋째 아이를 갖게 되면서 시간여행을 통해 아버지를 더이상 볼 수 없지만 그 또한 받아들인다. 팀이 더이상 시간여행을 하지 않고 후회스러운 하루를 보내지 않도록 노력하는 것처럼 부모님과 함께하는 시간들을 다시 오지 않을 하루처럼 알차게 보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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