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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이첼 킴 Oct 21. 2023

안정적으로 살고 싶어 결혼해요. '레볼루셔너리 로드'

타이타닉은 연애고 레볼루셔너리로드는 현실이다

불안정함이 주는 자유로움.



Movie
레볼루셔너리 로드




사람들을 만나고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안정'이라는 단어가 참 많이 들린다. '왜 그 직업을 선택했어?'에 대한 질문엔 '안정적인 직업이어서'라는 대답이 나오기 마련이고, '안정되게 살고 싶어서' 결혼을 하기로 마음먹었다는 사람들도 많다.


모두들 안정된 삶을 꿈꾸고 안정을 찾아 결혼 하고 직장을 가진다. 그렇다면 정말 결혼을 하면 안정적으로 살 수 있는 것일까?



'레볼루셔너리 로드'는 타이타닉의 잭과 로즈가 다시 만난 영화이다. 잭과 로즈의 슬픈 결말이 아니라 만약 둘이 결혼한다는 해피엔딩이 되었다면? 아마 이 영화처럼 현실적인 부부가 되어 살아가지 않을까?


남편 '프랭크'와 아내 '에이프릴'은 뉴욕에서 1시간 떨어진 교외 레볼루셔너리 로드에 살아가는 평범한 부부이다. 프랭크는 가장으로써 두 자녀의 양육을 위해 좋아하지 않는 회사를 다니고 있다. 에이프릴 또한 연극배우로 일하며 엄마로서 육아에 전념한다. 낭만을 꿈꾸지만 현실을 살아가는 부부.


어느 날, 에이프릴은 과거의 자신들 빛나던 시절의 사진을 보고 잊고 있었던 꿈을 떠올린다. 그리고 에이프릴은 프랭크에게 파리로 이민갈 것을 제안한다.  에이프릴은 반복되는 쳇바퀴같은 삶에서 도피하고 싶어하고 삶의 의미를 찾고 싶어한다. 그 도피처로 '파리'를 선택한 것이다. 아내의 말에 설득된 프랭크는 직장에 사표를 내고 주변 사람들에게 파리로 이민갈 것이라고 얘기한다.



누구나 낭만을 꿈꾸지만 현실에 안주하게 되는 모습이 우리들 모습같다. 에이프릴의 공허함은 무엇이었을까? 권태로움이었을 것이다. 권태는 아이러니하게도 '안정'이 지속되었을 때 느끼는 감정이다. 나는 쇼펜하우어의 명언을 참 좋아한다.



Life swings like a pendulum backward and forward between pain and boredom



인생이란 시계추처럼 고통과 지루함 사이를 오간다. 인생은 안정과 불안정 사이를 왔다갔다하며 살아가는 것이다. 안정적으로 살아가다 보면 삶이 단조롭고 권태롭다고 느끼게 되고, 권태를 극복하기 위해 새로운 도전을 하게 되면 필연적으로 고통이 수반된다는 것이다.


 

돌아보면 나 또한 3년을 주기로 권태로움을 느꼈다. 현재 생활에 만족하며 지내다가도 3년이 지나면 지루함을 느끼고 새로운 도전을 하기로 맘먹는다. 도전에 성공하기까지 고통을 감내하면서 버티면 어느새 또다시 안정이 찾아온다.


결혼을 하고 안하고를 떠나서 삶이란 애초에 안정적일 수가 없는 것이다. 사람들은 안정적인 삶을 살다보면 느껴지는 필연적인 권태로움을 자각하지 못하고 일탈을 꿈꾼다. 안정은 권태로움이고 불안정은 자유라는 것, 오히려 불안정함이 주는 자유로움을 선물이라고 느끼며 받아들여야 한다.



나는 실패를 여러 번 겪고 나서야 나에게 꼭 맞는 배우자와 직장은 '시행착오'를 겪어야 가질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도 그럴 것이 처음엔 무엇이 나와 잘 맞는지 모르기 때문이다. 갓 대학을 졸업한 그때 그 시절의 나는 빨리 안정되고 싶었다. 직장에 들어가서 안정된 수입을 얻고 싶었고, 안정된 수입을 바탕으로 안정된 주거환경을 갖고 싶었다. 주변 선배들은 안정된 상황이 될 때까지 결혼을 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 그때의 나에게 불안정을 얘기해보고 싶다.



어차피 안정되었다고 느끼는 순간은 와도 한순간이야. 우리는 권태로움을 느끼게 돼. 오히려 지금 상황을 즐겨봐.  불안정은 시행착오야. 불안정은 실수를 두려워하지 않고 인정하는 거야. 불안정하다는 건 자유롭다는 거야.



프랭크와 에이프릴에게도 얘기해주고 싶다.

자녀와 함께하는 이민은 쉽지 않아요. 에이프릴은 셋째를 임신하였고 프랭크는 승진 제안을 받았으니 현실에서 삶에 변주를 줄 수 있는 방법들을 생각해봐요. 파리에 간다고 해서 그 공허함은 해결되지 않아요. 파리에 처음 간 몇 년간은 새로움이 좋겠지만, 이내 그 삶에 익숙해진다면 권태로움은 다시 찾아올 거예요. 권태로움은 사는 곳을 바꾼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 우리 삶에서 짊어지고 가야할 친구같은 존재예요. 파리에 간다고 당신의 공허함은 채워지지 않을 거예요.



에이프릴은 '의미있게 사는 게 미친 거라면 난 얼마든지 미칠래요.'라고 말했다. 에이프릴의 삶의 의미는 권태로움을 극복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에이프릴은 권태로움을 극복하면 또 다른 고민과 걱정이 생겨날 것이라는 걸 몰랐기에 파리행에 집착했다.



권태로움은 빨리 극복해서는 안되며 하나씩 하나씩 과정을 즐겨야한다. 왜냐고? 빨리 성취해도 기쁨이 오래가지 않고 또 다른 갈증을 느낄 테니까. 결혼 전 나는 무척이나 아파트에 들어가고 싶었다. 원룸의 작은 공간에서 사는 것이 힘들었기 때문이다. 요리를 좋아하는 나에게 원룸 주방은 좁았고 좋아하는 LP를 수집하기엔 방이 턱없이 작았다.


열심히 모은 돈으로 아파트 전세금을 내고 신혼부부 대출을 받아 아파트에 입성했다. 하지만 기쁨은 한달 만에 사그라들었다. 아파트의 삶에 익숙해져버린 것이다. 아파트에 산다고 매일 기쁜 일만 일어나지 않는다. 이젠 다른 것들이 눈에 들어 왔다. 예쁜 가구는 어찌나 비싼지 마음에 드는 가구의 가격표를 집었다가 다시 뒤집어 놓기 일쑤였다. '아, 내가 조금만 더 돈이 있었으면 이 소파를 샀을 텐데.'



인생은 기니까 하고 싶은 걸 천천히 하면서 '과정'을 즐기면서 살아야 지루하지 않는다. 정상에 빨리 가기까지 얼마나 힘이 들까. 또 정상에 도착한다고 해도 그만큼 즐겁지 않다.


우리 모두는 돈을 많이 벌기 원한다. 돈을 많이 벌면 생활을 같이 즐겨줄 사람이 그리울 거다. 아무리 맛있는 음식이라도 혼자 먹으면 재미 없을 테니까. 같이 여행을 가줄 사람이 필요하다. 천천히 이뤄가자. 우리 모두는 꽃이 지고나서야 꽃이 아름다웠음을 깨닫는다.




아침에 눈을 뜨는데 창밖으로 들어온 따뜻한 햇살을 느꼈다.


한국에서는 20대에게 방황할 시간을 주지 않는다. 더 빨리 취업할 것을 요구하고 재수생이나 취업 준비 기간이 길어진 사람들을 이상하게 본다.우리 사회는 청년들에게 실패할 기회를 주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들은 확고한 결정을 내릴 때가 아니라 시행착오를 겪어야 할 때이다.


난 스스로 시간을 주기로 한다.

너 그동안 잘했어. 청년들에게 방황할 기회를 주지 않고 그저 더 빨리 그저 더 많이 고지에 올라 소유해야 한다고 말하는 사회에 살고 있지만 내가 그 사회의 생각에 따르지 않으면 그만이다.



This isn’t the time to make hard and fast decisions. This is the time to make mistakes.



Why not? 실수를 두려워하면서 살 수는 없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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