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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레이첼 킴 Oct 21. 2023

'미생' 이 '완생'이 되기 위해 몸을 단련한다

내가 나와 화해하는 법


오늘의 곁들임



Music 
도겸 - Go


터질 듯 두근대 내 심장소리가 불안한 생각은 다 날려 보내자
더 빠르게 더 가볍게 바로 지금 이 순간
다시 넘어진다 해도 돌아보진 않겠어
여전히 내 심장 뛰고 있어 숨이 턱 막힐 듯 지쳐가고 있어



스트레스가 극에 달했던 시절, 주변에서 운동을 하면 몸과 마음이 달라진다며 테니스나 골프를 권했다. 하지만 운동에 돈을 써가면서 취미를 즐길만한 심적 여유가 없었다. 헬스장도 다니기 싫었다. 꾸준히 운동을 한다는 건 내가 나 자신을 아껴주어야만 가능하다는 사실을 그 때 알았다. 정말 우울하면 아무것도 하기가 싫어지고 운동을 할 생각조차 들지 않는다. 


그러던 내가 조금씩 희망을 갖고 마음의 문을 열게 된 후 가장 먼저 한 일은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보는 일이었다. 반복된 폭식, 알코올 의존으로 늘어나버린 뱃살과 망가진 몸이 눈에 들어 왔다. 내 안에는 멋진 내가 있는데, 지금보다 더 멋진 내 모습을 되찾고 싶었다.


그래서 러닝을 시작하게 되었다. 러닝을 시작한 계기는 정말 단순했다. 가장 돈이 안드는 운동이었기 때문이다. 내 두다리만 있으면 할 수 있는 운동, 그 흔한 공도 필요 없고, 시간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는 운동. 조금만 마음먹으면 바로 시작할 수 있는 운동. 




처음에는 정말 1분도 달리지 못했다. 달리다가 중간에 걸어버리고 말았다. 축 늘어진 뱃살이 달리기를 할 때 출렁거렸고 숨은 턱까지 차올랐다. 이런저런 고민 끝에 런데이라는 어플의 도움을 받기로 했다. 런데이 앱을 깔았더니 초급자용 한달 달리기 코스가 있었다. 그래, 적어도 이 코스만큼은 꾸준히 해보자고 다짐했다.



30일 코스는 매일 5분씩만 추가해서 뛰는 것이었다.  숨이 턱까지 차오른다. 너무 힘들어서 세상의 어떤 것도 보이지가 들리지가 않는다. 오직 가뿐 숨을 내쉬는 나만이 존재할 뿐.

나는 달리면서 주문을 외웠다. 

'나는 매일 빨라지고 있어, 나는 매일 나아지고 있어.'




러닝을 할 때면 미생의 주인공 장그래가 러닝하면서 되뇌었던 말들이 떠올랐다. 뭔가를 해내기 위해선 체력을 키워야 한다고. 나도 러닝을 하면서 바랬던 소망이 있다. 지금 이 달리기를 시작으로 내 인생이 바뀌었으면 한다고.  그런 생각이 들면 가슴이 벅차 울었다. 아이러니하게도 달리기 속도가 빨라질수록 우는 일이 잦아졌다. 한번은 러닝 도중 비가 내린 적이 있는데 그 날은 비와 눈물이 섞여 뺨에 후두둑 떨어졌다. 온 몸이 비로 축축하게 젖었지만 마음만은 가벼워졌다.



러닝을 시작한지 한달 째, 나는 스스로와 약속했던 한달코스를 완주하였다. 뒤돌아보니 조금은 달라진 내 모습이 보였다. 나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방에서 나와 세상 밖으로 나온 것이 정말 뿌듯하였다. 점점 용기가 나기 시작했고 사람들을 만나고 싶어졌다. 곧장 집 근처 러닝크루를 알아보았다. 


러닝크루엔 정말 잘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다들 10km, 20km는 거뜬하게 뛰어서 멋있어보였다. 사람들과 함께 달리며 또 주문을 외웠다.

'나는 매일 빨라지고 있어, 나는 매일 나아지고 있어.' 


일주일에 한번씩, 정해진 시간에 모여 달리다보니 사람들과 이런 저런 얘기도 나누게 되었다. 곧 있을 마라톤을 앞두고 훈련에 들어간다고 하였다. 


'00씨도 이번에 마라톤 대회가 있는데 같이 나가볼래요?'

'네? 마라톤이라니요? 저 초보라서 못 뛰어요.'

내가 마라톤이라니? 마라톤은 어렸을 적 이봉주선수가 달리는 것만 보았는데, 마라톤의 '마'자도 모르는데! 설렘보다 걱정이 앞섰다.


사람들은 처음부터 10km나 하프 마라톤을 뛰는 것이 아니고 5km를 신청하면 된다고 했다. 5km는 훈련하면 금방 뛸 수 있는 거리이기 때문에 걱정하지 말고 함께 신청하자고 하였다. 결국 몇날 며칠을 고민한 끝에 5km를 완주하기 위해 새로운 목표를 설정하자고 다짐했고 마라톤을 신청했다.


마라톤에 나가기로 마음먹었으니 지금까지처럼 힘닿는데까지 뛰는 것이 아니라 체계적으로 달리기를 해야할 필요가 있었다. 러닝에는 '페이스'라는 것이 있다. 평균 페이스는 전체구간에서 1km당 걸린 시간을 의미하는 것이다. 처음 페이스를 재어보니 나의 페이스는 7분 30초가 나왔다. 내 목표는 이 페이스를 6분 30초로 앞당기는 것이다. 그러면 대략 30분 내외로 5km를 완주하게 된다. 1분도 달리지 못하던 내가 30분동안 쉬지 않고 달릴 수 있을까 걱정되었지만 이왕 마라톤을 신청하였으니 최선을 다해보기로 하였다.


우리는 일주일에 한번 모여서 마라톤 연습을 하였는데 잘 뛰는 사람들이 내가 포기하지 않고 뛸 수 있도록 옆에서 같이 뛰어주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 대회 당일이 되었다.


아침 6시에 일어나 간단하게 아침을 먹고 배번호를 부착한 티셔츠를 입었다. 열심히 했으니 오늘 완주하지 못하더라고 즐기자는 마음으로 가볍게 집을 나섰다. 마라톤 대회에는 사람들이 정말 많았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러닝을 즐기는 줄은 몰랐다. 5km는 가장 마지막에 출발하였고 나는 나의 페이스를 지키며 뛰기 시작했다.


달리다보니 양 옆에서 환호하는 사람들이 보였다. 사진을 찍어주는 사진 기사들도 많았고 지쳐 보이는 사람에게 물을 주는 건네주는 사람들도 많았다. 대회가 아니라 모두가 하나된 마음으로 뛰는 축제같았다. 중간 중간 포기하고 싶었지만 격려해준 사람들 덕분에 끝까지 완주할 수 있었다. 목표했던 기록에는 못 미쳤다. 30분안에 들어오진 못하고 10분 늦은 40분에 골인했다. 그렇지만 완주 메달을 받아들고 나니 눈물이 났다. 러닝을 시작하게 되었을 때 내 모습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여기까지 달려온 내가 참 기특했고 스스로가 대견했다. 




요즘도 기분이 우울해질때면 운동화끈을 질끈 묶고 공원으로 나간다. 공원에 도착하기 전까지 좋아하는 가수의 노래로 플레이리스트를 가득 채운다. 요새는 xydo의 '가보자' 노래를 참 좋아한다. 이 가사가 참 좋기 때문이다.


'어제를 스치던 조각들은 오늘의 먼지가 되어 흩어져 가' 


어제의 후회는 오늘의 바람이 되어 볼을 스친다. 



러닝을 하면 지나간 후회와 앞으로의 걱정이 뒤엉켜 머릿속이 복잡해진다. 그럴 때마다 더 힘차게 앞으로 달린다.  '발을 내딛을 때마다 새로운 나로 다시 태어나는 거야.'

한 발, 한 발 내딛을 때마다 어제의 나와는 멀어져간다. 내일 더 잘 살려고 하지말고 그냥 살아보자. 달리다보면 어느 순간 10km를 달리게 된 것처럼, 너무 애쓰지 않아도 어느 순간 잘 살고 있는 나를 보게 된다. 나는 러닝을 하면서 스스로와 화해하는 법을 배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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