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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선생 Oct 22. 2023

가족의 역사는 늘 음식과 함께, '친정엄마'

삼남매의 닭다리와 소고기


오늘의 곁들임





Movie
친정엄마




엄마라는 단어는 언제 들어도 눈물샘을 자극하며 복잡미묘한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엄마라는 단어만이 가진 힘인걸까? 전세계의 엄마를 가리키는 말이 다 비슷한 걸 보면 그럴지도 모른다. 중국어로는 '마마' 영어로는 '맘' 한국어로는 '엄마'. 


우리 남매는 삼남매이다. 주변 친구들은 보통 형제가 두 명인 집이 많았던데 비해 우리 집은 세 명이어서 늘 복닥복닥했다. 우리는 싸우기도 하고 의지하기도 하면서 자라났다. 우리가 가장 크게 고민에 빠지는 날은 치킨을 시키는 날이다. 동네 치킨을 시키면 다리는 2개만 왔다. 어쩔 수 없다! 닭은 다리가 2개뿐이니! 그런데 배고픈 어린이는 세 명이기에 나머지 한명은 다리를 못 먹게 되었다. 


치킨 포장을 뜯으면 누가 먼저랄새도 없이 다리가 어디 있는지 살폈다. 전광석화처럼 빠른 손놀림으로 치킨 속을 뒤적여 다리를 빨리 찾는 사람이 임자이다. 경쟁에서 진 어린이는 번번히 아쉬운 눈빛으로 닭다리를 포기할 수 밖에 없었다. 


주로 막내가 닭다리를 먹지 못했다. 나이가 어려 손놀림이 첫째와 둘째에 비해 느렸기 때문이다. 막내는 울면서 엄마에게로 달려간다. 막내의 닭다리 먹고 싶다는 칭얼거림에 마음이 약해질 때도 있지만 이미 닭다리는 뱃속으로 들어간 지 오래다.


어느 날, 엄마는 치킨을 시키기 전에 우리에게 말했다. 닭다리를 먹은 사람은 날개를 먹을 수 없다고. 닭다리 다음으로 맛있는 부위가 날개였기에 눈을 동그랗게 떴다. 날개도 참 맛있는데 말이다.


그리고 엄마는 달력에 닭다리 먹은 순서를 표시했다. 

'오늘부터 순서대로 닭다리 먹는 사람 표시할거야. 다음번에 치킨 시키면 이미 먹은 사람은 날개만 먹는거야.'


닭다리 못 먹는 사람이 날개 2개를 먹고, 그 순서는 돌아가면서 정한다.

꽤나 공평한 제안에 우리는 고개를 끄덕이며 합의했고 그날 닭다리를 먹게 된 막내는 함박웃음을 지었다. 


지금은 치킨을 시키면 아무도 닭다리를 탐내하지 않는다. 체지방량이 걱정되는 둘째는 닭가슴살만 먹고, 첫째는 회식에서 치킨을 많이 먹었다며 손사래를 친다. 막내는 있으면 먹고 없으면 말고 식이다. 또 요새는 두마리치킨도 많이 나와 두 마리를 시켜도 되고, 마음만 먹으면 윙과 봉이 있는 윙봉세트를 시키면 닭다리를 많이 먹을 수 있다. 그렇지만 그 때 그 맛이 나지 않는 건 왜일까? 솔로몬보다 지혜로워보였던 엄마의 해결책은 더이상 유효하지 않는다.




우리 집은 굉장히 소고기를 자주 먹었다. 아빠의 월급날이나 시험에서 백점 맞은 날이 아니어도 말이다. 엄마는 수시로 영양보충을 해야한다고 정육점에 들러 일주일에 한두번은 늘 소고기가 밥상에 자주 올라왔다. 돼지고기는 지방이 많고 영양보충에 좋지 않다고 밥상에 잘 올라오지 않았다. 그리하여 나는 소고기보다 돼지고기가 더 비싼 것이라고 오해하게 되었다. 



성인이 되어 친구들과 저녁을 먹으러 가던 날이 생각난다. 

'우리 뭐 먹을래? 삼겹살?' 

'아냐, 소고기 먹자 소고기.'


대학생의 변변찮은 지갑에 어울리지 않는 소고기라니. 다들 깜짝 놀라 했지만 나의 강력한 주장에 소고기집에 들어서게 되었다. 정말 깜짝 놀랐다. 소고기가 이렇게 비싼지 몰랐기 때문이다. 


소고기 사건(?) 이후로 엄마가 주었던 모든 음식을 생각해보게 되었다. 



고등학생 때 엄마는 영양제를 챙겨주고 싶어 7시30분에 기숙사로 오셨다. 등교하기 직전 엄마를 만나 서리태콩물이나 영양제를 먹고 등교했다. 기숙사에서 살던 기간 동안 엄마는 한번도 빠짐 없이 7시 30분만 되면 기숙사 문앞에 서 있었다.

 

대학생이 되고 본가에서 따로 살게 되었을 때 엄마는 밥 걱정부터 했다. 원룸의 조그마한 주방을 보고는 혀를 끌끌 찼다. 여기서 어떻게 밥을 해먹느냐며 아침을 잘 챙겨먹지 못할까봐 매주 일요일마다 일주일치 밥을 해서 자취방에 오셨다.


아침을 잘 먹지 못하는 나에게 쉐이크라도 먹어야한다고 7개의 물병을 들고 오던 날이 기억난다. 엄마는 손수 고구마 껍질을 벗기고 우유에 갈아 만든 쉐이크 7개를 500ml 물병에 담아 얼려서 왔다. 난 그 쉐이크를 하루에 하나씩 꺼내먹었다. 그 다음주에도, 그 다다음주에도. 고구마만 먹으면 질릴까봐 과일을 갈아봤다면서 '딸기', '바나나', '고구마'가 적힌 물병을 내밀었다.



마음이 찌르르해져왔다. 엄마가 주었던 모든 음식들은 나를 걱정하는 마음이 담겨 있었던 것이다. 




저녁이 되면 서울의 수많은 아파트들에 불이 켜진다. 그곳의 부엌에는 누군가의 엄마들이 가족을 위해 부엌에 서 있다. 


이제 나도 그때의 엄마의 나이에 가까워졌지만 엄마 손맛은 조금도 따라가지 못했다. 문득 엄마가 그리워지면 먼저 생각나는 건 엄마가 해주셨던 밥이다. 엄마가 해주셨던 잔치국수, 엄마가 만들었던 청국장, 흉내내지 도 못하는 찰진 볶음밥.


이제는 뿔뿔히 흩어져 사는 가족이 그리워지면 아빠가 퇴근하고나서 다 같이 모여 앉아 먹었던 베스킨라빈스 가 그리워진다. 지금은 늘어난 편의점 개수만큼 2+1이 흔해졌지만 우리가 어렸을 때는 1+1이 대세였다. 엄마가 마트에서 1+1 아이스크림을 사오시면 아이스크림 두 개를 두고 세 명의 눈치 작전이 시작 되었다. 아빠는 한 명이 슬퍼하는 모습을 지켜보다 어느 샌가 퇴근길에 베스킨라빈스에서 아이스크림을 사 오셨다. 우리에게 네가지 맛이 골고루 들어있는 베스킨라빈스는 공평하게 먹을 수 있는 아이스크림이었다.



'밥은 먹고 다니지?' '밥 먹었어요?' 라며 집 떠나 타향살이를 하는 우리들에게 인사 대신 '밥' 먹었냐고 묻는 질문들에는 엄마 대신 내 끼니를 걱정하는 마음이 서려있다. 이제는 한 끼, 한 끼를 해 먹는 게 스스로 책임지고 해내야 할 과제처럼 느껴진다. 바쁘게 살다보면 급하게 끼니를 때우거나 인스턴트 음식을 먹을 때가 많다. 문득 엄마밥이 그리워지는 날, 나는 오늘도 엄마 손맛을 흉내 낼 수 있다고 떠들어대는 수많은 밥집 거리를 헤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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