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스로를 사랑할 수 있다는 건 무엇보다 중요한 일이다. 졸린 눈을 비비는 5교시, 나는 가끔 아이들에게 질문을 한다.
"현경아, 지은이의 장점은 뭘까?"
"지은이는 옷을 예쁘게 잘 입어요. 머리핀도 색깔별로 있어서 예뻐요."
"지은아, 세진이의 장점은 뭘까?"
"세진이는 축구를 잘해요. 공을 뻥차면 저기 멀리까지 날아가요."
한바탕 칭찬 릴레이가 끝나면 아이들은 어느새 기분 좋은 웃음을 짓는다.
아! 어른이 되면 왜 이런 칭찬을 들어보지 못하는 걸까? 남들보다 못하다는 생각이 들었었는데. 누군가 내 장점을 얘기한 적이 언제였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너무도 유명해서 청소년 필독서로 선정되었으며 두 차례나 영화로 각색된 '위대한 개츠비'를 아시나요? 유명하다는 위대한 개츠비의 말년은 어떠했나요?
'허망하다.'
개츠비가 허망하게 죽음을 맞는 모습에서 왠지 모를 씁쓸함을 느꼈다. 위대한 개츠비는 1920년대 미국을 배경으로 하는데, 이 시대는 'The roaring 20's'로 불리며 경기호황 속 만연한 물질만능주의가 팽배한 시대이다. 부동산과 주식으로 한순간에 부자가 된 사람들이 유럽의 문화를 동경하며 대저택을 짓고 사치와 향락을 즐긴다. 그리고 부자가 된 사람을 동경하는 개츠비 같은 서민들이 기를 쓰고 돈을 번다.
어디서 많이 본 모습같지 않는가?
그 모습은 불과 2~3년 전 코로나로 부동산과 주식이 고공행진을 했던 때를 떠오르게 한다. 사람들은 너도나도 투자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고 부동산, 주식, 코인을 하지 않으면 바보라는 소리를 들었다. 오늘날까지도 1920년대의 역사가 반복되고 있고 우리는 여전히 물질만능주의 시대에 살고 있다.
부자는 남보다 돈이 많은 사람을 뜻한다. 남보다 돈이 많다는 것은 어떻게 알 수 있는가? 비교를 통해 알 수 있다. 우리는 나보다 돈이 많은 사람을 비교하면서 부러워한다. 거기에 SNS의 발달로 누가 부자인지 쉽게 알 수 있게 되었다. 지구 반대편의 부자가 요트를 타고 골프를 치는 모습이 실시간으로 뜬다. 친구가 돈을 얼마나 많이 쓰면서 휴가를 보냈는지 알게 된다.
우리는 쉽고 빠르게 SNS에 접속한다. 클릭 한 번으로 전 세계 사람들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있는 세상이 왔다. 바야흐로 '초연결시대'에 살고 있는 것이다.
요새 알고리즘에 월 1000만 원, 월 1억 벌었다는 영상이 계속 뜬다. 저 사람은 어떻게 해서 돈을 번 거지 궁금해서 들어가 보게 되면 좋은 집, 멋진 차, 비싼 옷과 음식들이 줄지어 나온다. 쉽고 빠르게 무력감을 느낀다. 내 처지와 비교되기 시작하면서 기분이 나빠진다. 버겁다.
비교가 쉬운 사회에서의 해답은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고 말하는 것.
완벽주의 어른에게 필요한 것은 비교가 아니라 '괜찮아, 그럴수도 있지.'라며 스스로에게 말해주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