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격으로 혼미해진 정신을 붙잡고 밥을 푸는데 나는 금방 밥솥 내솥의 코팅이 다 벗겨진 이유를 알았다.
예를 들면 돈가스 접시에 똥그란 반타원형 밥모양을 만들기 위해 스텐재질의 아이스크림 스쿱을 이용해 내솥의 밥을 박박 긁었던 것이었다.
사장은 이 밥솥을 사용한지 7년이 넘었다고 했었다.
그동안 나 포함 얼마나 많은 손님들이 중금속을 먹은거야?
아찔해진 순간이었다.
"아유, 압력밥솥은 이렇게 사용하는 게 아닌데...
내솥의 코팅이 손상되지 않게 조심히 다루어야 돼요!"
밥솥 1의 밥이 얼마 남지 않았을 때 밥솥 2에 쌀을 안치기 위해 내솥에 쌀을 씻는 내 선임에게 답답해서 내가 말했다.
"집에서는 쌀을 다른데 씻어서 내솥에 옮겨 담아요.
코팅이 벗겨지지 않도록 정말 조심하거든요.
코팅이 조금이라도 벗겨지면 신경계에 손상이 될 중금속이 나오니까......"
주부경력 25년 차인 내가 아는 지식을 주절주절 늘어놓자 내선임 청소년은 그런 거는 아랑곳없다는 듯이 묵묵히 쌀을 계속 씻었다. 그리고 내 이야기를 주방에서 듣고 있던 사장이 불만이라는 듯
"쳇! 그런 게 어디 있노? 아무 데나 씻으면 되지!"
하며 내 옆을 획 스쳐 지나갔다.
그 반응이 어처구니없고 황당했지만 그때가지는 나의 이 지적이 해고를 통보할 만큼 사장의 역린을 건드린 건 줄 몰랐다.
사장과 청소년알바생 둘 다 어리고 세상에 대한 경험이 없어 이 부분에 무지한걸로만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내가 아는 한, 삶의 지혜를 나누어 주고 싶었으나 결과적으로는 그들이 듣고 싶어 하지도 않는 잔소리를 해댄 것이었다.
알바 둘째 날, 그러니깐 시작해서 1시간이 좀 지났을 때 사장이 청소년알바생을 주방으로 부르더니 나는 들리지 않을 정도의 작은 목소리로 속닥거렸다.
대화를 끝내고 나온 청소년알바생의 태도가 돌변한 건 이때부터였다.
좀 비켜주세요 하며 나를 한쪽구석으로 몰아세운다거나,
제가 할게요 하며 내가 해야 할 일을 가로채거나,
내가 하는 말을 못 들은 척 무시하거나 묻는 질문에 신경질적인 태도로 일관했다.
처음에는 이게 무슨 일인가 싶었지만 첫날 얘기한, 일 못하는 사람은 사람취급 안 한다는 그거로구나 하는 생각이 번쩍 들었다.
청소년알바생은 내게 화풀이를 하는 것처럼 보였다.
기껏 가르쳐 놨더니 짤리고, 또 새로운 알바생을 사장이 뽑고, 일 못해서 또는 사장과 코드가 맞지 않아서 짤리고......
한 두 번 겪는 일도 아니란 듯이 무표정한 얼굴로 전 알바생의 해고 수순을 그대로 밟고 있는 것 같았다.
한바탕 정신없이 바쁜 시간이 지나자 잠시 후 주방에서 사장이 나와서 내게
"그만 퇴근하시죠"
하고 말했다.
"네? 아직 6시밖에 안 되었는데요. 그럼 내일 다시 올까요?"
"아니요. 내일부터는 나올 필요 없습니다.
우리하고는 맞지가 않는 것 같습니다.
일처리도 너무 못하고..."
난 어이가 없어 말이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얼마나 했다고 일을 잘하는지 아닌지 판단하는 건가?
이제 겨우 만 4시간 했구먼...
"몇 시간 만에 일을 다 배우는 사람이 있나요?"
내가 따지듯 물었다.
그러자 사장은
"포스 기를 다 익히든 포장을 다 익히든 둘 중 하나는 하죠.
둘 다 안되잖아요!"
옆에서 청소년 알바생이
"어제 사진도 다 찍어가더니 메인메뉴 토핑하나 제대로 못 외울 거 뭐 하러 찍어갔어요?"
하며 사장을 거든다.
기가 찼다
내가 하루 만에 해고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