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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화 속도가 아닌 방향(완결)

by 에이프럴

불편한 마음을 안고 가게문을 나서니 눈물이 왈칵 쏟아질 거 같았다.

서둘러 남편에게 전화를 했다.

"나 잘렸어! 사장이 나보고 그만 퇴근하라네."

"너무 속상해하지 마. 내가 있잖아!"

남편의 그 말 한마디에 서러움이 다 녹아내리는 듯했다.


나는 국수집 사장이 나를 해고한 이유를 정확하게 알지 못한다.

다만 집에 돌아와서 가족들에게 있었던 일들을 타임라인순으로 얘기했을 때,


"젊은 사람은 젊은 사람끼리 일해야 된다."

"엄마가 을인데 나이가 많답시고 사장에게 훈계했으니 사장입장에서는 얼마나 아니꼽겠노?

나이는 어리지만 그래도 사장은 사장인데..."

"엄마 같은 사람이 꼰대다."

"그 사장은 밥솥 코팅이 어떻든 간에 빨리 만들어 많이 팔고 수익만 내면 된다."

하는 피드백이 돌아왔다.


가족들이 한 말들을 곰곰이 생각해 본 결과, 결론은 그 국수집 사장은 방향은 아무래도 좋고 속도만 내면 된다는 것이었다.


그러고 보니 맛도 예전 같지가 않다.

쌀국수는 풍미를 더해주는 얇게 슬라이스 한 양파가 들어가야 쌀국수 특유의 느끼함을 잡아주는데 어느 순간부터 들어있지 않았었다.

그때는 실수였거니 넘겨었는데 지나고 보니 이 사장이 가게를 인수한 이후로 매번 빠졌었다.

배달주문 요청란에 김치를 넉넉하게 달라고 했을 때도 묵살했었던 기억도 난다.


나는 이 가게에 진심이었다.

내 사업인 것처럼 손님들을 대하고, 내 집처럼 가게를 청소하고, 물품 하나하나 내 살림처럼 아낄 계획이었다.

일도 조금 더 시간을 주면 그 누구보다도 잘할 자신이 있었다.

장기적으로 보면 장사도 결국 사람이 재산인 건데 어린 사장의 아집이 안타까울 뿐이다.


속도가 중요한 사장은 단기적으로 성공할 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알바생의 잦은 교체와 부실한 식재료는 언젠가 손님들도 눈치채게 될 것이다.

단골손님을 얻는 데는 오래 걸리지만

잃는 것은 한순간이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일주일에 몇 번 새벽에 출근하는 남편을 위해 도시락을 준비할 때가 있다.

국수집에서 해고된 이날 밤에도 남편의 도시락을 쌌다.

시간에 쫓기지 않고 식재료 하나하나 씻고 다듬고 썰고 굽다 보니 나도 모르게 저절로 콧노래가 흘러나왔다.


나는 전업주부가 천직인 것 같다.

결혼기간 내내 외벌이를 하는 남편에게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고 싶어 아르바이트를 알아본 건데

역시 두 마리 토끼를 잡는 건 불가능했다.

이틀, 겨우 몇 시간 일했는데도 설거지거리며 밀린 빨래 등 집안일은 산더미처럼 쌓였다.

녹초가 되어 퇴근하는 남편을 반겨줄 에너지도 없었다.


속도만 내는 일은 나한테 맞지 않다.

나는 조금 느려도 방향이 더 중요한 사람이다.

국수집은 나와 결이 맞지 않은 거였다.


앞으로도 나와 결이 맞는 곳이 있다면 일해볼 생각은 있지만, 우선 가족들의 안락한 베이스캠프 만들기에 더 치중할 것이다.

고된 업무로 지친 가족들이 편안하게 쉴 수 있는 공간이 되도록......

잘 먹고 푹 쉬어 다시 세상에 나갈 수 있는 힘을 얻는 보금자리가 되도록...

이 보다 더 소중하고 가치 있는 일이 또 어디에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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