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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보가 바보를 만나

동전 터널의 진실

by 김태호
하늘과 길.jpeg

고속도로를 달립니다.

옆자리의 아내는 컨디션 좋은 새처럼

쉴 새 없이 조잘거립니다.

저는 그 말을 다 이해할 능력은 없습니다.

그저

"응. 그렇구나, 대단하다."

"그래서 어떻게 됐는데?"

하며 아내의 지저귐이 끊이지 않기를

바랄 뿐입니다.

한참을 조잘대던 아내가 갑자기

"오빠! 저기 동전터널이야.

동전을 준비해야 해!" 합니다.

"응. 그렇구나. 우리 차는 소형이니까

육백 원이겠지?"

하며 저와 아내는 동전을 찾기 위해

수납함을 열기도 하고

양쪽 주머니 깊이 손을 찔러보기도 합니다.

그런데 동전터널을 지나도록

동전을 받는 게이트가 나오지 않습니다.

어찌 된 일인가 고민하던 찰나

동전터널은 통행료를 받는 곳이 아니라

터널의 이름이 동전터널일 뿐임을 알게 됩니다.

그리고 우리 부부는 한바탕 신나게 웃습니다.

서로 바보라고 놀리면서 말이지요.


아내는 저의 허풍이나 농담을 진지하게 받아

난감한 상황을 자주 연출합니다.


새 차를 산 지 얼마 되지 않은 날이었습니다.

동료들이 만우절이니

아내를 놀려 주자고 제안했습니다.

각자 아내에게 전화를 걸어

큰 사고를 쳤다고 거짓말하자는 것이었습니다.

첫 번째 친구는 직장을 그만두겠다고 얘기를 했고

그 친구의 아내는 소리를 지르며 난리를 쳤습니다.

또 다른 친구는 혼자 해외여행을 가기 위해

방금 항공권을 구입했다고 허풍을 떨었습니다.

마찬가지로 그의 아내도 제정신이냐며

영원히 돌아오지 말라고 고함쳤습니다.

제 차례가 되어 새로 산 차를 또 바꾸기 위해

그것도 외제차 전시장에서 견적을 보고 있다는

거짓말을 했습니다.

"그래 알았어."

아내가 이렇게 답합니다.

함께 있던 동료들이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며

그다음 말을 기다립니다.

'이혼하고 차랑 살아라'라든지

'이제 하다 하다 별 짓을 다 하는구나'와 같은

정상적인(?) 반응을 기대하는 눈치였습니다.


그런데 아내는 말이 없습니다.

그래서 제가 "지금 내 말을 믿어?" 했더니

"그럼 안 믿어?" 합니다.


집에 돌아와 낮에 전화에 대해

다시 물으니 아내는

"오빠가 빚내서 차 사면 결국 오빠만 힘든 거지."

"그걸 아는 사람이니까

무슨 이유가 있겠지라고 생각했어."

라고 답합니다.

아내는 바보처럼

저의 바보 같은 말을 믿어 주었습니다.


바보라도 괜찮아요.

우리는 서로의 말을 바보같이 믿으니까요.

콩으로 팥죽을 끓인다고 해도 믿고 보는

우리는 정말 바보 같은 부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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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와 이십 년 가까운 세월을 보내며 아내 사용 설명서를 가슴속에 만들어 가고 있다. 오해와 선입견으로 지우고 다시 쓰는 일을 반복해 너덜너덜해진 설명서를 조금씩 완성해 간다.

-새피엔딩(사람 사용 설명서)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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