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장모님에게 아들이 될 수 있을까요?

눈물 젖은 칼국수

by 김태호


KakaoTalk_Photo_2024-11-22-19-49-09 003.jpeg

처가에서는 결혼을 반대했습니다.

가진 건 빚밖에 없는 취업 준비생에게는

당연한 처분이었다고 여깁니다.

장인 장모를 미워하거나 원망할 일도 아니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사실 섭섭함이

아주 없었다면 그 또한 거짓말이겠지요.

우리 아버지가 못났다고 나까지 못나지 않았다는

오기도 들었고 지금 집안이 어렵다고 평생

어렵겠냐라는 오만도 품었습니다.


결혼 후 장모님과 저는

결혼 전 일에 대해서는

단 한 번 얘기를 나눈 적 없습니다.


어느 날부터인가 장모님은

제가 밥 한 그릇 비우면 꼭 그만큼

다시 채우십니다.


제가 좋아하는 두부 부침은

언제나 한가득 쌓아 놓으시고요.


장모님 손맛은 다 좋지만 특기는 손칼국수입니다.

곱고 빵빵한 밀가루 반죽을 굵은 방망이로 넓게 피고

숭덩숭덩 썬 후, 멸치 다신 물에

채 썬 애호박과 함께 푹 끓이면 세상 하나뿐인

장모님 표 손칼국수가 완성입니다.


커다란 우동 그릇에 잔뜩 담아

쏭쏭 쓸린 잔 파, 양파,

봄날에는 쫑쫑 쓸린 냉이가 뻑뻑하게 들어간

간장 양념 한 스푼을 넣어 저은 후

후후 불어 입에 밀어 넣습니다.


그 맛이 과연 일품이라

한 그릇 순식간에 비워냅니다.

그럼 장모님은 묻지도 않으시고

또 그만큼을 퍼서 제 그릇에 담아 주십니다.


눌러 담은 그 밥이 장모님의 화해 방법이자

사랑임을 깨닫게 된 어느 날,

뜨거운 국수를 먹다가 갑자기 눈물이 나서는

두 번째 부어진 허언 칼국수를

다 밀어 넣기까지 그릇에 코를 박고 있어야 했지요.


미련한 사위는 장모님이 어깨 팔 아프도록 반죽 밀고

아파트 청소하며 받은 돈으로 담은

김장 김치 해마다 받아먹으면서도

그것이 자식 사랑인 줄도 모르고 그 자식에

자신이 포함된 줄은 더 모르고 있었던 거지요.


어찌할 바를 몰라 머리도 들 수 없는 제게

장모님께서 또 한 번

"여 좀 남은 거 마저 먹지?" 하십니다.

긴 대답을 할 수 없어 세 번째 그릇을

그저 공손히 맞이하였습니다.


며칠 후 장모님 생신 때

난생처음 사랑한다 메시지를 보냈습니다.

예쁜 딸 낳아 주셔서 감사하다는 말과 함께요.


장모님께서는

'그래 고맙다.' 하셨고요.


저는 그만 칼국수 먹을 때 참았던 눈물을

왈칵 쏟아 버렸습니다.

'그래'와 '고맙다' 사이에 '아들'이라는 글이

어머니의 마음에 맺힌 듯해

소리 내어 울었습니다.

KakaoTalk_Photo_2024-11-22-19-49-09 002.jpeg

아는 만큼 믿음이 생긴다. 안다는 건 그만큼 노력했다는 의미다. 노력 없는 사랑은 오래가지 않는다. 불이 타오르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바람을 넣어야 하듯 사랑도 노력 없이는 금세 시들기에 잠시도 방심하거나 안심할 수 없다. 사랑이 식었다는 건 노력이 사라졌다는 말과 같다. 노력이 사라지면 서로에 대한 관심은 물론 소망조차 사라진다.

-새피엔딩(사람 사용 설명서) 중에서.


#장모님 #사위 #아들 #칼국수 #눈물 #새피엔딩

keyword
월, 금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