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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르면 말을 말자

침묵의 언어

by 김태호
하늘과 새.jpeg

아내와 사귄 건

제 나이 스물일곱 되던 무렵이었어요.

스물아홉에 결혼했으니 삼 년을 채워

연애를 한 셈이네요.

그리고 우리는 삼 년 동안 아내의 말을 빌리자면

정말 피 터지게(?) 싸웠습니다.

한 삼일 좋다가 이틀 싸우고, 나흘 좋다가

삼일 헤어지는 등 삼한 사온이 일기가 된 듯

사랑과 전쟁의 연속이었지요.

오빠 동생으로 지낼 때는 그렇게 다정할 수 없었는데

연애를 하면서 왜 서로에게 상처를 주지 못해

안달이었는지 지금 생각하면 우습기만 합니다.

심지어 다툼의 연유 하나 떠오르지 않으니

말 그대로 우리는 부부가 되어서 베어야 할 물을

결혼도 하기 전에 수백 번 갈랐던 것입니다.

사실 물 베기에서 지거나 애가 타들어가는

쪽은 늘 저였습니다.

다툼의 끝에는 항상 아내의 가장 큰 무기인

침묵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전화를 걸면 받기는 하나 답은 하지 않습니다.

어찌어찌 이끌어 낸 답으로 만남을 이어가도

아내는 같은 공간에서 아무런 말이 없었습니다.

마주한 공간에서 아무 말도 없는 아내에게

저는 이런저런 말로 화를 풀어 본다는 것이

더 큰 말실수로 냉전의 시간이 연장된 경우도

많았습니다.

"우리 더 이상은 힘들 것 같아 그냥 헤어지자."

그러던 어느 날 저는 인내의 임계점을 만났습니다.

더 이상은 안 될 것 같았어요.

어떻게 삼 년 가까이 사귄 사람과 작은 다툼 끝에

일주일이나 말 한마디 하지 않을 수 있습니까?

이런 형태로 어떻게 평생을

부부로 살아갈 수 있을까요?

그동안 참을 만큼 참았다고 생각한 저는

사즉생의 각오로 아내에게 메시지를 보냈습니다.

"오빠, 그건 아닌 것 같아."

제 예측과 달리 아내는 곧바로 답을

주었습니다. 저는 정말이지 하늘을 날 것처럼

기뻤어요. 죽기를 각오한 결단에 효과가 있었는지

그 메시지를 주고받은 이후 다툼과 침묵의 시간이

조금은 줄어들었습니다.

결혼 후 우리의 신혼은 달콤했어요.

주말부부를 한 탓인지

결혼 전 싸울 만큼 싸워서인지 신혼부터 지금까지

다툼의 횟수가 연애시절의 그것보다 훨씬

적습니다.

그리고 이제 아주 가끔 토라질만한 일이 생겨도

아내는 침묵하지 않아요. 침묵하더라도

그 시간이 매우 짧아졌지요.

연애시절 침묵은 서로를 모르기에 나타난

아내의 방어기제였습니다.

그리고 제 입장에서는 저의 부족을 돌아보게 되는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둘 다 인생에 서툴렀던 거지요.

서로의 껍데기만 보고 다 안다고 착각한 탓이에요.

어떤 말이 상처가 되고 아픔이 되는지

어떤 표현이 용서가 되고 치유가 되는지

그때는 꿈에도 몰랐던 거예요.

이제 우리는 진정한 침묵의 언어를 구사합니다.

말하지 않아도 알아요.

눈동자 속을 읽을 만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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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꿉놀이처럼 살면 나쁜 말도, 싸울 일도 없고 날마다 순간마다 참 다정다감하겠다. 좀 유치하고 철없어 보여도, 가끔 그 머리 어느 미용실에서 했냐고 이해 못 한 표정으로 이해 안 할 질문을 받아도, 소꿉놀이하듯 살면 참 행복하겠다. 의도치 않게 짧아진 앞머리를 보면서도 웃을 수 있는 유치함이 참 감사하다.

-새피엔딩(소꿉놀이처럼 살아간다면)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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