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쁨의 언어
초등학교 5학년 즈음입니다.
한 집에 살던 사촌이 차로 10분 거리의
윗동네로 이사를 갔어요.
저는 사촌 동생이 보고 싶어
주말이면 자전거 패달을 밟았습니다.
그곳에서 친 형제와 다름없는 동생과
딱지를 치거나 구슬을 굴립니다.
냇가에서 고기도 잡고 불에 그을린
고구마도 먹었어요.
어느날,
동생이 조금 붉은 볼빛으로
제게 비밀을 들려주었습니다.
"행님아~ 우리 앞집에 새로 이사 왔는데
딸이 셋이더라.
그런데 그중에 한 명이 제일 예쁜데
그 예쁜 애는 밖에 잘 안 나온다.
계속 방에서 피아노만 친다."
"어! 그래? 그라믄 한 번 보러 가보자!"
쭈뼛거리는 동생의 등을 떠밀며
앞집으로 향한 우리는
담벼락에 몸을 기댔습니다.
담벼락 위로 눈만 빼꼼한 채로
마당을 살펴보니
두 여자아이가 나무에 묶인 검은 고무줄 위를
뛰놉니다.
"저 둘 중에 있나?"
"아니 쟤들 아니고 더 예쁜 애가 한 명 더 있다."
우리는 그 예쁜 애를 보기 위해
쪼그려 앉아 한참을 기다렸지만
결국 그 아이는 볼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리 실망할 필요는 없었습니다.
그 예쁘다는 아이는
시골에 하나밖에 없는 초등학교에
전학을 왔고 그 아이를 학교에서도
교회에서도 볼 수 있었으니까요.
20년 후,
그 예쁜 아이는 저의 아내가 되었습니다.
아내는 그때도 예뻤고 오늘도 예쁘며
계속 예쁠 것 같습니다.
적어도 제 눈에는 그렇습니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는 어느 시인의 말처럼
가까이서 보니 그렇습니다.
그때나 지금이나 마음이 그렇게 말합니다.
상황이 정리된 후 몸에 묻은 머리카락을 샤워기로 씻어 내는데 갑자기 '풋' 하며 실없는 웃음이 새 나왔다. 꼭 이런 모습이 어린 시절 엄마, 아빠 역할을 정해 놀던 소꿉놀이 같다는 생각을 한 탓이다. 머리 스타일도 우리의 삶도 소꿉놀이 그 모습 그 순수와 닮았다.
눈을 감은 채 떨어지는 물줄기를 따스한 비처럼 맞으며 생각했다. 소꿉놀이할 때 엄마, 아빠는 참 다정했다. 큰 소리를 내는 일도 싸우는 일도 없었다. 그저 백이면 백 서로를 위로하고 격려하는 대사가 다수였다. "여봉, 식사하세용!", "여봉, 회사 잘 다녀오세용~", "여봉, 오늘 아주 힘드셨죵?" 하는 애정이 듬뿍 담긴 말들만 오갔다. 쌓아둔 감정의 찌꺼기도 없고 쓸데없는 자존심도 세우지 않았다.
-새피엔딩(소꿉놀이처럼 살아간다면) 중에서.
#예쁜 아이 #피아노 #아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