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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 듣고 말해도 늦지 않아요

귀를 열면 사랑이 들린다

by 김태호

말을 잘라먹는 사람이 있습니다. 대화가 끝나기도 전에 끼어들어 자기 말만 하는 사람 말입니다. 그와의 만남은 불편합니다. 앞에서는 쫓기는 느낌이고 헤어지면 찝찝해요. 상대의 말을 누르고 신나게 떠드는 사람을 직장은 물론 교회, 학교, 운동시설 등에서 어렵지 않게 만납니다. 대부분 자기 말은 유난히 길어요. 핵심 없이 빙빙 돌리거나 장황한 예화를 들다가 정작 결론을 내지 못하기도 하지요. 그렇게 일장연설을 듣고 나면 마치 말로 맞은 듯 멍해집니다.


반대로 가끔, 아주 가끔 '잘 듣는 사람'을 만납니다. 우리는 듣는 행위를 '들어준다'라고 하지요. 잘라먹어 자신의 배만 불리는 사람과 달리 들음은 시간과 정성과 이해와 배려가 필요합니다. 들어주는 사람은 상대의 마음 깊이 들어갑니다. 자신을 내어주고 서로의 마음을 확인할 때 공감이 일어납니다. 끝까지 경청하는 곳에서 위로와 치유가 시작됩니다. 선생님께 실컷 떠든 후 '상담을 잘 받았다'라고 울며 감사를 전하는 이유입니다.


사실은 저도 상대의 말을 자주 끊는 습관이 있었습니다. 많은 사람 속에서도 늘 공허했지요. 모임을 잘 이끈다고 여겼지만 깊은 곳에서의 인정과 존경은 받지 못했음을 오랜 시간이 지나 알았습니다. 그러나 아직 부족하기에 아내와 딸의 언어에 성급한 기준을 들이밀 때가 많습니다. 그때마다 '아차' 하며 다시 마음을 다잡아요.


'아내의 말을 잘 들어주자.'

'딸의 언어를 끝까지 듣자.'


아무리 여리고 어려도 그 속에는 그들의 세상이 있습니다. 그들의 세상까지 닿으려면 속단하지 말고 그들의 언어를 끝까지 들어야 합니다. 어리고 여리기에 서툴고, 서툴기에 더 오래 참아야 하지요. 반려동물의 몸짓을 이해하면 관계가 쉬워집니다. 가만히 귀를 기울이면 나무와 풀의 음성도 들려요. 상수리나무의 잎은 바람을 말하고, 겨울 가지는 생명의 비밀을 속삭이니까요. 천천히 그리고 오래 기다릴 수 있다면 말이지요. 가족의 언어도 마찬가지입니다. 익숙하다고 다 아는 게 아니고 낳고 길렀다고 내 생각과 같은 게 아닙니다.


입은 귀보다 크고 근육은 발달되어 말하기는 참 쉽고 편합니다. 뭔가 큰 소리를 내어야 이긴 것처럼 느껴지기도 해요. 그러나 가족의 행복과 사랑을 위해서는 먼저 굳은 귓문을 부드럽게 풀어야 합니다. 아내의 우렁찬 고함과 잔소리도 새소리로 들릴만큼 보들보들한 귀를 가져야 해요. 아이의 '어쩔티비!', '병맛!', '엄빠!' 하는 말도 가볍게 소화시킬 수 있는 유연하고 폭신한 귀를 만들어야 합니다. 귓문은 마음으로 통하는 작지만 큰 문입니다. 입이나 혀보다 귀가 부드럽고 튼실할 때 지위를 떠나 사람과 사람의 대화, 인격과 인격의 만남이 이루어집니다.


들어주는 사람이 줄어드는 세상에서 아내와 아이들이 '그래도 내 말을 들어주는 사람은 있다.'는 믿음을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행복은 물론 슬픔까지도 함께 나눌 수 있는 가족의 언어가 이어지기를 바랍니다. 들어준 마음이 가볍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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