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도 빙글빙글 회전할 때가 있습니다.
포르투갈은 회전교차로가 참 많았습니다. (대한민국 보다 유럽에 훨씬 많은 것 같아요.) 그냥 회전교차로도 헷갈리는데 회전교차로가 두 개 연이어 있는 경우도 많더라고요. 고속도로에 진입하거나 빠져나오려 들면 360도는 아주 양반이고, 540도 정도는 되어야 우리가 고속도로를 타는구나 체감할 정도였습니다.
뒷자리에 앉은 제가 무어라 무어라 떠들고 있었는데요. 운전 중이던 지노그림 작가님께서 540도 교차로를 마주하게 된 거예요.
“정신없으니까 말 시키지 말아요.”
해외에서 사용하는 익숙하지 않은 내비게이션, 거기다 익숙하지 않은 초행길, 날씨까지 비가 와서 참 어려운 운전이었거든요.
지노그림 작가님도, 조수석에 타고 있는 지금사진 작가님도 온 신경을 운전과 길에 집중한 채로 목적지를 향해 달려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니 길을 잘못 들까 노심초사하며 운전하는 사람 속도 모르고 뒷좌석에서 막 떠드는 제가 얼마나 얄미웠겠어요.ㅎㅎ 그 뒤로 고속도로를 빠져나와 어려운 도심의 길이 끝날 때까지 차 안은 조용했습니다.ㅎㅎ
내가 언제 이 어지러운 540도 교차로를 또 경험해 보겠어?라고 생각했는데, 인생도 빙글빙글 회전할 때가 있더라고요. 매번 그런 건 아니지만 인생이 내 계획대로 흘러가는 경우가 많지 않죠.
아주 잘 짜인 설계도를 가지고 있어도 신은 가끔 우리가 얄미운지 뒤통수를 세게 치거든요. 예상치 못한 변수가 쓰나미처럼 몰려오면 그동안 노력했던 것들이 물거품이 되어 사라지고 맙니다. 시련이 몰아칠수록 두려움은 배가 되어 용기를 잠식시켜 버리고요. 이럴 땐 안개가 잔뜩 낀 것처럼 한 치 앞도 보이지 않습니다.
지금껏 내가 만들어 놓았던 모든 것들이(그것이 작든 크든 간에) 한 순간에 와르르 무너져 버리면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더라고요. 기약 없이 주저앉아 손을 짚고 일어날 힘조차 없게 되고요.
친한 친구의 위로도, 가벼운 농담에도 웃음이 나지 않는 날들의 연속이었죠. 불안감과 상실감은 극대화되고, 긍정과 성취감은 전혀 찾아볼 수 없는 순간… 누군가 강제로라도 일으켜 세워 주면 좋겠다고 바라던 시간들…
문득 그 어둡고 춥고 진했던, 절대 끝나지 않을 것 같아 더 절망스러웠던 순간들이 스치고 지나갔습니다. 혹시 지금 그런 시간들을 지나고 있는 누군가가 있을 수도 있겠죠. 이미 지나온 사람도 있고, 앞으로 또다시 그 시간을 다시 보낼 수도 있고요. 인생에서 시련이 한 번만 온다는 확신은 없으니까요. 물론 안 오면 제일 좋겠지만.
하지만 그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시간들도 결국 끝이 나긴 하더라고요. 물론 끝을 한참 지나와서야 이제 끝났구나라고 안도의 한숨을 쉴 수 있을 만큼 지독히도 길었지만요.
540도의 회전교차로가 끝나면 쭉 뻗는 직선도로가 나오듯이, 어두운 순간이 지나면 또 언제 그랬냐는 듯 웃고 떠들고 내가 가장 잘하는 일을 찾아 할 수 있는 날들이 다가올 거예요.
인도영화, 런치박스에 보면 이런 대사가 나오잖아요. 때로는 잘못 탄 기차가 목적지에 데려다준다는. 넘어지고 주저앉고 좀 실패하면 어때요? 그 실패의 순간들이 모여 나를 목적지에 데려다줄 수도 있잖아요.
누군가가 알려준 이정표를 따라 사는 삶이 얼마나 지루해요? 세상이 만들어 놓은 잣대에 주눅 들지 말았으면 해요. 적어도 지금 이 글을 보는 우리 만큼은요. 이리저리 고민하고 아파하고 주저앉아 보면서 나만의 이정표를 만들어 사는 삶이 훨씬 아름답지 않을까요?
그렇게 살다 보면 나만의 이정표도 생기고, 비 온 뒤 갠 날씨처럼 나를 빛나게 해주는 무지개도 생길 테고, 내 주변을 환하게 함께 비추는 빛도 생길 거예요. 언제 그렇게 힘들었냐는 듯이, 마치 내가 거짓말을 한 것처럼 말이죠.
그러니 지금 빙글빙글 도느라 어지러운 삶을 살고 있다면 그 어지러움조차 즐겨보면 어떨까요? 그 끝에 뭐가 있는지 우린 이미 잘 알고 있으니까요.
저도 다음번엔 조용히 하지 않고 운전자를 더 괴롭혀 봐야겠습니다. 길 좀 잘못 들면 어때요. 좀 돌아가고 늦게 가는 거죠, 뭐. ㅎㅎㅎ
Photographer 지금사진
Painter 지노그림
Writer 지마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