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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로운 강아지

by 하난

얼마 전, 갑작스러운 연락을 받았다. 동아리 친구로부터의 연락이었는데, 처음은 가벼웠다. 유기견 보호소 봉사 동아리 친구인만큼 그녀는 강아지를 좋아했는데 특히 우리 강아지, 하난이를 아꼈다. 인스타에 하난이 사진을 올리자 귀엽다며 칭찬하는 류의 디엠이 온 게 시초였다.

하난이 사진을 올릴 때면 종종 그런 류의 디엠을 보냈기에 이번에도 그런 줄 알고 슬며시 웃으며 가벼운 답신을 보냈다.


그리고 이어진 말은, 내겐 꽤 놀라운 것이었다.


그녀는 내 글에 대해 말했다. 글을 참 잘 쓰더라, 보면서 울었다, 미사여구가 많지 않은 진솔한 글이다 류의 말이었다. 이 친구가 내 글을 보고 있는지도 몰랐기에 이 갑작스러운 칭찬은 다소 얼떨떨하고 기뻤다.


그녀는 이어 말했다. 자신의 단점조차 내보이는 솔직한 글을 보며, 많은 생각을 했다고, 여러 눈치에 자신은 해보려는 걸 제대로 해 본 적이 없는데 내 글을 보고 그걸 한번 해보려 한다고 했다. 그러며 말했다.


"그냥 쓰고 싶은 글을 계속 써줬으면 좋겠다."


그 말이 왜 이리 계속 머리를 멤도는지 모르겠다. 왜 이리 계속 가슴이 울렁이는지 모르겠다.


근래 글쓰기 방식을 바꾸었다. 어떤 걸 보고, 내용을 요약하고 약간은 장황하게 쓰던 글에서 조금은 힘을 빼고 조금 심심하지만 일상적인 감정을 담는 글로.


그러면서도 걱정이 많았다. 어떤 글이 더 좋은 글일까. 이런 허접한 글을 올려도 되는 걸까.


글에 대한 칭찬을 제법 받았기에 더더욱 그들을 실망시킬까봐 두려웠다.


생각해보면 우스운 일이다. 내가 언제부터 그리 대단한 작가라도 되었다고.


처음부터 내가 꿈꾸었던 작가는, 단 한 사람이라도 내 글을 통해 어떠한 울림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사람. 글을 통해 소통하는 사람. 진솔함으로 누군가의 마음을 어루만질 수 있는 사람이었다.


때문에 그 친구의 연락은 충격이었고, 감동이었다. 그간의 걱정이 부질없었음에 대한 충격이었고, 내가 그동안 그토록 원하던 글쓴이가 되었다는 기쁨이었다. 더불어, 내 삶의 방식을 용인 받은 기쁨이었다.


그녀의 그 말이, 내게는 원하는 대로 살라는 말 같았다. 눈치 보지 말고, 원하는 형태로 마음껏 살아내보라는 격려같았다.


누구나 그렇겠지만 나도 원하면서 하지 못하는 게 많다. 그리고 그 가장 원초적인 이유는 대부분 '부끄러움'이었다. 나는 어떤 대단한 학자라도 되고 싶은 건지 늘 정의 내리길 즐겨했는데, 그건 나 자신에게도 적용이 되었다.


어떠한 형태의 '나'를 만들고, 그 형태에서 어긋나는 모습은 '나답지 않음'으로 치부하며 부끄러워했다. 이를테면 사람들 앞에서 춤을 추는 것, 노래를 부르는 것, 어이없는 우스광스런 소릴 하는 것이 여기에 해당된다.


친구의 말은 내가 스스로 정한 그 틀을, 조금 허물어보라는 말로, 그래도 괜찮다는 말로 들렸다. 그 말을 들은 것만으로 나는 꽤, 자유로워졌다.


그녀와의 연락이 있었던 다음날 노래방에 갔다. 나는 기본적으로 음악을 좋아한다. 듣는 것도 따라부르는 것도 좋아하고, 마음껏 음악에 심취하면 곧잘 몸을 흔들고는 한다. 그러나 타인과 클럽 혹은 노래방에 갈 때면 주위의 시선에 괜히 주눅이 들어 어색하게 앉아있을 뿐이었다.


이번은 달랐다. 허접한 실력으로 노래를 부르고, 어설프게 몸을 흔들었다. 즐거웠다.


문득, 그 모든 부끄러움은 자존감 결핍에서 나왔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정의한 '나'는 완벽한 사람이어야 했다. 뭐든 뛰어나고 성숙한 사람. 그런데 돌이켜보면, 나는 그 어떤 것에도 자신이 없었다. 이것도 잘 못하는 것 같고, 저것도 모자란 것 같고. 무엇 하나 두드러지는 게 없으니까 끝없이 타인과 비교하며 지엽적인 부분에서도 그들보다 뛰어나야 한다고 생각했다. 스스로 완벽해야 한다는 압박과 오만은 낮은 자존감에서 비롯되었던 것이다.


때문에 칭찬과 성찰이 부끄러움과 완벽주의를 어느정도 탈피하게 한 듯하다. 나는 세상에서 제일은 아니어도 어느정도 글을 쓰는 사람이다. 사랑할 줄 알고, 공감할 줄 안다. 타인의 말을 경청할 줄 아는 사람이고, 말도 제법 한다.


내가 나를 인정하자, 세상이 조금 가벼워졌다. 이제껏 무거운 줄도 몰랐던 공기가, 자유롭게 주위를 노닐었다.


이런 감각을 선사해 준 친구에게 감사를 전한다. 다음에 듣기로 한 그녀의 계획과 목표가 이루어지길, 아니, 그 과정에 슬픔보다는 즐거움이 함께하길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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