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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발의 노부부

by 노미화 Mar 25. 2025

 주말, 작은 식당의 창가 자리. 백발의 노부부가 마주 앉아 있다.



 할아버지의 손이 느릿하게 깍두기를 자른다. 가위의 칼날이 닿을 때마다 단단한 무가 뚝뚝 갈라진다. 떨리는 손끝을 다잡으며 조심스레 썰어낼 무 조각을 접시 한쪽에 밀어 놓는다. 할머니가 그걸 하나씩 조용히 씹는다. 크기가 컸던지, 오래도록 삼키지 못한 채 우물거린다.



 할아버지의 손이 이번엔 뚝배기로 향한다. 해장국 뼈에 붙은 살을 살뜰히 발라내고, 우거지는 가위로 가지런히 자른다. 이윽고 뚝배기를 할머니 앞으로 살며시 밀어 놓는다. 그리고는 자신의 뚝배기에 같은 작업을 반복한다.



모든 준비가 끝나고 나서야 공깃밥 뚜껑을 연다. 수저를 들어 국물로 향한다. 그런데, 김이 피어오르지 않는다. 벌써 식어버린 걸까. 노부부는 아무 말 없이 식사를 이어간다. 한 사람은 챙기고, 다른 한 사람은 조용히 받아 든다. 말보다 더 선명한 손길로. 늘 그래왔던 것처럼. 당연한 것처럼.



나는 앞자리에 앉은 남편에게 속삭였다.


“그대의 미래 모습이 저기에 있어.”


남편이 노부부를 바라본다. 미소를 짓는다.


“그대의 미래 모습도 있어.”



그 모습이 오래 남았다. 노부부의 시간은 식은 국처럼 조용했지만, 그 안에 담긴 따뜻함은 식지 않을 것 같았다. 그들의 삶을 바라보는 순간, 나의 미래가 겹쳐졌다. 언젠가 우리도 여전히, 저렇게 서로를 당연하다는 듯이 챙길까? 말보다 더 선명한 손길로. 늘 그래왔던 것처럼. 숨쉬듯 당연한 것처럼. 우리 아이들은 또 어떤 시선으로 우리 모습을 바라보게 될까?





잘려진 깍두기가 '사랑'으로 보인건 처음이다.

아무래도 MBTI 다시 검사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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