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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말대잔치

by 노미화
밤마다 일기를 쓰면서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과 세상에 대해 토로하던 나는, 실은 그 누구보다 나를 이해할 수 없어서 나의 말과 행동을 곱씹어 생각하며 꾹꾹 눌러쓰던 나는, 앞뒤가 맞지 않는 내용을 두서없이 적으면서 감정을 풀어보거나 더 엉키도록 애썼던 나는 결국 쓰는 사람이 되었다. 나를 해석하고 복원하는 사람. 그때 나의 질문에 뒤늦게 응답하는 사람. 그리고 예언하는 사람. 영원히 그리워하라고, 궁금해하리라고, 사랑하리라고. (p171) 최진영 <어떤 비밀> 중에서
사람에게 할 수 없는 말을 일기에 쓰니까.



[아무말대잔치]


최근에 만든 폴더 이름이다. 제목 그대로 '아무 말'이나 적고 있다. 욕도 적고 싫은 사람 흉도 보고, 억울했던 일, 짜증 나는 일, 치사하고 더러워서 차마 못했든 말든, 입 밖으로 꺼내기 부끄럽고 간질 거리는 말들까지. 그야말로 아무 말이나 써놓은(아니, 뱉어놓는다는 표현이 더 정확하겠다) 글들이다.


그러니까 나는 결국 쓰는 사람이 된 것이다. 거창한 의미의 쓰는 사람이 아니다. 누구나 일기는 쓰니까.


'나를 해석하고 복원하는 사람'

내가 했던 말과 하지 못했던 말을 다시 들여다보면서 그때는 몰랐던 나의 진심을 마주한다. 그날의 나는 누군가를 원망하며 글을 썼을 테고, 다음 날의 나는 그 감정을 곱씹으며 또 다른 문장을 적었다. 아무렇게나 뱉어진 날것의 '아무 말'들은 다시 읽으면서, 다시 생각하면서, 다시 고치면서 점점 다듬어져 갔고 내 자신또한 그러했다. 매일의 아무 말들이 쌓여, 결국 과거와 미래의 나를 오가는 기록이 되었다.


'그때 나의 질문에 뒤늦게 응답하는 사람'

어제의 나는 묻기만 했다. '왜 나는 이렇게밖에 말하지 못했을까?' 왜 나는 끝내 그 말을 삼켜야만 했을까?' 그런데 오늘의 나는 답을 찾아 적는다. '그때는 그게 최선이었다고 생각했으니까.' '그 말을 했으면, 나는 후회했을지도 몰라.' 아무 말이라 쓰고 아무렇게나 던졌지만, 결국에는 나에게 돌아오는 대답들이 된다.


'그리고 예언하는 사람'

쓰다 보면 알게 되겠지. 막연한 그 어떤 것들. 내가 무엇을 적고 싶은지. 내가 어떤 것을 쓸 수 있는지. 앞으로도 여전히 같은 질문을 반복할 것이고, 여전히 비슷한 감정으로 흔들릴 것이다. 언젠가 다시 이 글을 읽을 때 나는 또다시 아무 말이나 쓰고 있을지도.


오늘의 아무 대잔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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