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레 앞의 사마귀처럼
‘당랑거철螳螂拒轍’이라는 말이 있지요. 사마귀가 겁 없이 수레 앞에 버티고 서서 한번 해보자고 덤비는 것이지요. 참 말도 안 되는 한심한 짓이지만, 시도 그런 것 아닐까 해요. 아름드리 나무기둥을 뽑겠다고 부둥켜안고 용써보는 것. 실패할 수밖에 없는 싸움에, 실패 안 할 수밖에 없다는 듯이 ‘올 인’하는 것. 그거라도 안 하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뭐겠어요.
이성복시론 <무한화서>중에서
하찮은 움직임들.
삶의 진창에 빠졌다면, 누구라도 어떻게든 빠져나오려고 애쓸 것이다. 죽음을 생각하며 더 깊이 가라앉고 싶은 사람은 없을 테니까. 하지만 나는 아직 삶과 죽음에 대해 말하고 싶지 않다. 그와 관해 어떤 깨달음도 없다. 굳이 내려놓고 싶지도 않다. 어제와 오늘이 다를 바 없고, 내일도 오늘과 비슷할 것이라면, 나는 그저 조금이라도 덜 질퍽한 곳을 찾아 걸어가고 싶을 뿐이다. 마치 당연한 듯 하루를 시작하고, 당연한 듯 살아가며.
아침이면 눈을 뜨고, 커피를 내리고, 책을 편다. '엄마, 잘 잤어? 아침밥은?' 나에게 아침인사보다 밥을 먼저 찾는 아이들을 보여 웃는 하루로 또 그렇게 시작한다. (아, 솔직하지 못했다. 사실은 아침잠이 많아서 첫째가 날 깨우는 날이 더 많다. 웃는 얼굴이 아닌 퉁퉁 부은 얼굴이라는 게 진실이다.) 아침밥을 먹고, 오늘은 무슨 꿈을 꿨는지 대화한다. "일 마치고 일찍 갈게"라는 말과 함께 각자의 일상이 시작되고, 또 하루가 흘러간다.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고, 때로는 즐겁고 때로는 기분이 상하기도 한다. 정신없이 흘러가는 하루 일정을 마치고 아이들과 집으로 돌아와 함께 저녁을 먹고 담소를 나눈다. 저녁밥을 치우고 각자 책을 읽고 영상을 시청하고 글을 쓰며 서로의 안온한 시간을 보낸다. 잠들기 전, 침대에 나란히 누워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눈다. (아, 이것도 솔직하자. 둘째를 재운다는 핑계로 같이 누워 핸드폰을 보다가 둘째에게 자주 한소리를 듣는다. '엄마, 폰 좀 그만 봐') 아이들과의 시간이 끝나면 그제야 나만의 시간이 열린다.
특별한 이벤트 하나 없이 매일 비슷한 하루는 나의 sns스토리에 또 하나씩 기록된다. 그저 어제와 다를 바 없고, 내일도 오늘과 비슷할 것이다. 멈출 수도 없다. 당연한 듯 일어나고, 당연한 듯 하루를 살아간다. 하찮은 움직임들 모두 부드러운 흙을 밟기를 바라며. 아무 일이 없는 일상이 그저 행복이라 생각하며.
어느 날, 친구가 그런 말을 했다. '삶에서 큰 의미를 찾으려고 하면 피곤해지더라.'. 맞는 말이다. 뭔가를 꼭 깨우치고 깨달을 필요는 없다. 매 순간 성장해야 하며, 매 순간 변해야 함을 느낄 필요도 없다. 더 나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강박을 가질 필요도. 그래서 나는 작고 하찮은 움직임들에 집중해보려 한다. 이를테면,
늦은 밤 아이들과 길을 걷다가 찬바람에 놀라 걸음을 멈추고 서로를 감싸 않았던 것,
차를 타고 가다가 좋아하는 노래가 나오면 꽥꽥 소리 지르면서 신나게 따라 부르는 것,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초승달 눈웃음으로 엄지손가락을 치켜드는 모습을 눈으로 담는 것,
음료수 하나에 빨대 두 개 꽂아 놓고 서로 먹겠다고 눈싸움하는 귀여움까지도.
그런 것들이 모여서 하루가 되겠지. 삶이 되겠지.
사실 나는 가진 것에 비해 욕심이 가득한 사람이다. 아니, 가진 것들이 얼마나 소중한지도 모르고 욕심만 많은 사람일지도 모르겠다. 나의 생각과 행동의 괴리감에 친구가 저런 말을 했으려나. 잠도 안 자고 이것저것 해보려는 내가 수레 앞에 사마귀로 보였을지도 모르겠다. 겁 없이 수레 앞에 버티고 서서 한번 해보자고 덤비는 사마귀. 어리석고 한심해 보일 수도 있지만, 글을 쓴다는 건 그런 게 아닐까. 마치 실패할 리 없다는 듯 일단 직진해 보는 것.
그래도, 이제는 대단한 목표보다는
작은 순간들을 돌아보며 그저 오늘을 살아내고 싶다.
그저 오늘을 남기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