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간, 내 영혼이 빠져 나가 내 머리 위에 올라가 나를 내려다 본다고 상상해본다.
시계는 벌써 1시를 지나 있다. 식탁 위의 주황등 아래 모니터와 씨름 중인 내가 보인다. 묘한 긴장과 평온이 공존하는 기이한 장면이다. 소리도 빛도 움직이는 모든 것을 잠들게한 한밤의 정적속에서 그 고요함을 일그러트리지 않게 최소한으로 움직인다. 손가락은 키보드 위를 조용히 달리고, 가끔 멈춰 선채 공허한 벽이나 창문을 응시한다. 그러다가 한숨을 내쉰다. 키보드 위에 멈춘 손끝에서 미세한 긴장감이 더 또렷해진다.
머리 위에 올라간 내 영혼은 다시 더 높은 곳으로 올라가 나를 내려다 본다.
모든게 멈춰있는 장면 같다. 긴장은 옅어지고 평온만 남은 것 같지만, 착각이다. 미동도 없는 나에게서 자꾸만 열기가 느껴진다. 그것은 보이지 않는 불꽃처럼 나를 감싸고 있다. 아마도, 내안에서 어떤 것이 타오르고 있는 모양이다.
내 영혼은 고개를 갸웃하며 더 높은 곳으로 떠오른다.
그제야 눈에 들어온다. 어두운 벽지, 흐릿한 주황빛 등이 만들어낸 그림자들이 거대한 생명체처럼 나를 휘감고 있다. 식탁에는 노트북말고도 읽다 만 책들이 마치 조용히 속삭이듯 쌓여 있고, 한편에는 식어버린 커피향이 아득히 스며나온다. 이 모든 것이 나의 고요 속에서 함께 살아 숨쉬는 듯하다.
나는 이제 가늠할 수 없이 높은 곳으로 올라가본다.
내가 앉아 있는 이 공간을 넘어 밤하늘을 본다. 창밖으로 새어나가는 희미한 불빛과 조용히 춤추는 별빛들이 교차한다. 그렇게 바라보니 비로소 깨닫는다. 나는 이 고요한 밤과 고요한 방, 내 눈앞의 빛과 별빛들이 끊임없이 대화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침묵과 고요, 멈춤과 흐름, 평온과 긴장의 사이에서 나는 지금 나만의 이야기를 만들어내고 있다.
내 영혼은 다시 나에게로 내려와 고요히 속삭인다. “이 밤의 한가운데서, 너는 무엇을 쓰고 있는가?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가?”
나는 몇 번이고 말한다. 나도 잘 모른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