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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할까요? 기억할까요?

시간을 전시하는 법

by 노미화
그러고는 그 보물 같은 이미지를 꺼내 써먹을 멋진 원고가 나타나길 기다린다!
오랫동안 풍요롭고 단단한 ‘자기만의 미술관’을 가슴에 꾸려 온 편집자 선배들에 댈 바는 아니지만, 수년간 이렇게 의식적으로 이미지를 모으고 저장했더니 ‘이연실 갤러리’도 알토란 같이 채워지고 있다. (p59)

이연실 <에세이 만드는 법> 중에서



차곡차곡.

상상 혹은 꿈.



2035년 3월 29일


나는 오랜만에 나만의 미술관을 둘러보기로 했다. 10년 동안 차곡차곡 모아 온 나의 기록들.



입구에 들어서자마다 첫 번째 전시실이 보인다. ‘초창기 기록’이라고 불리는 것들이 여기저기 어설픈 솜씨의 결과물들로 덕지덕지 붙어 있다. 갈겨쓴 글씨 위로 정제되지 않은 날것의 감정들. 포스트잇, 종이 쪼가리가 여기저기 붙어 있고, 아이들 줄공책, 남편의 회사 다이어리들이 군데군데 쌓여있다.


다이어리 하나를 집어 들어 펼쳐본다. 악필도 이런 악필이 없다. 무엇을 쓴 건지 모르겠으나, 그때의 감정이 줄 위에서 난동을 부리고 있는 걸 보니, 적잖이 방황하고 고민한 시기인가 보다. 열정이라고 해야 하나. 치기 어린 객기라 해야 하나. 한참이 지난 지금도 그때의 감정을 읽으려니 도무지 읽히지가 않는다. 다이어리를 덮고 눈을 감는다. 부족하고 어설펐지만, 그때의 열정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어설펐던 문장들을 기억해 낸다. 그 시절의 내가 떠오른다. 새벽까지 모니터 앞에서 문장을 고르고 고치고, 단어 하나에도 고민하던 모습이. 눈을 떴다. 나도 모르게 미소가 지어진다.


다음 전시실로 들어서자, ‘나의 작업실, 나의 강의실’이라는 이름이 보인다. 수업 중 아이들과 나눈 대화들, 칠판에 빼곡히 적어 내려간 숫자들, 아이들의 웃음소리, 머리 맞대고 문제를 고민하며 해결하던 순간들이 한 폭의 그림처럼 걸려있다. 그때는 미처 몰랐다. 저 순간들이 이렇게 따뜻한 색감으로 기억될 줄은. 그래, 먹고사는 일이 다 그렇다고 생각했겠지. 내가 놓친 순간들을 이렇게 눈으로 보니 더없이 감사하다.


조금 더 안쪽으로 걸어가니 ‘삶의 변곡점’이라는 공간이 나온다. 고민이 많던 시절, 또 다른 길을 발견한 나. 어떤 길인지도 모르고 그 어떤 것에 매료되어 직진해 버린 길. 망설이고, 실망하고, 나에게 좌절하고, 질투하면서도 결국 한발 내디뎠던 순간들. 그러한 순간들을 보고 있으니 가슴에 뜨거운 것이 울컥 올라온다. 이제 와서 보니, 모든 선택이 나의 이 미술관을 더욱 단단하게 만들었다는 생각이 든다. 여전히 걸어가고 있는 그 길 위에서 나는 한번 더 다짐한다. 앞으로도 나는 계속 직진할 거라고.



마지막 전시실에 들어선다. 중앙에 커다란 캔버스 하나만 걸려있다. 아직 완성되지 않은 그림. 가까이 다가간다. 제목을 들여다본다. ‘앞으로의 나, 아이들, 그리고 우리 가족’. 25년 전 백지였던 캔버스. 10년 전 우리 부부와 꼬맹이 둘. 그리고 지금, 성장한 둘과 성숙한 우리 둘. 앞으로 또 누군가가 채워지고, 무언가 많은 색들이 덧칠되겠지. 아주 밝고 즐거운 느낌의 색감들이다. 모퉁이에 어둡고 짙은 색들도 보이지만 그림에 주는 느낌은 미미하다. 어떤 색을 더할지 아직 모르겠다. 하지만 분명한 건, 지금까지 해왔던 것처럼 한 부분씩 채워나갈 거라는 것. 아마 이 캔버스는 앞으로도 변화무쌍할 것이라 확신한다. 죽을 때까지 미완이겠지.


미완성의 그림을 뒤로하며 전시실을 천천히 걸어 나온다. 10년 전 오늘 내가 이 미술관을 본다면 어떤 표정일까. 그리고 앞으로 10년 후의 나는 지금 이 순간을 어떻게 기억할까.


어쩌면, 그때도 나는 여전히 내 삶의 갤러리에서 전시를 준비하고 있을지도.



그러니, 오늘의 나에게 말해본다.

차곡차곡 너만의 기록을 쌓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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