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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가 하기 싫은 너에게

혹은 나에게

by 노미화


음... 연실아, 작가들은 그렇게 멋지거나 예의 바른 인간들이 아니다. 오히려 정반대지. 예술가란 기본적으로 절망적인 상태에 빠진 사람들이거든.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가족을 먹여 살리지’ 같은 현실적이고 균형 잡힌 고민을 할 때 ‘인간이란 무엇인가. 삶이란 대체 뭘까’ 따위의 뜬구름 잡는 고민을 하는 이기적이고 철없는 인간들이기도 해.


지혜와 인품은 개뿔! 작가라는 것들은 집안에 쓰레기봉투가 어디 처박혀 있는지도 모르는 사람들이야. 그러니 작가들은 지도를 가지고 있는 지혜로운 현자가 아니라 ‘길을 잃고 헤매는 자들’, 아직은 아무것도 모르는 햇병아리 검투사로 봐주면 딱 적당한 포지션이야. 그들은 자신도 전혀 알지 못하는 어둠과 무작정 싸워야 하는 사람들이지. 그들은 어리고, 두렵고, 괴롭고, 끝없이 지난 삶을 후회해.

이연실 <에세이 만드는 법> 중에서




뼈 때리는 말이지만, 맞는 말이다. 하지만 이 글을 아이들이 읽는다면 어떻게 해석을 할까. 우리 아이 같았으면 아마도 ‘엄마 작가는 그런 거야? 이기적이고 철이 없어?’라고 곧이곧대로 해석할 수도 있겠다. 그러면 나는 아이들에게 위의 메시지를 어떻게 순화시켜 아이들에게 말해줄 수 있을까.


편지를 써보자.




공부가 싫은 너에게


길을 잃어도 괜찮아.

저분은 작가들을 ‘길을 잃고 헤매는 사람들’이라고 표현을 했지만, 우리는 모두 어떤 길 위에 있어. 네가 서 있는 길이 항상 똑바르고 분명하지는 않을 거야. 오르막길도 있고 내리막길도 있듯이 때로는 공부가 힘들고 지겹고, 하기 싫고, 왜 해야 하는지도 모를 거야. 그렇지만 내가 잘할 때는 내리막길처럼 신바람이 나기도 하잖아? 괜히 어깨도 으쓱하고 말이야. 공부도 살아가는 것도 그런 것 같아. 하지만 그런 혼란 속에서 네가 진짜 원하는 걸 찾을 수도 있어.


세상은 정답을 맞히는 곳이 아니라 질문하는 곳이야.

공부라는 게 단순히 시험 점수를 위해 하는 것처럼 느껴질지도 몰라. 어른들도 대부분 그렇게 말하고 있긴 하잖아. 하지만 작가들이 글을 쓸 때 하는 고민처럼, 진짜 중요한 것은 ‘정답을 맞히는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고민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것’이라 생각해. 너도 네가 궁금해하는 걸 마음껏 고민해도 괜찮아. 세상이 시켜서 하는 공부가 다가 아닌, 네가 배우고 싶고 알고 싶은 게 언젠가는 나타날 거야. 수많은 질문 속에서 말이야. 그러면 넌 그때부터 진짜 공부를 하게 되는 거지.



어른들도 사실은 잘 몰라.

어른들의 비밀을 가르쳐 줄게. 어른들은 늘 뭔가 다 아는 것처럼 보이지? 사실은 어른들도 잘 몰라. 그래서 다들 자기만의 싸움을 매일매일 하고 있어. 자기 자신과의 싸움 말이야. 매일 지고도 매일 싸워. 너희가 매일 공부와 씨름하듯이 말이야. 그러니까 모른다고 불안해할 필요도 없어. 공부를 못한다고, 남보다 느리다고 너무 조급해하지 않아도 돼. 어른도 아이도, 우리는 원래 다들 ‘헤매는 사람들’이니까.



공부는 힘들지. 왜 하는지도 모르겠고. 그래도 그런 고민을 한다는 건 참 다행이라 생각해. ‘왜’라는 고민과 ‘모르겠다’라는 혼란스러움은 너만의 길을 찾는 데 도움이 될 거야. 길을 찾으려고 애쓰는 그 과정이 너를 성장하게 할 거란걸 믿으니까. 이런 말이 너에게 뜬 구름 잡는 말이 아니길 바라. 어떻게 사는가가 결국 먹고사는 일과 다르지 않거든.


너의 '진짜 공부'를 찾길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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