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길로 가든 그 길의 생이 있고
똑같이 내가 가지 않은
다른 길 위의 나를 상상해 보겠지.
인생은 그야말로 트레이드오프 (p119)
이수지, <만질 수 있는 생각>중에서
시선을 틀어본다.
아이와 함께하는 시간은 단순한 돌봄이 아니라, 인내를 배우는 과정이었다. 예상치 못한 이벤트들을 수습하는 일상 속에서, 이제껏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스킬들을 익혔다. 나도 엄마는 처음이니까.
그 육아 스킬이라는 것은 대상과 이름만 바뀐 채, 그대로 사교육의 현장으로 넘어갔다. 억지스러운 말처럼 들릴 수도 있지만, 사실이다. 결혼 전과 후, 육아 전과 후 아이들을 대하는 내 마음과 생각은 달라졌다. 학생들에게 조금 더 관대해졌고, 여유로워졌으며, 내 마음속 ‘어린이’ 세계가 한층 더 넓어졌다고 느꼈다. 가르치는 입장에서의 단호함은 권위를 세우기 위한 엄함이 아니라, 유연함 속에서 오는 단단함이라는 것 또한 알게 됐다. '두 아이의 엄마'라는 타이틀은 나에게 새로운 렌즈가 되어주었다. 학부모의 입장에서 학부모의 니즈를 더 선명하게 들여다볼 수 있도록.
출산과 육아로 인한 경력단절이라는 트레이드오프는 어쩌면 나에겐 새로운 가능성의 문이었을지도 모른다. 인생의 전환점에서 ‘포기’ 대신 ‘확장’을 바라보는 길을 끊임없이 찾으려 했다. 아이들과 함께 하는 시간 동안 아이들도 자랐고 나도 자랐다. 육아로 다져진 내공을 고스란히 전환할 수만 있다면, 그것은 나에게 강력한 무기가 될 것이란 확신이 들었다.
고백하자면 이 모든 것은 한참을 깜깜한 동굴 속을 헤매고 나서야 비로소 보이기 시작했다.
사실, 이분법적인 관점의 트레이트 오프라는 말속에는 아쉬움과 상실감이 전제되어 있다. 마치 양립할 수 없다는 듯이. 책임이라는 단어가 무겁고 올가미처럼 느껴질 때도 있지만, ‘무엇을 포기했나’라는 질문보다는 '이 과정을 통해 나는 얼마나 단단해졌는가'라고 묻는 편이 낫다. 언뜻 이상적으로 들릴지 몰라도, 현실적으로 최선의 선택이라 생각한다.
모든 것은 시기가 있는 것 같다. 매 순간 모든 것을 다 가질 수는 없다는 걸 알기에, 선택은 더욱 신중해진다. 하지만 정말 내가 원하는 것이라면, 결국 그 길을 향해 어떻게든 나아가게 되지 않을까. 어느 순간, 그 길 위를 걷고 있는 나를 발견할지도 모른다.
그러니, 나는 다소 얍삽한 트레이드오프를 하기로 했다. 나무의 가지가 하늘로 곧게 뻗어 나가기 위해서 불필요한 가지를 쳐내듯, 꼭 필요한 것만 남기도 군더더기는 덜어내는 방식으로. 그러다 보면 진정으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더 명확해질 테고, 한정된 시간과 에너지를 더 현명하게 쓸 수 있는 나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아무래도 내 꿈은 얍삽한 멀티플레이어인가 보다.
도무지, 트레이드오프가 안된다.
자, 오늘도 얍삽한 트레이드오프를 해볼까.
"얘들아, 너네는 책을 읽다가 자러 들어가거라. 엄마는 글 좀 쓰다가 잘 테니. 잘 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