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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런 vs 히어로

by 노미화 Mar 25. 2025


 악랄하고 지독한 슈퍼빌런의 결말은 언제나 통쾌하다. 그들의 악행을 편들어주고 싶은 마음은 없지만, 변하지 않는 공식과도 같은 예측가능한 빌런의 결말은 때로는 시시하게 느껴진다. 저리도 처참히 깨질 거면 적당히 나쁘게 살지. 이런 단순한 생각이 떠오르다가도, 막상 철저히 부서져 소멸되는 그 뻔한 결말을 보며 짜릿함을 느끼는 나 자신을 발견한다. 나는 왜 이토록 희열을 느끼는 것일까? 선한 영웅의 '폭력'을 보며 통쾌함을 느끼는 내 안에도 분명 폭력적인 빌런이 숨어있는 게 분명하다.



 영화 속의 공식은 일상에서 파괴된다. 스크린 속 세계에서는 선과 악이 명확하게 구분된다. 악인은 극악무도한 악행을 저지르다 결국 영웅에게 응징당한다. 그러나 현실에서는 영원한 슈퍼빌런도 영원한 슈퍼히어로도 없다. 우리는 모호한 경계 속에서 그 둘 사이를 오락가락하며 살아간다. 완벽하게 선한 사람도, 완벽하게 악한 사람도 드물다.



 가끔은 예상치 못한 순간에 빌런과 히어로가 모습을 드러내기도 한다. 세상을 공포에 몰아넣은 뉴스 속 극악무도한 범죄자는 어쩌면 현실 속 슈퍼빌런일지도 모른다. 반면, 재난 현장에서 목숨을 걸고 인명을 구조하는 구조대원이나 부당한 폭력에 맞서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은 현실의 히어로라 할 수 있겠다. 하지만 그런 거창한 정의를 논하지 않더라도, 일상에서 마주하는 악인들은 무섭고 두려운 존재라기보다는 눈치 없고 상식 없는 소소한 빌런 쪽에 더 가까운 게 아닐까 싶다.



 빌런짓이라는 것은 겨우 이런 것들이다. 영화관 좌석 위에 신발을 벗고 발을 올려놓는 사람, 남들 줄 서있는데 일행이라며 우르르 몰려와 새치기하는 사람, 엘리베이터 문이 닫히려는 순간 억지로 끼어들면서 '죄송합니다' 한마디 없는 사람, 공공장소에서 큰 목소리로 통화하며 주변을 신경 쓰지 않는 사람,  마트 주차장에서 주차자리를 미리 맡아 놓았다며 차 대신 서 있는 사람. 현실 속 빌런들은 영화처럼 강렬하지 않다. 오히려 은근하게 불쾌감을 주는 경우가 많다. 남들과 조금 다른 행동, 부도덕한 행동으로 불편함을 주는 것이니 말이다.



 히어로가 등장해 상대하기에도 애매한 빌런들. 적당한 나쁜 짓을 하지만, 처참히 응징당하지도 않는 미지근하기 짝이 없는 빌런들. 악인보다는 기인(奇人)에 가까운 그들을 처단하려면, 영웅보다는 내 안의 빌런을 꺼내 그들과 맞서게 해야 하나 싶기도 하다. 소심한 복수의 이벤트를 상상해 본다.  은근한 공격으로 빌런을 무력화시킨다. 빌런을 이기기 위해 빌런의 마인드로 접근한다? 하지만 내 안의 빌런 역시 애매하다.



 그런 면에서 영화 속 빌런들은 이해할 수밖에 없다. 그들은 철저히 부서지기 위해, 산산조각 날 준비를 얼마나 철저히 하는가. 결국 처단될 수밖에 없는 운명 속에서, 그 슈퍼 빌런들이 말도 안 되게 악랄하고 지독해야 하는지 이해가 된다. 뻔하고 시시한 결말이라 해도, 빌런들이 차려놓은 응징의 만찬을 맛있게 즐기지 않을 이유가 없다.




 덧, 작금의 세태야말로 누가 빌런인지 히어로인지 모호하기만 하다. 정의는 힘 있는 자의 것이 되고, 악은 때때로 가장 그럴듯한 얼굴로 나타난다. 우리는 빌런을 단죄할 수 있을까, 아니면 그저 또 다른 빌런이 되어가는 걸까. 뻔한 영화의 결말이라면 통쾌하기라도 할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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