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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미화 Sep 23. 2024

슈뢰딩거의 고양이

매일 열어보는 가능성의 상자

“아오! 진짜!”     


고요하고 평온한 거실의 공기가 단발성 외침에 의해 오염된다. 오염이라 표현한 것은 혼탁한 변명과 씁쓸한 후회와 같은 불순물들이 꽤 자주 내 입 밖으로 내뱉어지기 때문이다. 의지와는 상관없이 거의 반사적으로 나온다. 고요한 시간과 공간에 대비되어 내 머릿속은 왜 자꾸만 혼란스러울까. 모든 에너지를 다 끌어 쓰고 남은 쓸데없는 에너지만 머릿속에서 빙빙 돌고 있는 모양이다. 이럴 거면 잠이나 자든가.


최소한의 조명만 켜놓고 부엌 식탁으로 가 앉는다. 12시가 다 되어가는 밤인데 커피는 왜 자연스럽게 타와서 노트북 옆에 갖다 놓는지. 커피 한 모금을 홀짝이며 노트북을 켠다. 분명 자야 될 시간인걸 머리로는 아는데, 행동은 깨어있기 위해 몸부림을 친다. 고요한 시간과 공간은 내 안의 소란을 더 증폭시킨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쓸데없는 생각들을 잘라 낼 방도가 없다. 쥐 죽은 듯 조용한 그 공간에서 유일하게 번잡한 존재가 번잡한 생각의 꼬리들을 어중간하게도 잘라 허공에다 한숨인지 탄성인지를 모를 단어들을  내뱉고 있다. 새벽까지 놀다 늦게 자는 편이지만 자려고 누우면 잠이 빨리 들고 깊게 자는 편이다. 이불킥을 할 틈도 없이 베개에 머리만 대면 잠들어버리기에 나의 이불킥은 시간 공간의 제약이 없이 아무데서나 예고 없이 나타난다. 설거지 중에도 운전 중에도 머리를 감는 중에도 밥을 먹다가도 불쑥불쑥 ‘허공킥’이 찾아온다. ‘아오! 진짜.’     


한글파일을 띄워놓고 깜박이는 커서를 보다 벽에 걸린 시계를 뚫어져라 본다. 눈을 게슴츠레 뜨고 고개를 까딱거리며 시침의 회전방향을 따라 카운트를 한다. 머릿속에서는 돌아가는 초침을 지우고 숫자 위에 보이지 않는 선을 그어 즉각 계획표를 만들어낸다. 스스로 정한 데드라인. ‘오늘은 무조건 2시 전에는 꼭 마무리 지어야지.’ 언제나 계획대로 되지는 않지만 무언가를 다 못 끝내놓고 자면 불안한 마음이 생긴다. 그 강박과 같은 것이 어떻게든 새벽까지 나의 멱살을 잡고 끌고 간다. 그러다 보면, 톡톡 거리는 노트북 키보드 소리는 ‘거봐, 마음먹고 하니까 되잖아. 잘하고 있어.’라는 칭찬의 소리로 바뀌고 커피보다 더 효과적인 각성상태를 만들어낸다.   

   

부스럭거리는 소리에 반려견이 따닥따닥 방바닥에 발톱 부딪히는 소리를 내며 내 옆으로 다가온다. 마치 키보드 소리와 흡사하다. 두 앞발을 가지런히 모으고 내 발치에 와 앉아 나를 쳐다본다. 간식하나를 챙겨주고 머리를 쓰다듬어주고 나서 다시 의자에 앉아 키보드에 손을 올린다. 생각보다 글쓰기 진도가 참 안 나간다. 다시 시계를 쳐다본다. 벌써 밤 1시다. 초침이 얄밉게도 빨리 돌아가고 있다. 내 안의 초초함도 같이 따라 돈다. 안 되겠다 싶어 남아있는 커피를 입으로 털어놓고 다시 모니터를 째려본다.     


“아오! 진짜!”     


옆에서 엎드려 자고 있던 강아지가 스르륵 일어나 방으로 들어가 버린다. 이런 날에는 전략을 바꿔보기로 한다. 책상 위에 연습장 하나와 몽당연필 하나만 놔두고 모두 치워버린다. 하루동안 있었던 일들을 적어 내려간다. 마음속에서 삐죽 삐져나와 입 밖으로 나오고 싶었던 것. 부끄러워서 어떻게든 빨리 지워버리고 싶었던 것. 왜 그랬을까 하고 나를 질책하는 말들. 누군가에게 서운했던 것들. 그림처럼 휘갈겨 쓰고 니 어지러운 생각만큼이나 글씨도 어지럽다. 한편으로는 다행이다 생각한다. ‘이걸 누가 알아보겠어?’. 쏟아내듯 적은 생각들은 순서도 뒤죽박죽, 의미하는 것도 전달하고픈 메시지도 없었지만 무엇 때문에 내가 그토록 허공에다 이불킥을 했는지 조금은 알 것 같았다. 연필을 놓고 들여다보며 ‘겨우 이거였네’라는 생각이 스멀스멀 올라온다. ‘아오! 진짜!’의 정체가 별게 아닌 감정들이었다는 생각에 묘하게 차분해짐을 느낄 수 있었다. 뱉어버린 감정들에다 X표시를 하고 밑에다 ‘괜찮다’라고 적었다. 괜찮겠지. 아오, 진짜.     


내 감정의 실체가 무엇인지 몰라 혼란스러울 때는 써보면 안다. 써봐야 알 수 있다. 써보기 전에는 알 수 없다. 마치 슈뢰딩거의 고양이처럼.      


완전히 밀폐된 상자 안에 고양이가 있다. 그 상자에는 고양이뿐만 아니라, 한 시간 내에 원소 하나가 붕괴될 확률이 50%인 방사성물질과 방사능을 검출하는 계수기, 망치, 그리고 독가스가 든 유리병이 들어있다. 상자 밖에서는 이 고양이를 볼 수 없다. 한 시간 안에 원소가 붕괴가 되면 망치가 떨어져 유리병을 깨트리고 고양이는 독가스로 인해 죽게 된다. 그 반대의 경우, 애초에 50의 확률로 원소가 붕괴되기 직전에 상자를 연다면 살아있는 고양이를 상자에서 꺼낼 수도. 따라서 고양이가 실제로 죽었는지 살아있는지는 완전히 밀폐된 상자를 열어본 후에만 알 수 있다. 상자를 열기 전에는 고양이는 죽어있으면서도 동시에 살아있는 상태가 된다. 다소 이해하기 어려운 이 사고실험 속 불확실한 고양이를 ‘슈뢰딩거의 고양이’라고 한다.      


글쓰기도 마찬가지다. 글이 써지기 직전까지는 번잡한 생각과 다듬어지지 않은 감정들이 밀폐된 상자 속 고양이처럼 모호한 상태로 머물러있다. 살려내야 하는 고양이인지 죽을 수밖에 없는 고양이인지 일단 써봐야 안다. 일기든 뭐든 일단 글을 써보는 것이 상자를 여는 행위가 된다. 때로는 한 문장, 한 문단을 쓸 때마다 끊임없이 ‘이게 맞는 건가?’ ‘내가 무슨 이야기를 하는 건지.’싶은 의문이 들 때도 있고 써 내려간 글이 좋은 글인지, 아니면 의미 없는 글인지 확신할 수 없을 때도 있다. 어렵게 어렵게 첫 문장을 쓸 때는 더욱더 그러하다. 글의 전체가 어떤 모습을 갖출지 상상이 되지 않는다. 그러나 어떻게든 끝까지 쓰고 나서야 비로소 글의 정체가 드러난다. 초고로 빠르게 적어 내려간 글들을 다시 읽어볼 때, 그 글이 생명력을 가진 글인지 혹은 잡동사니 파일로 사라질 글일지 어느 정도는 판단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상자를 여는, 마음속의 모호한 생각들을 써 내려가는 그 순간이야말로 비로소 내가 느꼈던 것들의 실체를 알 수 있는 중요한 지점이 아닐까 싶다.      


고요하고 평온한 밤, 속 시끄러운 감정들을 가지고 매일 글쓰기 상자를 연다. 글쓰기 루틴을 유지한다고 해서 매일 마음에 드는 글이 나오는 것은 아니다. 힘들게 쥐어짜며 써가는 날들이 더 많다. 그러다 보면 마치 ‘죽은 고양이’를 마주하는 것처럼, 문장들도 엉망이고 글도 매끄럽지 않아 ‘오늘 글쓰기는 실패인 상태로 연재를 해야겠구나’하고 생각하는 순간이 자주 온다. 그것도 여러 이유에서 다양한 형태로 다가온다. 어떤 날은 글감 자체가 떠오르지 않아 몇 시간 동안 빈 페이지만 바라보고 딴짓만 한다거나, 겨우 몇 줄 써 내려간 문장이 너무나 진부하고 맥락이 엉켜있음을 발견하곤 재능이 없음을 탓하곤 한다. 또 어떤 날은 써 놓은 글이 내가 읽어도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것인지 몰라 다 지워버리고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는 상황에 처하기도 한다. 이런 날은 상자를 열었지만 ‘죽은 고양이’를 발견한 것과 같은 좌절감이 든다. 스스로 걸어놓은 마감시간에 쫓겨 피로감은 말도 못 하게 증폭된다.      


그러나 이런 수많은 실패의 순간들 조차, 다음번에 더 나은 글쓰기를 위한 밑거름이 된다는 사실은 잘 알고 있다. 그래서 더 힘들고 괴로운지도. 상자를 열고 나서 실망하고 좌절하겠지만, 그 상자를 열지 않았다면, 실망하지 않았다면 무엇이 잘못되었는지조차 알 수가 없다. 실패를 통해 내가 어떤 부분에서 부족한지 무엇을 채워야 하는지 깨닫게 되고 다음번 상자를 열 때는 조금 더 나은 시도를 할 수 있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상자 속 ‘죽은 고양이’를 확인하는 일은 지금 나의 위치에서는 ‘당연한’ 것이고, 그 실패가 단순한 좌절이 아니라 글쓰기를 발전시키는 도약의 기회로 삼을 수 있다는 점이다. 실패한 문장들을 다시 고치고 흐름을 바꾸고 엉켜있는 맥락을 풀어가면서 글이 살아나는 순간도 맞이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한다. 어쩌면 죽은 고양이도 살려낼 수 있는 글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아무래도 잡동사니 파일 목록들을 다시 살펴봐야겠다. 사뿐히, 도도하게 걸어 나올 예쁜 고양이가 있을지도 모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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